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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 송혜영

Joyfule 2015. 7. 14. 09:30

 

"교련복,학도호국단! 추억속의 교복!

 

 첫사랑 / 송혜영

 

다 보름달 때문이다. 오랜 세월 홀로 간직한 환상이 첫사랑이라는 너울을 벗고 밤하늘로 날아가 버린 것은.

 

찬바람과 함께 거리에 붕어빵이 나타나면 그 남자애가 생각났다. 내가 그 애에게 가졌던 연민, 설렘, 막연한 그리움, 그리고 코끝을 감도는 시큼한 땀 냄새, 단단한 몸의 기억을 통틀어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의 첫사랑은 당연히 그 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애티를 벗지 못한 나는 친구들에게 순진한 애 취급을 당했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생활화한 잡식성 독서로 인해 어설프게 사랑과 인생에 대해 제법 안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꼼꼼하게 챙겨 읽은 반체제 신문은 사회, 정치적 의식을 한껏 고양시켰다. 어쩌다 남녀공학에 들어갔지만 남학생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어린 것들이 어른 인 척,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게 우스웠다. 물론 남학생들도 나에게 별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내가 덜 자란 애로 보였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이불 속에서 홀로 투사를 꿈꾸고 있었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운동권에 투신하여 세상을 바꾸는데 한 몫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선생들도 친구들도 내 관심사와는 상관없이 평화로웠다. 나는 정치 상황에 관한한 입이 무거운 선생들이 비겁해 보였고, 의식 없는 친구들이 답답했다. 발육이 좋은 뒤 번호 아이들의 엉덩이와 가슴을 흘깃거리며 그들의 텅텅 빈 머리를 걱정하기까지 했다. 만성 소통 장애로 만사가 불만스러워 매사에 시큰둥했다. 그렇게 홀로 고고했던 내 마음을 빼앗아 간 남자가 2학년 겨울방학과 함께 홀연히 나타났다. 학년말에 발행됐던 교지에 실린 한 편의 수필이 나를 첫사랑이자 짝사랑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다.

 

교지 뒷부분에 우리 학년 대대장이 쓴 글이 눈에 들어 왔다. 입시 공부 외에 사열이다 검열이다 군대 생활로 고달팠던 나는 교련이라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내가 혐오해 마지않던 교련 시간에 빛을 발하는 아이였다. 학생이면서 군인 같았던 그는 시커먼 피부에 입술이 두툼했다. 나는 한 번도 시커먼 낯빛에 두상이 표준보다 크고 쌍꺼풀이 굵은 눈을 가진 그를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내 이상형은 가늘고 긴 눈이 안경 속에서 빛나는. 독재에 항거하는 얼굴이 하얀 지식인 청년이었다. 그래서 같은 노선버스를 타는 그를 철저히 외면했었다.

 

학도호국단 대대장도 권력이라고, 그 특권을 이용해 교지를 더럽힌 거 아냐? 입을 쑥 빼물고 읽어 내려간 글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국가에 충성하고 학업에 충실하자, 뭐 그런 고리타분한 논조려니 했는데. 그는 결손 가정의 아이였나 보다. 엄마가 할머니 집에 자기를 맡기고 떠난 날의 기억을 풀어 낸 글은 관념으로만 다가왔던 다른 문학작품처럼 창백하지 않았다. 문장력도 고등학생으로는 수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감상의 늪에 푹 빠질 수도 있는 내용을 감정을 절제 시켜 심상하게 처리한 점이 좋았다. 집 앞 감나무 아래에서 식은 붕어빵 봉지를 쥐어 주고 떠난 엄마를 묘사하는 대목은 담담해서 더 절절했다.

 

그날 밤, 그 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국가와 민족을 잠시 접었다. 한 인간에 대해 솟아오르는 연민의 정과 문학적 감화가 잠을 뺏어갔다. 그날 이후 그는 단지 시커먼 굴때장군이 아니었다. 각반 찬 교련복 속에 순정하고 슬픈 영혼을 감추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다. 이전처럼 마지못한 등교가 아닌 가벼운 흥분상태에서 학교에 갔다. 운동장 조회 시간에 구령을 넣는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내 가슴을 쳤다. 교장에게 경례를 붙이고 돌아서는 검은 눈은 모자 챙 그림자 속에서 더욱 깊어 보였다.

