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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 - 월리암 골딩

Joyfule 2014. 8. 6. 02:00

요즘 군대에서 벌어진 잔혹한 폭력과

학교안의 폭력. 왕따를 보면서 파리대왕이 생각나서 검색에서 리뷰를 펌했습니다
어린 소년들의 모험담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작품.

 

파리대왕

저자
윌리엄 골딩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0-10-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펌> 「파리대왕」

195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 상태로 돌아간 소년들의 원시적 모험담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잠재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핵전쟁의 위험을 느낀 영국은 25명의 어린 소년들을 핵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옮기려 했으나 소년들을 태운 비행기가 그만 바다에 추락한다. 랠프·잭·피기 등의 소년들은 무인도에 상륙한다. 이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랠프의 지휘에 따라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구조되려면 바닷가에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는 랠프와 사냥을 해야 한다는 잭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결국 잭과 로저는 갱단을 만들어 무리를 이탈한다.

 

짐승을 찾아나선 사이먼이 잭 일당에게 살해되고, 섬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년들은 안전을 위해 잭의 갱단으로 들어가고 결국 랠프와 피기만 남는다. 문명세계의 사회관습은 붕괴되고, 인간 본성에 잠재한 권력욕과 야만성이 드러나면서 섬은 지옥으로 변한다. 광기에 찬 잭과 로저는 점점 더 포악해지고 피기마저 죽임을 당한다.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랠프와 소년들은 가까스로 영국 순양함에 의해 구조된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사악함을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의 행동양식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1963년 첫 영화화된 이래 몇 차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펌>「파리대왕」-리뷰-① τ스크랩#5=book&lyrics

프라이드오브아시

 

상징을 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을 분석할 경우 그 상징의 기본 전제, 즉 어디에 근거한 상징인가를 먼저 잡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엘리엇의 황무지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상징의 전체 의미 체계를 구성하는 사고 방식이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깔지 않고는 상징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말장난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런 전제가 올바르지 않을 경우 상징의 의미를 해석하는 일은 자칫 헛수고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의 상징을 파고들면서 '사회적 가치나 정치, 권력과 생존 이런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도너츠의 구멍이 공백이냐 존재냐를 따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런 현상이라고 생각됩니다. '해석보다는 이 책을 넘어서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하는 생각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는 우선 주인장께서 <파리 대왕>을 정치학 교과서처럼 이해하시려 한 것이 그런 문제점을 낳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상호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파리 대왕>의 상징 역시 굳이 따진다면 정치적 메시지와 100% 무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메시지를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먼저 이 작품의 기본 틀인 '상징의 체계'를 분명히 한 다음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있어서 각각의 신호 체계가 갖는 의미를 분명히 한 다음에 무슨 메시지를 주고받을 것인지 따져야지, 그 반대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파리 대왕>의 원제인 'Lord of the Flies(맞나 모르겠네여?^^)'는 사실 성경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마태복음이던가? 예수님이 예로 드신, 마귀의 이름 '바알세불(또는 바알세붑)'의 뜻이 바로 '파리들의 주님'인 것입니다. 'Lord of the Flies'는 그 바알세불의 의미를 윌리엄 골딩이 영어식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즉 골딩이 말한 <파리 대왕>이라는 제목의 원래 의미는 말 그대로 '악마'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제목을 성경에서 따왔다고 해서 이 작품을 종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서양 문화에서 기독교적인 유산은 굳이 종교적이고 아니고를 떠나 도저히 배제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적인 상징을 사용하면서도 얼마든지 비기독교적인 또는 기독교와 무관한 작품을 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파리 대왕>의 상징성을 작품 전체의 상황 설정에서부터 따져보면 약간 생각이 바뀔 것 같습니다. 우선 이 작품을 정치적 메시지 차원에서 해석하는 것이 왜 무리인지부터 간단히 짚어보고 싶습니다.

 

정치적인 이론 또는 노선 경쟁은 현실 문제의 해결에 대한 각 이론과 노선의 적합성을 따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실 문제란 것의 대전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문제'란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파리 대왕>에서 랠프와 잭의 대립은 정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랠프가 주장하는 것처럼 외부의 '구조'(또는 구원. 영어에선 아마 같은 단어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만...) 이후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을 모두 떠나 원래의 고향(또는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식의 정치 노선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을까요?

 

가령 현재 한국의 정치 세력 가운데 '우리 모두 한국땅을 떠나 우리가 원래 살던 만주땅으로 아니면 우랄 알타이 지방으로 돌아가자'는 정치 노선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하긴, 세상이 워낙 뒤죽박죽이니, 그리고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런 세력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나 세력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그들이 나름대로 정치적 발언을 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정치적이기보다는 다른 차원의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장께서 등장 인물의 성격 분석(정치적 카리스마라고 표현하셨더군요)을 하시면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랠프'라고 하셨던데 이건 옳은 분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중할지는 모르지만 랠프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것으로 보자면 잭이 훨씬 낫죠.

