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과다 노출 - 주경철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303/13/2013031302546_0.jpg)
마닐라의 슬럼가에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하려고 가옥을 철거했을 때 일이다. 여자들이 불도저 앞에 드러눕는 바람에 여럿이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이어서 군대가 투입되자 주민들은 최후 수단을 썼다. 수많은 여자가 느닷없이 웃통을 벗어젖히자 군인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말았다. 이처럼 1960~7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노출 시위가 많아서 경찰이나 군대가 현장에서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일이 잦았다. 당시 미국 경찰은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치안 사태 발생 시 냉정을 유지하는 법'이라는 소책자를 준비하기도 했다(어떻게 대응하라고 지시했는지 내용이 무척 궁금하다).
1968년 12월, 독일의 여성협회 회원 한 명이 질서 문란 혐의로 함부르크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도중 회원들이 윗옷을 벗고 나타나 소동을 벌였다. 그때 이 여성들이 제시한 이유는 한번 경청해볼 만하다. "소비사회에서 후기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광고용 무기로 남용되고 있는 성(性)은 이제 우리의 혁명 투쟁을 위한 무기로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가슴을 노출한다."
여성의 노출은 순수한 젊음의 발산일 수도 있고, 상품을 팔아먹기 위한 교묘한 소비자 세뇌 전략일 수도 있고, 요즘 외국의 어느 여성 인권 단체(Femen)가 자주 선보이듯 정치적 주장을 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분명 미묘한 문제다. 하물며 남성의 변태적인 노출에 대해서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과도한' 노출에 대해 범칙금 5만원을 물리는 순진한 방식으로 풀릴 문제는 아닌 듯하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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