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
지난주부터 필자가 하고 있는 기도자세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며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4년 동안의 기도훈련이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도자세는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몸에 익힌 습관이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힘을 주어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면서 집중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이다. 즉 최소한의 힘으로 기도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필자가 기도하는 것은 눈으로 지켜보면 전심으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동안 필자의 기도자세를 훈련생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이유이다. 겉으로는 많은 힘을 주지 않는지 몰라도, 속으로는 지속적으로 근육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겉으로 보아서는 잘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필자는 그동안 18년을 기도하면서 최소한의 힘으로 기도에 집중하는 능력을 키워왔다. 그러므로 처음 기도하거나 이제 기도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필자와 똑같은 자세로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집중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는 연습이나 훈련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세로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기도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성령과 동행하는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와 주셔서 만나주시고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기도를 열심히 하더라도,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목적에서 눈을 떼면 안 될 것이다. 기도를 열정적으로 하는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게 바로, 자신이 얼마나 희생적으로 기도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거나 자기만족의 기도를 하기 십상이다.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정해주시고 만나주셔야 하는 것이지, 내가 얼마나 희생적이고 열정적으로 기도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필자의 기도자세를 따라 기도를 하더라도, 필자와 똑같이 힘을 주어서 집중이 잘 되는 것에 만족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집중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해서가 아닌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급해하며 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서 이 기도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무지막지하게 힘을 주고 기도하더라도 헛수고에 불과할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이 기도훈련을 하면서, 필자보다 더욱 힘을 주어서 기도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고, 필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한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성령이 찾아오시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기도를 할 때 마음이 하나님께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설령 은혜로 성령이 찾아와 주셨다고 할지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떠나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칼럼의 주제인, 성령과 동행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눈치 채셨을 것이다.
바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하루 종일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려고 애쓰고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필자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훈련을 시키면서 이 얘기를 수도 없이 했지만, 많은 이들이 머리로는 이해하였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옮겼을지라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은 필자의 요구대로 아침에 깨어서 한 시간, 자기 전에 한 시간, 낮에도 틈나는 대로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고 있노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하는 시간을 재시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삶의 현장에서 보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7,18)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12;23)
필자가 10년 동안 기도를 했을 때에는 처음부터 지금의 기도자세로 기도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기도자세를 바꾸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기도자세로 기도하게 되었다. 기도자세는 달랐지만 마음만은 어떻게든 하나님을 만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래서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는 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은 물론, 낮에 일터에 나가서도 하루 종일 기도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래서 자동차 안에서도 항상 기도하였고,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심지어는 산책하거나 운동할 때도 하나님을 부르면서 기도하였다. 그렇게 10년을 기도하였을 때,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너는 죽기 살기로 나를 찾아왔었다.’고 칭찬해 주셨다. 말하자면 집중력을 요하는 기도자세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을 만나려는 갈급하고 절박한 마음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훈련생들이 이런 것을 너무도 간과한다. 그래서 자신이 아침과 밤에 그리고 낮에 기도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가난해져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를 잘 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성령이 찾아오실 거야” 하면서 자기만족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세나 기도한 시간을 보시지 않는다. 오직 마음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지만을 보신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서 애걸복걸하고 안달복달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울 영성학교 식구들은 성실하게 열심히 기도는 하고 있지만, 이런 마음이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 코칭 때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을 해도 그 때 뿐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당신이 얼마나 많은 힘을 주고 기도하고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하였든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의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의 기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하나님께 마음이 가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당신이 지금의 기도방식으로 성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 전속력으로 달려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이래서는 안되는데
