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내로라 하는 한국통(通)이 한국의 반미(反美) 분위기를 탓하는 고언(苦言)을 내놓았다. 현재의 한미관계를 "오랜
결혼생활에 싫증나 실제로는 '딴 살림'을 하면서도 '공개이혼' 할 경우 입게 될 엄청난 파장을 감당하기 어려워 마지못해 한집살림을 하고있는
파경(破鏡) 부부"에 견주었다.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부 부차관보를 역임했던 커트 캠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이
이 발언의 주인공이다. 이 고언(苦言)은 지난 2월27일 워싱턴에서 열린 '참여정부 3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나왔다. 참으로 껄끄러운 비유가 아닐 수 없다.
2006년 새해 들어서도 한국의 반미(反美)분위기를 질타하는 미국 지도층 인사들의 경고성 발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은 매우 언짢다.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 이보다 더한 경고성 메시지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지적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동맹(同盟)관계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 국민 가운데에는 '동맹'이란 용어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동맹국이라 함은 단순히 '서로 사이가 좋은 나라'를 뜻하는 용어가 아니다. 국가안보 차원의 전략적
필요성에서 상호간의 이익이 일치하고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막연히 '사이가 좋은 나라' '친한
나라'끼리 맺는 것이 동맹관계인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동맹'의 참뜻을 깨우치는 것이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환경에 적절히 대처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기본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정치학자 조지 리스카(George Liska)는 동맹관계가 수립되기 위한
기본조건으로 '공통의 적(敵)'이 있어야 하고, '위험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 존재해야 함을 들고 있다. 동맹이라 함은 달리 말해 '전쟁이 나면
같은 방향으로 총을 쏘겠다'는 약속이며, 동맹관계란 동맹국간에 그런 약속이 이행되고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절친한
나라 사이라 할지라도 '공통의 적(敵)'이 없다면 동맹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저 우방(友邦)일 뿐이다. 그럴
경우 동맹관계는 절로 해체(解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동맹관계는 경우에 따라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국의 이해(利害)에 휘말려 함께 전쟁을 해야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친한 나라끼리라고 해서 반드시 동맹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동맹 쌍방은 반드시 일방적인 시혜(施惠)를 기대해서는 안 되며, 서로
'호혜적(互惠的)'이어야 한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비(非)우호국끼리일지라도 '같은 적(敵)을 갖고있을
경우' 동맹을 맺을 수 있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얼마든지 그런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은 사실상의 적국인 소련과
동맹을 맺고 '더 시급한 적(敵)'인 히틀러와 전쟁을 치렀다. 더 큰 적(敵)에 맞서기 위해 적대적 사이인 국가끼리 동맹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사망으로 2차대전이 끝나면서 미소(美蘇) 양국의 동맹관계는 자동적으로 해체죄고 냉전체제로 바뀌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동맹이란 적(敵)이 같은 경우에만 유지되는 한정개념일 뿐, 그 '적(敵)'이 달라지면 동맹관계는 소멸되고
만다.
우리의 대미(對美)인식의 기저(基底)에는 "우리가 이만큼 성장했는데도 미국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열패감이 똬리를
틀고있다. 그런 감정의 근저(根底)에는 분명 '동맹의 본질에 대한 오해'와 '민족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부질없는 자존심 게임이다.
미국이 대한민국과 친해서 또는 대한민국을 존경해서 먼저 동맹관계 맺기를 자청했던
것이 아니다. 미국이 휴전 직후 스스로 한미동맹을 맺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서 한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압박해온 적도
없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한국전쟁 당시 북진(北進)통일을 원했던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의 '휴전(休戰)'
회유에 강력히 저항하며 맞서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과정에서 외교적 기량을 발휘하여 세계 초강대국
미국으로부터 한미동맹체제라는 노획물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한국이 국가의 존립을 위협받을 수 있는
시급한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 받아낸 동맹관계로 인해 우리는 반세기 넘도록 북한의 남침 야욕을 억지하고 민주화와 경제적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동맹을 맺은 나라끼리는 서로 '우호적인 사이'인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것은 동맹관계의
부산물일 뿐, 기본전제는 아니다. 친하니까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니라, 동맹을 맺고서 뒤늦게 친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이 같은 동맹의 냉혹한 국제정치적 논리를 좀처럼 수용하려 들지 않는다. '공통의 적(敵)'이 없을 경우에는
동맹관계를 아무리 강조한다 해도 그 동맹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수년간 우리가 북한당국이 연주하는
'민족공조' 논리에 장단을 맞추며 놀아나 '북한 감싸기' '북한 눈치 보기' '북한 비위 맞추기'에 열중하는 사이 한국의 엄청난
안보(安保)자산인 한미동맹체제는 급속도로 이완되고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저들은 모든 자원을
민족공멸(共滅)의 위기를 자초할 핵 개발에 전력투구하면서 먹거리(식량·비료 지원)에 이어 신발 옷감까지도 거침없이 남한에 요구하고 있다.
'민족공조'는 남북한 공동의 대미(對美)저항과 바로 그런 필요에서 만들어진 조어(造語)이다. 주거(住居)시설 지원요청이 나오지 않고 있음을
다행으로 알아야 할 상황이다.
한미관계는 이제 현시점을 전환점(轉換點)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민족끼리'의 허상(虛像)을 털어 내고 미국을 든든한 동반자로 삼아 번영된 미래를 엮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환경에서 자유민주주의 정체성(正體性)을 올바로 지키는 길일 것이다.
(kon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