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기도로 채우라.
사람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지만 자신 안에는 마음을 지배하는 3종류의 세력이 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만 자기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 등 각종 중독에 빠진 사람, 탐욕이나 방탕, 간음과 불륜에 쉽게 빠지거나 분노를 이기지 못해 자주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자기마음을 통제하지 못한다. 성경은 이런 사람의 뒤에는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소원하는 하나님이 지배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지배하는 사람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성령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삶의 지난한 덫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도움을 요청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기도를 습관이 숙제로 남을 것이다.
(1) 하나님의 나라는 어떠한 상태인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고’라는 구절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신약에서는 뜨거운 주제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든지 전 재산을 다 팔아 소유해야하는 귀한 보물(마13:44~46)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으로 나타나는 내면적인 왕국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징표로 성령 안에서 의와 평안과 기쁨이 충만하고(롬14:17),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전 4:20)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고 성령의 충만한 상태인 평안과 기쁨이 넘쳐난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애타게 기다리던 것이 아니던가?
마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비결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꿈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일이 분명히 일어날 수 있다고 성경에 약속해 놓았다. 그러한 상태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주하셔서 나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삶을 말하고 있다. 즉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로서 성령이 나를 지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성령 충만은 우리에게 생소한 말이 아니다. 교회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오는 단어가 아닌가? 그렇다면 성령 충만한 상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령 충만한 상태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다. 기도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방언이 튀어나오며 가슴이 벅차고 뛰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이 내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증거도 같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고 놀라운 능력과 신속한 치유가 임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고 하였으니까 말이다. 각종 집회나 예배의 절정에 이르러서 뜨거운 찬양에 이어 격렬한 기도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때는 누구나 성령 충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기도를 마치고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도 같이 식어버린다. 뜨겁던 통성기도시간에 성령 충만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성령 충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또한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기도했다면 이렇게 응답이 더디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리가 없다. 성령 충만하다고 여겼던 모든 게 혹시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필자가 이십여 년 동안 평신도 시절에 다녔던 교회는 성령 충만을 강조하고 예배 때마다 뜨거운 통성기도로 교회가 떠나가도록 우렁차게 기도했던 그런 교회였다. 기도시간마다 뜨겁게 기도하였으며 성령 충만하다고 의심해 마지않았지만 기도는 응답이 없었고 삶은 고단하고 팍팍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필자가 목회자가 되어서 만만치 않은 사역을 하게 됨에 따라 다시 성령 충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 뒤로 기도에 몰입하여서 수년을 보낸 뒤에 서서히 성령 충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었다. 성령 충만의 상태는 뜨거운 분위기에서 열정적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는 잘 모른다. 찬송을 부르기만 하면 성령 충만으로 마음이 즐거워진다면 유행가를 부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주위의 열정적인 분위기에 압도되어있다면 내적인 힘인지 외적인 느낌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성령 충만한 상태는 기도할 때보다 기도가 끝난 후의 상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도가 끝난 지 오래되어 격정적인 마음이 식은 상태에서도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고 찬양이 흥얼흥얼 입에서 흘러나온다면 성령 충만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되어야하며 계속된 기도로서 항상 재충전되어 있어야 한다. 정해진 기도시간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도 마음속으로 기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성령 충만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기도시간이 아무리 뜨거웠을지라도 기도가 끝나고 마음속에서 영적인 기도가 같이 끝난다면 성령 충만한 기도는 아니다. 사실 기도할 때도 성령 충만한 상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묵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였다면 성령 충만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를 분별할 수 있다. 필자는 기도를 시작할 때 성령 충만이 임하지 않으면 말씀의 묵상이나 간구에 들어가지 않는다. 계속적으로 성령님을 부르고 찾으며 충만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 오래되지 않아 충만한 상태를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통성으로 기도한다면 성령으로 기쁘고 평안한 상태인지 외부적인 요인으로 그렇게 느끼는지 분별하기 힘들다.
