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나는 성경의 방식
우리네 교회는 영접기도를 마치고 주일성수를 하면 성령이 안에 들어오셔서 거주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성령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표출하면, 믿음이 없다는 질책으로 되돌아온다. 그래서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옷을 홀랑 벗고 다니면서 훌륭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위선을 떨고 있는 게 우리네 교회의 실상이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믿음이 있으니까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는 성경의 근거를 들어 영접기도를 성경적인 방식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신앙고백이라는 게 1분짜리 영접기도를 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으며, 믿음이라는 게 자기 확신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믿음의 능력도 없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증거나 열매도 없는데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교회마당을 밟고 있는 이들이 우리네 교회에 널려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성경의 방식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다.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1~13)
위의 성경이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오는 사건을 시술한 첫 마디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이르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이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이후에 성령이 내려오신 사건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그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신 성경의 방식은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슨 내용의 기도를 했겠는가? 당연히 성령의 내주를 간절히 원하는 기도였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내용일 것이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1,42)
위의 구절은 베드로의 설교로 삼천 명의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입교한 이후의 일이다. 사도들은 새로 입교한 교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기도의 방식을 가르쳐 주었는데, 놀랍게도 자신들이 성령을 받은 방식대로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다는 내용이다. 사도들이 기도훈련을 시켜 배출된 제자가 바로 스데반이나 빌립집사와 같은 걸출한 성경의 위인들이다. 이들도 사도들과 동일하게 오로지 기도에 힘쓴 이후에 성령이 그들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성령의 임재와 내주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은 겨우 1분 동안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을까?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5)
위의 구절이 바로 어느 정도의 기간으로 기도하였는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이 기도한 시간은 ‘몇 날이 못 되어’라는 구절로 가늠할 수 있다. ‘몇 날’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원문은 ‘폴라스 타우타스 헤메라스’이며 영어로는 ‘these many days’이다. 즉 기도한지 많은 날이 못되어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들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오직 기도하기에 힘썼으므로, 하루에 15시간정도 약 열흘 동안 기도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약 150시간 정도를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필자가 많은 날이 아니라는 기간을 열흘 정도로 가정해서이다. 물론 정확한 기간은 모르지만, 우리네 교회처럼 겨우 몇 분 정도 영접기도를 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또한 오로지 기도했다는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자. 이 단어의 헬라어는 ‘프로스카르테룬테스’이다. 예전에는 이 단어를 ‘전심으로’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어쨌든 전심이든지, 오로지... 힘썼다고 하든지 간에, 이 말의 뜻은 대동소이하다. 필자가 다른 말로 대체해보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죽기 살기로, 혹독하게 라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태도로 성령의 임재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의 영접기도에 아멘 하는 행태와는 판이하게 다르지 아니한가? 그게 오로지 기도하거나, 전심으로 기도하기에 힘썼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네 교회지도자나 교인들이 필자의 주장에 수긍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영접기도를 하고 주일성수를 해서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와 능력, 변화와 열매가 있으신지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아무런 변화가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어떤 영적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지도 않는다. 그냥 기독교를 믿는 종교인으로, 성경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면서 예배의식을 드리고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신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제자들을 보라.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면서 영혼구원을 하는 도구로 사용되다가 천국에 들어갔다. 그러나 당신은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 귀에 거슬릴 것이다. 그러면서 꼭 그래야만 되느냐고 되묻고 싶을 것이다.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눅7:19~23)
옥에 갇힌 세례요한은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여,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서 신분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 대답으로 예수님은 기적과 이적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분별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눅13:3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예수님의 사역은 귀신을 쫓아내며 고질병을 고치다가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는 대문을 활짝 열어주셨다. 그러면서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똑같이 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나 성령이 임재하고 있다고 믿으라고 다그치는 우리네 교회가 이런 사역을 하고 있는가? 귀신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하고, 고질병 환자들은 병원에 소개해주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하나님을 만나는 성경의 방식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는 기도뿐이다. 열심히 불러서는 안 된다. 전심으로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써야 한다. 그러나 이 기도를 훈련하고 있는 영성학교의 식구들조차 하나님을 부르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성령을 만나려면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미친 듯이 하나님을 찾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숙제하듯이 의무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성령이 오시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자신에게 가 있는 자녀만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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