언제 구조될지 모르니 우선 우리끼리 이 섬에서 먹고 살 방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잭)과, 이 섬에서 사는 삶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니 모든 노력을 우리의 위치를 누군가에게 알려 구조되는 데 집중하자는 주장(랠프)...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일까요? 랠프와 그 추종자들은 먹는 것도 변변치 못하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거의 해결하지 못하지만, 잭 일행은 그렇지 않습니다. 잘 먹고, 사기 충천하고... 정치적으로야 나무랄 데 없습니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죠... 이런 점에서 누가 더 합리적일까요?

 

결국 랠프와 잭의 대립은 정치 노선의 대립이 아니고 오히려 정치적-비정치적 경향의 대립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이런 전제에서 이 작품의 나머지 상징들을 해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년들과 섬에 표류해 의식을 잃고 앓다가 죽어버리는 어른 장교의 존재에 대해서 대부분 관심이 없는데, 저는 이 장교가 한때 인간이 직접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던 신들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처럼 인간과 신이 분리돼 있지 않고 정상적인 관계였던 시절의 흔적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 존재는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낡은 도덕, 낡은 종교... 이런 것에 대한 상징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소라는 권위의 상징이겠죠... 하지만 원래 권위의 상징이란 표현은 정확하지 않습니다(아주 저널리즘적인 표현인 셈이죠). 무엇을 상징하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가를 따져야죠. 소라는 소년들이 만들어낸(사실은 어른들과 함께 살면서 배운) 규범과 도덕 등을 의미합니다. 그 규범과 도덕을 통해 최소한의 '질서'가 유지됩니다. 하지만 '합리성'을 내세우는 잭에게는 그따위 규범과 도덕 따위는 전혀 의미가 없죠.

얼굴의 장식은 인간의 원래 본성을 덮고 위장하는 모든 명분과 허위를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신이 창조한 원래의 모습을 가리는 모든 것을 말하는 거겠죠.

랠프가 구조를 위해 피우는 불은 사실 신에게 바쳐지던 고대의 제사를 상징합니다. 이건 굳이 상징이랄 것조차 없죠. 유대교 전승에서 제사는 거의 불을 태워서 드려지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를 통해 인간은 신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구원을 요청합니다.

 

이 작품의 중심 상징은 제목에도 나타나 있듯이 파리들입니다. 돼지 머리에 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파리들... 이 파리들은 잭과 그를 따르는 아이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먹을 것을 위해 아둥바둥하며 형제를 죽이고 우리를 창조한 신의 존재,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신의 존재를 잊으려 하는 우리 인간 모두를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실제로 조종하는 것은 그 돼지 머리 자체입니다. 사이몬은 홀로 이 돼지 머리를 만나 그것, 바로 악마가 말하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너희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나... 너희들은 모두 죽을 것... 이것을 정치적인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전해주려 뛰어가던 사이몬은 잭 일행에게 비참하게 죽습니다. 구약시대에 순교하던 전형적인 예언자의 모습입니다.

 

역시 가장 충격적인 상징은 작품 제일 마지막 부분입니다. 언제 구조될지 알게 뭐야... 이렇게 생각하며 온갖 범죄를 서슴치 않고, 끝내 랠프를 죽이기 위해 쫓아가는 소년들... 그런데 그들 앞에 갑자기 어른들이 나타납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어른들... 막강한 무기와 화력을 지닌 어른들...

 

볼썽사납게 얼굴에 칠을 하고 짐승처럼 날뛰던 아이들... 조그만 섬에서 그들은 권력과 권위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어른들, 원래 소년들이 있던 그 세상과 비교하니 그들은 그저 초라할 따름입니다. 초라할 뿐만 아니라, 실은 이게 더 중요한데, 추악하고 더럽혀진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 때 나타난 장교가 소년들에게 한 말이 기억나십니까?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냐?"

창세기에서 범죄하고 숨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네가 어디 있느냐"한 말과 마찬가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흐른 느낌이 있군요. 하지만 굳이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해도 이 작품의 메시지를 종교적인 입장에서(최소한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런 세계관의 바탕 없이는 이 작품의 상징과 구성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상징을 중심으로 구성된 작품을 분석할 경우 그 상징의 기본 전제, 즉 어디에 근거한 상징인가를 먼저 잡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엘리엇의 황무지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상징의 전체 의미 체계를 구성하는 사고 방식이나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깔지 않고는 상징이라는 것이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말장난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 작품을 보면서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좀 답답한 얘기입니다.

냥 성경적인 인간관으로 보면 간단히 풀리는 문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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