성령 충만한 상태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한 상태가 곧 하나님을 이룬 상태인가 아닌가? 대답은 아직 아니다. 성령 충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다른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또한 성령 충만한 상태가 단기간 유지되거나 들쭉날쭉한 상태라면 아직 멀었다고 보아야한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기도는 오랜 훈련으로 습관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성령 충만한 상태는 일정기간이 아니라 날마다 하루 종일 유지되어야한다.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기도는 습관이 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기도의 모습은 무엇일까?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고(살전 5:17),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 기도를 했던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였으며(행10:2), 예수님은 늘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다.(눅22:39) 우리가 일고 있는 기도의 모습과 다르다. 우리는 새벽기도회만 나가면 적지 않은 기도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일쑤이고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할라치면 대단한 기도를 하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습관을 좇아서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음이다.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라와 더불어 액자에 넣어져 거실이나 사무실에 많이 걸려있는 성경말씀이다. 이렇게 유명한 말인 만큼 이를 모르는 크리스천은 없겠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말의 빈도나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이는 별로 없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이 새벽기도회를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유대인처럼 하루에 3번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기도하는 횟수나 시간보다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기도의 방법을 말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각종 예배에 참석해 기도하거나 새벽기도를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같은 기도가 성령 충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필자가 이미 경험한 사실이기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깨달음을 얻기를 원했다.
그러다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에 겨우 깨닫게 되었다.
성령 충만한 상태는 늘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일을 하던지 쉬지 않고 묵상으로 기도하고 있으며 찬양이 흘러나오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한두 번 기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시로 깨어서 기도하여야 가능하다.(막 14:38) 즉 일이나 공부 등 집중해서 무엇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늘 기도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기도를 한다면 하루 종일 성령 충만한 상태가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런 기도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인도하여야 할 수 있기에 오랜 경건의 훈련으로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가능하다. 필자도 목회자가 되어서 3년이나 걸릴 정도로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이렇게 쉽지 않지만 고단한 삶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해내야 할 것이다.
쉼 없는 기도를 통해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게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이 나를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나라가 내게 임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쳐서 순종하여야 가능하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인 거룩하고 깨끗한 성품으로 자신을 가꾸려는 노력이 아주 중요하다. 성령 충만한 상태라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뜻을 잘 알고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기록해 놓았으므로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꾸준한 습관으로 들여야 한다. 그렇지 많다면 성령 충만은 신비적인 모습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주변에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도 중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투의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렇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성경적인 아니라 단지 자신의 느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을 벗어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을 뜻을 분별하는 일에 무지하므로 이런 사람들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어쨌든 성령 충만한 상태라면 매사의 삶에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에 집중해야한다. 하나님의 뜻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깨끗하고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작은 행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성령과 거주함으로 조금씩 변화되는 것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하나님의 나라로 채워지는 삶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2) 기도의 개념을 바꿔라.
기도란 하나님과의 교제의 한 형태로서 찬양, 감사, 간구, 방언, 고백, 영적 교통 등을 일컫는 말이다. 기도의 형태 중에 중심을 이루는 것은 찬양과 간구이며, 간구 중에서 가장 첫째 되는 내용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과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일 게고 성령받기를 소원하며 일상의 삶에서 필요한 내용을 구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개인기도는 모든 상황에서 가능했으며 실제로 응답되었다. 그렇지만 기도란 구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들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기뻐하시는 내용이 되어야 소원하는 일들을 응답받을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에 아랑곳없이 자신이 소원하는 내용을 희생적으로 간구하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다. 그래서 이루어진다면 그래도 좋겠지만 오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응답이 없는 상황은 하나님과의 돈독한 관계를 의심하게 되고 실망 끝에 점점 멀어지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삶의 덫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하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하시는 기도로 채워야 할 것이며, 지금까지 잘못해왔던 기도의 모습들은 철저하게 바꾸어야 할 것이다.
메마른 기도내용으로 메우지 말고 먼저 성령 충만을 구하라.