 

나는 아무에게도 갑작스럽게 찾아 온 생경한 감정을 고백하지 않았다. 박수도 이해도 못 받고 내 취향이 웃음거리로 전락할 위험성이 컸으므로. 덕분에 내 사랑은 훼손되지 않았고 나날이 깊어 갔다. 그는 보자고 작정을 하니 더 보기가 힘들었다. 3학년이 되면서 그는 조회시간에 구령을 넣는 임무를 후배에게 넘겨주었다. 그나마 멀리서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가 없는 하교시간은 늘 쓸쓸했고, 날이 갈수록 연모의 정은 더해 갔다. 그와 마주치고 싶어 버스를 몇 대 씩 그냥 보내며 정거장에 서 있곤 했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보겠다는 속셈도 없었다. 연분홍빛 연서도 쓰지 않았고, 선물 따위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기회를 엿보지도 않았다. 그런 뻔한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낼 성질의 감정이 아니었다. 아무리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라고 해도 입 밖으로 표출 되는 순간 진부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3학년 여름방학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날이었다. 유난히 버스에 사람이 많았던 그 날, 그 애와 같은 버스를 타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 맨 뒷좌석 손잡이를 잡고 창을 향해 서게 되었다. 그 애가 버스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바로 내 뒤에 서게 되었다. 그 애가 일부러 내 뒤로 왔던가. 나는 혼자 감격했다. 그가 이제야 나를 알아본 것이다. 아무도 주의 깊게 읽지 않고 내팽개쳐 버릴 수도 있는 글을 소중히 읽어 준 사람, 그의 아픔에 함께 울어 준 이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안 것이 분명했다.

 

그가 내게로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고만 있기에 내가 처한 현실은 지극히 열악했다. 나는 작았고, 그 애는 컸기 때문에 내 머리가 그 애의 턱 밑쯤에 있었다. 얼른 머리를 언제 감았는지를 생각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빨래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향기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쉰내만 안 나면 다행이었다. 그 애가 바로 내 뒤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땀이 흐르는 데, 그날따라 버스는 왜 그렇게 키질을 하던 지……. 버스가 몸을 뒤챌 때마다 여학생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 애의 가슴 근처에 머리가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의 배 쯤에 밀착된 팔뚝을 급히 뗐다. 그가 먼저 내릴 때까지 계속 그 애와 부딪쳤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각종 사람들이 내뿜는 분비물 냄새와 도시락에 남아있는 반찬내가 뒤섞인 후덥지근한 공기까지 가세해 속이 막 울렁거렸다. 그런데 내가 중심을 못 잡고 안팎으로 출렁일 때마다 그는 꿈쩍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의 몸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한 셈이다. 그 때, 처음으로 남자에게 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滿員을 이용해 일부러 밀착해오던 징그러운 물체가 아닌 건강한 몸의 느낌. 슬프고 고독한 영혼과 상반된 강철같이 단단하면서 온기 있는 육체. 악취에 전 버스 안에서 나는 그 의외성에 더 매료되어 반정신이 나갔다.

 

버스에 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려고 들썩거릴 때 그도 내 뒤를 떠났다. 혼미한 중에도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쓸쓸한 그의 뒷모습이 아프게 눈에 들어왔다. 버스를 내려 정신 차리고 보니 우리 사이에 신체적 접촉 외에 어떤 대화도 없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 아픔을 같이 해줘서 고맙다느니, 얼마나 힘들었냐 따위의 정신적 교감은커녕 귀 뒤로 삐질 흘러내리는 땀방울만 남았다. 그날 이후 꿈속에서만 몇 번 그를 만났다. 얼굴 없는 그는 출렁거리는 버스에서 내 뒤를 굳건히 지켜주었다.

 

내 애잔한 사랑을 위로하기 위한 신의 배려였을까. 졸업을 앞두고 교무실 앞에서 그와 딱 마주쳤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를 똑바로 보았다. 그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성격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우리를 중심으로 배경이 빙그르르 돌았다. 하지만 잠시 강하게 얽혔던 시선은 풀어지고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러고 그뿐.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내 시시한 청춘의 한 장이 저물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는 염원하던 운동권이 되지 못했다. 유신말기의 정치 상황이 워낙 살벌해 대들기도 무서웠다. 그들이 나 같은 사람을 원할 것 같지도 않았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 내 신념의 허약성을 절감하며 현실과 타협했다. 대학의 수준에 맞춰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고 나름대로 바빴다. 그래서 잠시 그를 잊고 있었다.

 

2학년 무렵이었다. 그가 갓 스물에 연로하신 조부모님의 성화에 정해 준 처녀와 후딱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술 더 떠서 고향에서 조부모님 모시고 농사짓고 산다는 그가 잠시 동창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막연히 그가 사관학교나 경찰 대학에 진학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격 훈련이나 사격 연습에 열심일 줄 알았는데. 너도 나도 야망을 실현시키려 찾는 서울을 굳이 버리고 떠난 그가 어쩐지 멋져 보였다. 한편으로 나와 말 한 번 나눠 보지도 않고 그렇게 빨리 시골 처녀의 서방이 된 그가 참 야속했다. 얼마동안 나는 그와 같이 논밭 갈고 저문 강에 삽을 씻었다. 밤에는 함께 글을 읽고 슬픈 영혼을 안아 주었다. 그와 살림을 차리는 상상 만으로 상실감을 달래며 첫사랑과 허망하게 결별하고 말았다.

