지인끼리 모여노는 장소 - 임병식
사람들이 모여 드는 장소를 보면 어떤 특별한 특징이 있다. 낚싯터에도 고기가 잘 무는 포인트가 있듯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말하자면 쉬어가기 좋거나, 접근하기 좋거나 그것이 아니면 주인이 사람을 끄는 매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심심파적 삼아 한번씩 찾아가는 곳도 다분히 그런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그 곳은 바로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렌트카 사무실. 차를 빌려주고 나면 따로 할일이 없고 영업에도 방해받을 일이 없어서 자주 찾아 가는 것이다. 사무실에는 관리인이 상주하고 주인은 어쩌다 한번씩 얼굴을 내민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유로 마음놓고 드나든 건 아니다. 주인이나 관리인이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곳에 모이면 자연스레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된다. 피차 무료하여 찾아온 처지이니 느긋하게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관리인은 사람이 모이면 차부터 끓여 내놓는다. 사업이라야 하루에 렌트카를 이용하는 사람이 서너 명에 불과하니 그 역시 바쁠것이 없고 무료하기 마찬가지 일 터이다. 그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이 되기도 하고 자기가 화제가 주도하기도 한다.
나는 그곳을 들를 때면 어떤 장면과 유사한 분위기를 많이 느낀다. 그것은 소설 ‘잉여인간’의 무대이다. 그 작품 속에서 사람들은 치과의원을 경영하는 친구를 찾아와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한결같이 백수들로 중학교 친구들이다. 그러면서 시국을 성토하기도 하고 씨알이 먹히지 않는 비분강개(悲憤慷慨)를 토해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식사 때가 되면 원장의 꽁무니를 따라나서 끼니를 해결한다. 어찌보면 지극히 한심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 한사람은 간호사에게 잔뜻 눈독을 들인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의 처는 또 집세를 받은답시며 들락거리며서 세입자인 그 원장에게 추파를 던진다. 그래서 소설은 긴장감이 넘치고 한껏 재미를 높여준다. 이작품은 1960년대 초에 지면에 발표되자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작가 손창섭은 인기 작가가 되었다. 나는 이 작품을 문학소년 시절에 사상계에서 읽었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아마도 대조적인 인물들을 통해서 그려낸 심리묘사가 리얼리티를 획득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데, 최근 보도를 보니 한동안 행적을 감추었던 저자가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치매를 앓고 있어선지 지금은 자기의 작품제목조차도 기억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그 치과의원에서 벌어지는 광경처럼 그런 꽁수는 없다. 여자들의 출입도 거의 없을 뿐더러 식사때가 되면 거의 엉덜이를 털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리를 뜨는 이유는 가지가지이다. 손자 녀석들이 어린이 집에서 돌아올 시간이라면서 떠나고, 개인택시를 모는 사람은 너무 많이 놀았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차 탈시간이 됐다며 다음 만남을 약속하고 떠난다.
나는 이즈음 이런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조금은 색다른 생각을 해본다. 이런 사람들이 무작정 시간이 남아돌아 찾아온 것이 아니라 마음이 외롭고 헛헛해서, 그리고 사람이 그리워서 찾아오지 않는가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 속의 잉여인간도 사실은 시간이 남아돌아 시간이나 죽이는 한심한 군상이 아니라 소외된 인간의 심리현상을 작가특유의 기법으로 표현해 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모인 사람들은 전날에 일어난 뉴스를 한가지씩 가지고 돌어와 머물다가 떠났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뒷보습을 보고서 ' 외로운 마음들이 그리움의 갈증으로 나타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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