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정반대, 캐나다 음주문화
슈퍼마켓에서 술을 살 수 없다. 대학 캠퍼스 내에서의 시원한 맥주 한 잔? 쇠고랑을 찰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고? 토론토가 위치한 캐나다 온타리오 주(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LCBO매장 입구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에서는 정부가 판매하는 술만 ‘합법적’으로 사 마실 수 있다. 온타리오 주 정부는 ‘LCBO (Liquor Control Board of ontario)'라는 정부 직영 술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주류제조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맥주판매점 ‘비어 스토어’는 주 전역에 436개, 정부 소유 LCBO 판매점(주로 양주 전문)은 598개, 교외지역 판매 대행점은 196개, 포도주양조장 운영 숍은 395개로, 정부 소유의 판매점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레스토랑과 펍(호프집)의 경우 LLBO(Liquor Licensing Board of ontario)라는 표시가 있는 곳에서만 술을 마실 수 있다. LLBO는 술을 판매할 수 있는 하나의 자격증으로 온타리오 정부가 심사를 거쳐 세금을 받고 레스토랑에 판매한다. LLBO는 오후 3시부터 새벽 2시까지만 술을 팔 수 있다. 또한 흡연은 실외에서만, 음주는 실내에서만 허용된다. 야외 음주는 특별 허가가 없는 한 무조건 금지이며 레스토랑이나 펍의 경우 일정 구역 내에서 야외 음주가 허용된다.
LCBO내부모습
캐나다는 애주가들에게 가장 불편한 사회 중 한 곳으로 꼽힐 정도로 술에 대한 접근이 까다롭다. 캐나다의 식료품점과 마트에서는 술을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대신 지정된 스토어(토론토가 속한 온타리오 주 등에서는 LCBO)에서만 술을 팔며, 스토어 상당수는 주정부에서 운영한다.
주정부 스토어는 평일에는 오후 7시까지만 영업하고,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에는 일요일에도 영업을 개시한다. 금요일 오후 시간대에는 스토어가 항상 북적이는데, 주말을 대비해 미리 술을 장만해 두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술 유통을 사실상 국가가 독점하다 보니 문제점도 적지 않다. 독점의 가장 큰 폐해는 가격이다. 캐나다의 술값은 미국에 비해 현저히 비싸다. 심지어 몬태나 주나 아이다호 주 등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국 일부 주에서는 캐나다 맥주를 캐나다에서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다. 높은 술값의 원인 중의 하나는 세금이다. LCBO에서 술을 산 뒤 영수증을 받아보면, 5%의 GST가 자동으로 포함된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온타리오 주는 매년 15%이상의 막대한 주 예산을 LCBO를 통해 벌어들인다.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에서 술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주(州)는 독특한 문화권이 형성돼 있는 퀘백 주다. 그러나 그나마도 밤 11시까지로 술 판매 시간은 한정돼 있다.
한국산 '소주'도 LCBO에 있다. 여기서는 '양주'라 조금 비싸다
야외에서 술을 즐기는 캐나다인들
캐나다 정부가 술 판매 채널과 영업시간 등을 제한하고 있는 이유는 범죄 예방과 청소년 음주 방지 등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론토의 유력지인 토론토 스타지가 웹사이트를 통해 여론 조사를 한 결과,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맥주와 와인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65%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에 재학 중인 Brian(22, 경영학)씨는 “범죄예방은 핑계에 불과하다. 슈퍼마켓에서도 술을 판매하고 있는 퀘백 주와 토론토 온타리오 주의 범죄 발생률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세금 확충을 위해 LCBO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온타리오 주 정부는 지난 2005년 LCBO 민영화를 비롯한 슈퍼마켓, 편의점 등의 주류 판매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으나 LCBO노조와 주류회사들의 반대로 실패한 전례가 있다. LCBO는 연 매출 30억 달러를 기록, 10억 달러 상당을 주정부 금고에 부어 넣고 있으나 캐나다 연방정부측은 “LCBO가 더 많은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이를 거부했다.(Toronto Star지 인용)
토론토 대학의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는 것도 권리’라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다. Gillan(26, 토론토대 경영대학원)씨는 “술을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것도 사람의 권리다. 이렇게 제한을 둘 거면 차라리 마약처럼 판매를 금지하는 것이 어떤가?”라며 정부의 법 개정을 촉구했다. Laura(21, 세네카대 항공학)씨는 “정부가 단순히 세금확충을 위해 이런 제한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며 LCBO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는 청원서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새 학기 마다 '금주 운동'을 벌이는 한국 학생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술에 대한 접근이 까다롭긴 하지만, 술은 캐나다인들의 생활에서 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며 아이스하키 보는 일을 사랑하는 캐나다인들이기에, LCBO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도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