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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사진으로만 보는 북한 평양의 명승지

Joyfule 2006. 8. 9. 00:53

단군릉

평양직할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에 있는 단군의 무덤. 1994년 10월 29일 개건(改建)되었다. 대박산 동남쪽 기슭에는 옛날부터 단군릉이라고 전해오는 작은 무덤이 있었다.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 <강동현>조,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단군묘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1993년 단군릉 일대를 발굴한 결과 약 5천 년 전의 것이라고 추정되는 두 사람의 인골이 나왔는데, 북한에서는 이를 단군과 그 아내의 뼈로 인정하여, 민족의 시조를 예우하라는 김일성(金日成)의 지시에 따라 새 묘가 지어졌다. 퉁거우[通溝(통구)] 장군총을 본뜨되 그 3배 크기로 9층 계단식 돌각담무덤 형식을 취해 한 변 50m, 높이 22m로 축조되었다. 1994년에 개건됨을 기념해 화강암 1994개로 짜 맞췄다고 한다.

 

 

동명왕릉

평양직할시 역포구역(力浦區域) 무진리(戊辰里)에 있는 진파리고분군(眞坡里古墳群) 중에서 가장 큰 고분.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무덤으로 1947년 발굴·조사되었다.
높이 8m, 한 변의 길이 22m인 방추형(方錐形) 석실봉토분(石室封土墳)으로, 2층의 석회암 기단을 설치하였다. 내부는 널길[羨道(연도)]과 널방[玄室(현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널방 좌우벽에 감실(龕室)이 설치되어 있다. 널방은 한 변의 길이가 4.2m인 정사각형 내벽과 높이 3.8m인 정자식 천장을, 잘 다듬은 44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일부 벽면에 연꽃무늬가 남아 있다. 돌기단이 있는 분구(墳丘)는 고구려 돌무지무덤[積石塚(적석총)]의 전통을 계승한 형태로 추측된다.

 

 

 

대동강

대동강은 평안남도 대흥군과 함경남도 장진군의 경계에 있는 한태(1,356)에서 시작하여 황해남도 은율군과 남포시 경계를 이루면서 조선서해로 흘러든다. 길이는 450km이고 유역넓이는 20,247km²이다.

 

 

대동문

평양직할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평양성 내성의 동문(東門). 북한의 국보급 제1호. 석축 위에 팔작지붕의 2층 누각을 갖춘 조선 중기의 성문이다. 전체높이 19m, 석축높이 6.5m이고, 문루는 앞면 3칸(15.9m), 옆면 3칸(10.34m)이다. 6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며, 1576년(선조 9)에 이르러 그 자리에 지금의 성문이 새로 건립되었고, 1635년(인조 13)에 무지개문을 고쳤다. 이 문은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통하는 문으로서 평양성의 성문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문이었다. 고구려의 건축물을 계승, 발전시킨 조선 전기 건축의 형식과 구조를 보여주며 장엄함과 아름다움, 경쾌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성문 건축물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만경봉

평양직할시 만경대(萬景臺)의 남동부, 대동강 기슭에 있는 산봉우리. 높이 45m. 예부터 이곳에 오르면 만 가지 자연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만경봉이라 불렀다.
기반암은 혈암과 시생대의 편마암이며 소나무·평양단풍나무·전나무·진달래·넓은잎정향나무 및 관상용 꽃나무 등이 우거져 있다.
만경봉의 동쪽 벼랑 밑으로는 평양에서 남포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 있으며,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고노섬과 두루섬이 있다. 봉우리 꼭대기에 있는 만경대 정각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며 남서쪽 기슭에는 김일성 생가가 있다.

 

 

만경대

 

 

 

을밀대

평양직할시 중구역(中區域) 금수산(錦繡山)에 있는 고구려 때 세운 누정(樓亭). 일명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한다.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의 내성(內城)을 쌓으면서 그 북장대로 세운 것이다. 을밀대가 있는 축대는 높이가 11m로, 축대 위에는 동·서·북 3면에 평여장(平女墻)을 쌓았고 일정한 간격으로 총안을 설치하여 고구려 축성술의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축대 위에 세운 누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에 이익공 외목도리식 두공을 얹고 겹처마의 합각지붕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누정의 기둥으로, 밑부분은 짧은 석주(石柱)로 하고 윗부분은 목주(木柱)로 하여 비바람을 피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을밀대에 조각되어 있는 장식들은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들인데, 특히 일반 형식을 벗어난 화반(花盤)장식은 중장여와 주도리 사이를 띄우고 이곳에 화반을 겹으로 놓이게 하여 아름다움을 더하게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1714년(숙종 40)에 고쳐 지은 것이다. 북한문화재 사적 제7호.

 

 

청류벽/정

평양직할시 중구역(中區域) 금수산(錦繡山) 청류벽 위에 있는 정자. 전망이 매우 좋은 곳으로 유명하며, 그 터는 본래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쪽 장대(將臺)터였다고 한다. 청류정은 고구려시대에 처음 세우고 1716년(숙종 42) 고쳐 세운 평양성 내성의 정해문 문루를 지금의 자리에 옮겨 누정(樓亭)으로 만든 것이다. 앞면 3칸(11.08m), 옆면 2칸(6.2m)이며, 낮은 밑단 위에 세운 10개의 흘림기둥이 합각지붕을 받치고 있다. 다른 누정들보다 가운데칸이 몹시 넓은 것이 특징으로, 이는 성문루를 옮겨다 지은 것과 관련된다. 북한 사적 제12호.

 

 

평양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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