다시 말하자면 기도란 하나님과의 교제로서 영혼의 교통이다. 그렇다면 기도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필요한 내용을 강청하는 간구로 기도시간을 채운다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명령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아도 응답받기가 쉽지 않을 터에 떼를 쓰며 명령조로 말한다면 결과는 실망뿐일 것이다. 오랜 기도에도 응답이 없었다면 이 같은 자신의 기도모습을 곰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과 내 영혼이 깊게 교통하고 느끼는 기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간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간절히 요청해야 한다.
렘 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과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간절히 찾고 부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도를 시작하면 먼저 간절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성령이 내 안에 임하고 거주하기를 지속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필자는 기도의 상당부분을 이러한 시간으로 채우고 있으며 일과시간 중에서 묵상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수시로 부르며 성령이 내주하기를 간청하고 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것을 느끼지 않는다면 간구를 시작하지 않고 계속해서 요청하면서 기다린다. 오랫동안 기도하지 않았거나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평상심을 잃었다면 성령이 임하시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주 기도하는 중이라면 오래지않아 평안과 기쁨이 오는 느낌과 함께 성령이 마음에 가득 채워지게 된다. 성령 충만한 상태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은 찬양이나 감사, 간구를 해보아서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기도가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상태라면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성령이 이끄시는 기도로 몰입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직은 성령 충만한 상태가 아니므로 계속해서 성령을 부르며 찾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성령과 교통하며 교제함이 없는 기도는 무의미하다. 설령 간구하는 기도를 못했다 할지라도 성령 충만으로 채웠다면 기도를 마치고 기쁘게 자리에서 일어나도 좋다. 하나님은 우리가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소원하는 내용을 잘 알고 계시며 응답해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간구보다 찬양과 감사로 채우는 기도를 해라.
눅 11:2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위의 성경으로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찬양이며 감사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당신이 영화롭게 여김을 받으심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 역시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들의 목적을 이루는 간구로 기도시간을 채우고 있다. 이렇듯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디고 응답이 없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시기에 우리가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소원을 잘 알고 계시다. 목소리가 터지도록 소리치지 않더라도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훤히 꿰뚫고 계시다.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기뻐 받아들이셨다면 응답이 신속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관심이 없고 우리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하기에 기도의 능력이 임하지 않는다.
필자는 기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면서 곧이어 찬양과 감사를 이어서 반복하고 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은 상태에서 간구를 하는 것은 팍팍하고 힘들어도 찬양과 감사는 늘 쉽고 기쁘다. 하나님이 우리의 찬양과 감사를 얼마나 기쁘게 여기시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낮 동안의 일과 시간에 깊은 기도를 하기는 어렵지만 짬짬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과 감사를 반복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면 성령이 충만해지는 신호로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껴진다. 이처럼 기도란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혼이 교통하는 통로이다. 그렇다면 감사와 찬양이 어우러지는 시간이 되는 것이 올바른 기도의 모습일 것이다.
희생적인 기도보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라.
약 5:16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기도응답이 속히 오는 비결은 사람마다 강조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어떤 이는 기도원에서의 금식기도를 들기도 하고 십일조나 희생적인 헌금으로 심으라는 사람도 있으며 작정해놓고 새벽기도를 권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말하는 공통점은 희생적인 기도를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간결하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믿음으로 기도하기만 한다면 기도응답이 빨리 올 것을 배워왔고 믿어왔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의심치 않고 기도한 내용이 오랫동안 묵묵부답인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기도만 한다고 하나님이 금방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조건에 부족하기에 기도응답이 더디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을 말한다. 즉 희생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이 효과적인 기도의 비결인 셈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관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자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 털어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랜 성경읽기와 묵상,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하여도 삶에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깨끗하고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여야하며 정욕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는 경건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내 안에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나라가 이루어졌다면 신속한 기도응답은 물론이거니와 귀신을 쫒아내고 질병이 치유되는 등의 초자연적인 능력도 어렵지 않게 갖추게 될 것이고 고단하고 팍팍한 삶의 덫에 빠져있다면 쉽게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마다하지 않고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주변의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임은 느낀다. 그것은 희생적인 신앙행위에 앞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이는 경건의 훈련을 통해 자신을 연단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출 처 : 다음 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 신상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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