 

붕어빵을 보면 매번 절실하게 그가 그리웠던 건 아니다. 내 행복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시절에는 길거리 주전부리에 대체로 덤덤했었다. 붕어빵에 본격적으로 감정이입이 된 건 굳건하리라 믿었던 산이 흔들린 다음부터일 게다. 신산스러운 삶의 고비를 넘기면서 사는 게 영 시시할 때, 심신이 주저앉을 때,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그가 떠올랐다. 그는 지금쯤 몇 천 평 농사를 짓는 대농일거야. 고등학교 시절 보인 지도자적인 면모로 보아 훌륭한 농촌지도자가 되어있을 있을 거야. 검은 몸은 청동 빛으로 더 단단해졌겠지. 해질녘이면 그가 더욱 그리웠다.

 

우리 사이에 내세울 만한 애틋한 사연도 없는데 그가 간절했던 건 왜일까. 내게서 연민을 끌어낸 최초의 이성이어서 인가. 문학적 교감을 한 구체적 대상이어서? 흔들림 없이 굳건히 나를 지켜준, 강철 같은 존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면 이팔청춘의 풋풋하고 순정한 시선에 대한 갈증때문일까. 정직한 노동이 삶의 기조인 인간에 대한 향수 때문인가. 그가 첫사랑의 이름으로 내 삶에 틈입한 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 이유다.

 

친구들이 우리 마당에 자리를 편 날이 하필 7월 보름날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휘영청 보름달이 떴다. 조금 전까지 삼겹살을 탐하던, 배에 두둑하게 전대를 찬 시끄러운 아낙들은 달빛에 놀라 다 입을 다물었다. 달빛이 교교해지자 지난날에 대한 미련과 회한에 젖어있는 듯 간간히 한숨 소리만 났다. 나름대로 우울하거나 답답한, 군내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에는 첫사랑 얘기가 제격이다.

 

달빛에 젖은 월하부인들은 각각 세월과 함께 자신에게 유리하게 윤색된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자신의 첫사랑을 아름다이 포장하는 친구들의 얼굴이 여학생처럼 빛났다. 달빛의 정령이 나도 뭔가를 털어놓게 만들었다.

 

너희들 우리 학년 대대장 알아? L 말이야? 걔 동창회에 자주 나오잖아. 동창회 일에 열심인 친구가 그의 근황을 잘 알고 있었다. 농사짓는 사람이 동창회에 자주 나타난다는 게 좀 실망스러웠다. 걔는 농사꾼이 그렇게 한가하다니. 서울에 자주 오게. L이 왜 농사를 지어. P은행 충무로 지점에 있어. 얘는 어디서 그런 엉터리 정보를 들었어. 참 문예반 L은 시골에 산다더라. 그런데 갑자기 L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혹시 네 첫사랑이니?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이게 아닌데. 오디술로 천천히 목을 축이며 내가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과, 오랜 세월 간직하고 있었던 연모의 감정을 친구들의 인내를 시험하며 천천히 털어놓으려고 했다.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느냐고 섭섭해 하면 내 사랑이, 너희들의 몰이해와 편견 따위로 훼손될까 두려웠노라고 조용히 고백하려 했다.

 

내 환상을 받치고 있던 밑돌들이 와그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 저 놈의 보름달 때문이다. 각본은 어그러졌고 수정이 시급했다. 첫사랑은 무슨 첫사랑이야. 그냥 우리 동네 살던 애라서 갑자기 생각난 거지. 근데 문예반에도 L이 있었나?

 

! 지지리 복도 없지. 첫사랑의 환상 하나쯤 남겨두어도 좋으련만. 실체도 없는 존재를 그리워하며 보낸 세월이 억울해 속으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쨌든 은행원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내 첫사랑으로서 자격이 없다. 얼굴도 모르는 문예반 남학생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고리삭은, 볼 장 다 본 남편을 첫사랑으로 승격시킬 수 없지 않은가. 신인상처럼 생애 한 번 뿐인 첫사랑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대승적 접근 밖에 없다. 그래. 질풍노도 시기의 불안과 아픔을 함께 했던 그들. 첨단의 도시이든 흙내 나는 농촌이든 서로의 방식으로 동시대를 함께 관통한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다 내 첫사랑이야. 분열된 그들을 하나로 통합시켰다.

 

뒤늦게나마 첫사랑을 완성시키고 보니 마실 보낸 나의 현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한때 손끝만 닿아도 찌르르 전기가 통하던, 태산이었던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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