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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7 (終)

Joyfule 2009. 11. 3. 10:14
     파트리크 쥐스킨트 - 좀머씨 이야기 17.   
    나는 둑 위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아저씨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 내 모습은 아마도 뭔가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지을 수 있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놀랐다. 
    나는 놀랐다기보다는 내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당혹스러웠으며,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처음에 나는 아저씨가 그곳에 서서 
    뭔가 잃어버린 것을 물 속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누가 신발을 신은 채 물 속에서 뭔가를 찾으려고 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아저씨가 다시 앞으로 전진하였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이제 목욕을 하려는가 보다. 하지만 누가 밤에, 
    그것도 10월에 옷을 다 입은 채 목욕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나중에 아저씨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때 
    이제는 아저씨가 호수를 걸어서 건너려는가 보다라는 
    터무니없는 한심한 생각조차 했다
    수영을 해서 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 1초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다. 
    좀머 아저씨와 수영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건 절대 아니었다. 
    수심이 100미터였고, 반대 편 둑까지의 폭이 5킬로미터인 
    호수의 바닥을 허겁지겁 걸어서 가로지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어느새 물이 아저씨의 어깨까지 차 올랐고 다음으로 목까지 차 올랐지만….. 
    여전히 아저씨는 호수 안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그러다가 아마도 바닥이 고르지 못해서였는지 
    아저씨의 몸이 불쑥 솟구치며 물이 다시 어깨까지 닿았다….. 
    그래도 아저씨는 그렇게 위로 솟구친 다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 물이 다시 목까지 찼다가, 
    목구멍까지 찼고 이어서 턱 위까지….. 
    그제서야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지만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지르지도 못했다. 
    (좀머 아저씨! 정지! 뒤로!)라고 소리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 그곳에서 황급히 뛰어가지도 않았으며, 
    아저씨를 구할 수 있는 배나 뗏목 혹은 
    구명용 공기매트를 찾으려고 해 보지도 않은 채 
    저 멀리에서 가라앉고 있는 작은 점에서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아저씨의 모습은 사라졌다. 
    밀짚모자만이 동그라니 물위에 떠 있었다. 
    그리고 무지하게 길게 느껴지던 30초 혹은 1분이 지난 다음 
    몇 개의 물방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밀짚모자만이 아주 천천히 남서쪽을 향해 떠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어둑어둑한 원경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쳐다보았다. 
    좀머 아저씨가 없어졌다는 것이 알려지기까지에는 2주일이 걸렸다. 
    우선 제일 먼저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다락방의 월세를 받으려던 리들 어부 아저씨의 부인이었다. 
    좀머 아저씨가 2주일 동안 돌아오지 않자 
    그 아주머니는 슈탱엘마이어 아줌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고, 
    슈탱엘마이어 아줌마는 히르트 아줌마에게 상의를 했고, 
    히르트 아줌마는 손님들에게 아저씨에 관해서 물어 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도 좀머 아저씨를 봤다거나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2주일이 더 지난 다음 리들 아줌마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기로 했고, 
    그후 몇 주일이 지난 다음에 신문에 아저씨를 찾는 작은 광고가 
    아무도 그 사람이 좀머 아저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아저씨의 여권용 사진과 함께 나왔다. 
    사진에 좀머 아저씨는 검은 색 머리에 숱이 많았고, 
    집요한 눈빛과 입술에는 확신에 차고 
    거의 뻔뻔스럽게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밑에 처음으로 좀머 아저씨의 온전한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애기디우스 좀머. 
    잠깐 동안 좀머 아저씨와 아저씨의 비밀스러운 행각에 대한 말들이 
    동네에서 주요 화젯거리가 되었다. 
    "완전히 돌아 버렸을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했다.
     "길을 잃어버리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을 못 찾았던 것이 분명해. 
    아마 그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 무엇이고, 
    자기가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거야. "
     "다른 나라로 이민 갔나 봐."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밀폐 공포증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유럽이 
    너무 작게 느껴져서 캐나다나 호주로 갔을 거야."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계곡에 떨어져 죽었을는지도 몰라." 
    어떤 사람들은 또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이 호수까지 미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가 신문이 누렇게 변색되기 전에 
    좀머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는 수그러졌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그를 그리워하지는 않았다. 
    리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몇 가지 물건들을 지하실의 한구석으로 몰아 넣고, 
    그 방을 여름 행락객들에게 빌려 주었다. 
    하지만 아줌마는 그런 사람들을 (여름 행락객)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름) 이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다른 생각이 들게 하기
    (좀머 Sommer씨는 독일어로 여름이라는 뜻) 때문이라고 하면서
    (도시 사람들) 혹은 (여행객) 이라고 불렀다. 
    나는 침묵을 지켰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주 늦게 집에 도착하여 텔레비전의 나쁜 효과에 대한 
    일장 훈계를 들어야만 했을 때에도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도 역시 하지 않았다. 
    누나에게도 하지 않았고, 형에게도 하지 않았으며, 
    경찰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코르넬리우스 미켈에게조차 
    죽음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무 위에서 들었던 그 신음소리와 
    빗속을 걸어갈 때 떨리던 입술과 간청하는 듯하던 
    아저씨의 말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 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