필자의 책상 앞에는 충북 영동의 금강에서, 아내와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 놓여있다. 사진을 보면 필자의 손에 여울낚싯대와 미끼를 든 검정봉지가 들려있다. 누가 보더라도, 봄이 오는 강가에 소풍을 가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을 찍은 날짜를 보면 2005년 4월 25일이다. 필자가 회심하고 기도를 시작한지 약 3년 정도 지났을 때이다. 당시에 필자는 아내와 함께 화장품 캐리어를 끌고 재래시장과 식당가를 누비며, 저가화장품 방문판매를 하며 고단하고 팍팍한 시절을 시작한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다. 그러나 사진을 찍을 당시는 방문판매를 얼마나 할지 아무도 몰랐던 시절이다. 사진을 찍고 나서 무려 10년을 더 했으니까, 아마 미래의 일을 알았더라면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망연자실하며 통곡하지 않았을까? 아마 지금의 기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방문판매를 하다가 신산한 인생을 마치지 않았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그러나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되찾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다면, 패역무도하고 배은망덕한 가증한 인간이라는 저주를 받아 지옥에 던져지더라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그 시절을 깜빡하면서, 필자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된 생각과 행동을 했을 때 후회 막급한 생각이 폭풍처럼 밀려오면서, 송구스럽고 황송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게 된다. 그게 필자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것이다.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아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백만분의 일이라도 갚지 못할망정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다니,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가 정말 힘들었을 때의 사건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오늘은 필자가 가슴에 새기는 심정으로 그 때의 사건들을 말씀드리고 싶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30대 초반에 필자가 야심차게 시작한 사업에 실패하고 나서 무지막지하게 인생이 떠내려갔다. 닥치는 대로, 학원강사, 우유배달, 자장면 배달, 다단계사업, 보험외판원, 길거리에서 계란빵을 구워 팔고 막노동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한번 꼬여버린 인생은 풀리지 않았다. 끔찍한 좌절과 실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필자는 세상의 끈을 붙잡으려고 아등바등 거리던 손조차 그만 놓아버렸다. 낚시가방을 들고나가서 하루 종일 낚시터에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이면 술을 마시고 취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아내는 보다 못해, 생계비라도 벌려고 백화점 점원으로 취직했다. 매일처럼 낚시터에 앉았지만 마음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그냥 맞으며 땅거미가 내리는 저수지에 앉아있었다. 비에 젖어 몸은 추웠지만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윽고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워지자 지나간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고, 필자의 눈에는 회한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울다가, 하나님께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기도를 시작하게 된 그 때가 필자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또 다른 사건은 필자가 우유배달을 했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그 때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기 전에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을 하던 시절이었다. 새벽에는 우유배달을 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아침을 차려먹고 보험회사에 출근해서 보험외판원을 했었다. 어느 겨울날 새벽에 일어나보니 영하 10도가 넘었으며, 간밤에 폭설이 내려 도로라 빙판이 되었다. 우유배달은 새벽에 해야 하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이라 도로는 그야말로 빙상장이 따로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유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얼음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두발을 도로에 내리고 안간힘을 쓰며 중심을 잡으려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때 브레이크를 잡으면 순식간에 오토바이가 도로에 미끄러지고 만다. 그래서 브레이크도 잡을 수 없다. 마음속에서는 눈물 섞인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러나 몸부림도 소용이 없이, 오토바이가 도로에 넘어져 미끄러지면서 달리는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처럼 삶이 절망스러웠을까? 그러나 감사하게도 목숨이 붙어있기에, 그 때 그 얘기를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리라.
세 번째 사건은 화장품방문판매를 처음 시작할 무렵이다. 처음에는 아내와 단둘이 한 게 아니고, 봉고차에 여러 사람들이 타서 소도시나 읍면단위를 돌면서 한사람씩 내려주면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봉고차 주인과 판매원이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아내가 처음 화장품 방문판매를 하겠다고 하자, 필자는 아내를 혼자 내보내는 게 너무 불안했다. 그래서 필자도 봉고차에 함께 타보기로 했다. 그러나 필자가 장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아내가 낯선 남자의 봉고차를 타고 타지를 떠돌아다니는 게 염려가 되어서였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가 보았다. 하루 종일 봉고차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게 무료해서, 용기를 내어 필자도 한번 해본 게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중년남자가 생전부지의 여성에게 화장품을 발라주며 파는 것은 낯설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전혀 못 판 것은 아니었다. 시골에는 이런 저런 장사꾼들이 오니까 필자도 전혀 못 파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충남 서천에 가게 되었다. 서천은 작은 읍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판매원이 많아서 중심가에 다른 판매원을 내려주고, 필자는 읍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에 내려주었다. 내리고 보니 집들이 띄엄띄엄 있었으며 상가가 거의 없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몇 시간동안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낙담과 좌절의 생각이 폭풍처럼 들어왔다. 그래서 이제 이 일을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천역사에 들어가 자그마한 대합실에서 고개를 처박고 몇 시간동안 절망해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사건이 아내가 더 이상 봉고차를 타지 않고, 필자와 단둘이 화장품 판매를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절망스럽던 그 때를 추억하면, 고단한 삶이 생각나서 눈이 흐릿해진다.
오늘 이 사건을 얘기하는 이유는, 필자가 그 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는다면 개죽음을 당해 지옥에 던져져도 할 말이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등 따습고 배불러지니까 스멀스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가고 있다. 그래서 가끔씩 하나님이 싫어하는 생각과 행동을 생각 없이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필자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필자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도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깜빡깜빡 잊었다는 송구함과 황송함에 가슴이 저려서, 그 때 그 사건을 여러분에게 고백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시13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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