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변론을 부탁하기 위해 사무실을 찾아온 노인 소설가가 있었다.
평생 소설을 써 왔는데 책을 내주는 출판사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 잡지에 자기 소설을 한번 발표한 것을 평생의 기쁨으로 여기고 있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날 그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이런 말을 했다.
“아들이 석방되면 돈을 열심히 벌어서 내 소설집을 내준다고 했어요. 평생 써 놓은 원고는 많거든요.”
그런 말을 하고 빗속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짠한 느낌이 들었다.
연극배우에게 무대가 그립듯이 소설가에게는 밥보다 자기의 책이 더 고픈 것 같았다.
유명한 한 원로소설가가 내게 자기의 소설을 내줄 출판사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자존심상 스스로 출판사를 찾아가 부탁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를 대리해서 몇몇 출판사 편집책임자에게 그의 원고를 봐달라고 했다.
칠십대 중반의 소설가는 평생 글을 써오면서 자기의 문학적 완성같은 소중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 이전의 것은 아무리 잘팔렸다고 하더라도 전부 쓰레기라고까지 혹평을 했다.
그러나 출판사들의 반응은 달랐다.
유명도를 고려한 매끈한 거절이었다. 팔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게 이 세상이었다.
한 여성 탈랜트의 남성 편력을 얘기한 수필집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문학은 예술이고 출판은 돈으로 그 가치를 매기는 상업이었다.
그 원로소설가는 암으로 쓸쓸하게 죽었다.
암에 걸린 유명한 시인의 재판을 맡아 한 적이 있었다.
이길 확률이 거의 없지만 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하는 사건이었다.
더러 그런 재판도 있었다.
입증은 불가능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억울한 경우였다.
법정에서 자신의 한이라도 토해내고 싶은 경우인 것이다. 재판도중 그가 죽었다.
그는 죽기 전날까지 병상에서 시를 쓰고 있었다.
자동차수리공으로 있던 소년시절 그는 두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당선된 천재 소리를 듣던 시인이었다.
시인들은 평생 자유와 가난을 벗삼아 사는 것 같기도 했다.
그가 죽은 후 나는 법정에서 소송 상대방에게 죽은 사람의 소원이었던 시집을 낼 돈을 주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죽은 영혼을 위한 위자료였다.
판사도 상대방측 변호사도 선선히 응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한 참 후에 유쾌하지 못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인의 딸이 내게 받은 돈을 다 써버리고 아버지의 시들이 들어있는 노트북마저 버렸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듯이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책에 대한 배고픔이 있는 것 같다.
시인인 고교은사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고 노부부가 교외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고 했다.
외아들 목사님이 개척교회를 끌어가고 있다고 했다. 맑고 향기로운 삶이지만 돈이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체면을 무릅쓰고 내게 시집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살다보니까 더러 그런 경우도 있었다.
교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던 다른 선생님은 직장에 다니던 나의 월급날 돈을 얻으러 오시기도 했다.
부도 직전이 되면 그 절박함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때면 나는 논리나 이성보다는 정쪽을 택했다.
나도 힘들어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집을 내 달라고 부탁한 선생의 청을 몇몇 제자들이 조금씩 돈을 내 들어주는 형식을 취했다.
깔끔한 시집이 나오던 날이었다.
허름한 음식점에서 청주를 하얀 술잔에 부어 시인인 은사에게 올렸다. 축하주였다.
“지금 집에서는 내 시집이 나온 걸 알고 집사람이 기다릴거야.”
노인은 어린아이같이 신이 나 있었다.
선생은 천재적 재능을 가진 시인인 것 같았다.
고등학교 때 이미 일간지 시부분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현대문학상도 받았다. 노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십여년 만에 오늘 시집이 나와서 너무 기뻐 그동안 변비증상같이 시가 써지지 않아 힘들었어.
중학교 때 두보의 시를 읽고 너무 감명을 받았어. 그걸 현대감각으로 다시 그걸 풀 수 없을까 생각했었어.
그때부터 문학지가 나오면 다른 사람들의 시를 모두 읽고 공부했지.”
노인이 되어서도 그는 시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되고 싶어 하는 두보는 가난했다.
가난했기 때문에 시인인지도 모른다.
나는 더러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천사가 되고 싶은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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