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
2) 기도를 하라.
기도를 하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자기 의사를 하나님께 강요하는 기도도 안 된다. 그야말로 마음을 비우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기도를 할 것이다. 어떤 소원을 두고 간절히 기도를 하다 보면 자기의 소원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이 되는 경우가 있다. 기도가 일종의 자기 암시적인 작용을 해 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의 뜻이 변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 어리석은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은 변치 아니하신다. 다만 변하는 것처럼 우리가 느낄 뿐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 하나님의 뜻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다(히 6:17-18). 물론 이 말씀은 죄인을 선택하여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후회함이 없으시다 는 말씀이다.
그러고 상황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우리 개개인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변함이 없으시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하셨으나(출 32:10)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라는 기도를 들으시고(출 32:11)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하셨다(출32:14). 이런 일을 보아서 하나님도 성도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뜻을 돌이키시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랑하셔서 죄인을 징벌하시는 것을 잠시 보류하셨을 뿐이지 죄인을 살려 두신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어떤 일을 이미 결정을 해 놓고 하나님께 결제를 해 달라는 식의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미 하나님께 자기 요구를 강요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 즉 자기의 결정 사항과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것으로 대신 된다고 해도 전혀 섭섭해 하거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자기중심적인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대 홍수 가운데 띄웠을 때 방주를 젓는 노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바람으로 그 방주를 이끌고 가시는 데로 방치해 두었을 뿐이다(창 7:18; 8:4).
우리가 우리의 삶에 어떤 계획을 세워 기도하는 것은 아주 성경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도 성경적이 되어야 한다. 성경적인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는 야고보서 아주 잘 말씀을 하셨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하신 말씀이다(약 4:13-15).
어떤 목적을 설정해 놓고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기도가 응답이 되도록 살면서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즉 목적 설정을 위한 기도가 하나님의 뜻과 합할 경우에 기도에 힘이 붙고 확신이 오며 기도의 빈도수가 높아지고 열정이 생긴다. 그리고 그 확신 속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한 생활이 뒤따르게 된다.
목적을 위한 기도를 하다가 낙심 되여 도중하차를 한다든지 기도에 힘이 없거나 믿음이 생기거나 기도를 하다가 말다 하거나 기도를 중단하고 잊어버린다면 그 목적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다.
3) 하나님의 뜻은 순리성이 있다.
억지로 하지 말라. 아무리 성경적인 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가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그들이 그렇게 왕을 달라고 기도를 한 이유는 사무엘은 늙고 그의 아들들은 사무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삼상 8:5). 그들의 요구를 사무엘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왕을 세웠을 경우에 일어 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폐해를 낱낱이 일러주었다(삼상 8:6-18) 그러나 그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라고 하며(삼상 8:19-20),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거절하고 왕을 세워 주실 것을 강요했다. 사무엘은 그렇게 왕을 세울 경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왕으로 인해 고통을 당할 때도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치 아니하시리라"(삼상 8:18). 그래도 그들은 왕을 세워 달라고 억지를 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워 주셨는데 이 일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다(호 13:11).
하나님의 뜻에는 순리성이 있다. 일이 그렇게 되도록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소위 명문 학군이라는 8학군의 신설 학교인 개포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우리가 8학군에 아이들을 다니게 하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은 아니다. 교회를 개척하게 되였는데 마침 그 때 개포동의 주택 공사에서 지어 입주하기 시작한 아파트 단지의 유치원 3층을 매입하여 교회를 시작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간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개포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공부를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구열이 다른 곳 보다 더 뜨거운 학군에 가서 좋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도록 배려해 주신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생활을 잘 하다가 아이들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아이들의 학교 문제로 이민을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공부하는 일이 그렇게 학교를 옮겨 다닌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시면 일이 잘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물이 흐르듯,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듯 우리들의 세상 삶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의로우시면 당신 자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작용하고 있다. 내 생각을 앞세우고 내 목적 달성을 위해 억지를 써서는 안 된다.
성도들이 억지를 부리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 억지를 들어주시기는 하시지만 결과는 언제나 불행한 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다. 5병 2어의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 삼으로 했을 때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하셨다(요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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