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에세이

할 만 하세요? - 정선휘

Joyfule 2013. 7. 30. 10:04

 

 할 만 하세요? - 정선휘

 

 

" 만 하세요?"

그녀의 가슴에 꼼꼼히 체스트 볼을 붙이고 있는 나에게 어느 젊은 여인이 불쑥 던져보는 말이다.  지금 나는 심장의 기능 상태를 찍고 있는 중인 것이다.

 

"네 에?" 반문하는 나에게 "나이 들어서도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요"

그렇게 대답하며 미소를 띄운다. 그렇지만 나는 웃을 기분이 아니다. 나이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 한가운데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고자 한 말은 아닌 줄 안다.  

그런데도 요즈음 나를 위해주는 일련의 말 들이 나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며칠전 일이다. 20대 후반의 예쁜 아가씨가 채용신체검사를 받으로 보호자와 함께 왔다. 체중을 재고 청력, 혈압을 재고 있는데 느닷없이 보호자 되는 그녀의 아버지가 같이 있는 직원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께 이런 일을 시키다니..." 순간 내 얼굴은 화톳불을 끼얹은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건 내가 일상 하는 일 중의 하나일 뿐인데, 왜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해서 나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는지 알 수가 없다. 나이만큼 직급도 높아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아무튼 그 역시 위해 주자고 한 말은 틀림없는 것 같다.

 

좋은 뜻을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이건 누구의 탓인가. 시대의 흐름이며 더 따지고 들면 IMF탓이다. IMF는 수많은 기업체를 도산 시켰으며 많은 숫자의 근로자를 경영합리화를 위한 구조조정이란 이름아래 거리로 내 몰았다.

병원도 예외가 아닌 것이 주재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경영구조상의 약점으로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환율을 감당하며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었고 그 대안으로 인건비 감축이 제시되었다.

 

이른 바 구조조정 위원회가 결성되고 세 사람이 일하던 부서는 두 사람으로, 두 사람이 일하던 곳은 한사람으로 인원 감축작업이 사작되었다는 소문에 직원들은 일손을 놓은 채 전전 긍긍 불안한 날들을 보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는 사람도 늘고 너 아니면 나라는 생각 때문에 동료가 괜히 미워지기도 하고 동료가 웃는 모습만 보아도 혹시 내가 아닌가 하는 우려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노조원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그래도 비빌 언덕을 찾으려고 노조에 가입한 사람도 많았다. 그 날은 잊혀지지도 않는다.

 

그 해들어 가장 추웠던 영하 십 삼도를 기록했던 날, 내가 근무하는 부서의 실장이 직원 모두 모이라고 했다. 그는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우리들이 언제 헤어질 지 모르니 모두 들 마음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하며 헤어지더라도 나중에 잘 되어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을까?

 

바로 그 날, 퇴근시간을 오분정도 앞둔 시간에 걸려온 전화 한통화로 부서 직원 여섯 명중 세 명이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짐을 꾸렸다. 유난히 체구가 우람하던 나의 상사 k실장님, 짐 꾸러미를 든 채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얼마나 슬퍼보이든지...언제 날 잡아서 점심이라도 하자고 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질 것 같지가 않았다.

 

낙점을 받으면 눈물을 흘리며 떠났고 살아남은 직원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일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그러니 네 일, 내일 가릴 처지가 되지 못했다. 특기할 일은 40대 이상, 이른 바 나이 먹은 사람들이 대폭 짤렸다는 것이다. 삶의 경륜으로나 직장생활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창 일 할 수 있는 나이의 사십대를 구세대의 유품쯤으로 낙인찍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십대 남자 사망률 세계1위, 퇴출률 국내1위, 불쌍한 사십대는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증으로 머리칼이 듬뿍듬뿍 빠질 지경에 이르렀다. 사십대의 가장은 아이들 학령으로 보아 경제적 수요가 대폭 증가 될 때다. 아무 일없이 일한다 하여도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질 나이인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나이에 민감한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있으랴. 나이가 죄가 된 세상이 된 것이다.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에서의 일이다. 백야의 저녁에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게 되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러시아인들인데도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은 대단해서 그 넓은 극장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그 본 고장에서 관람한다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남녀 주인공에게 꽃을 증정하는 순서가 있었다.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뚱뚱한 중년 여인이 쿵쿵 단상을 울리며 씩씩하게 걸어오더니 화가 난 듯 불쑥 꽃다발만 내밀고 돌아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하얀드레스에 적어도 머리를 리본으로 묶은 소녀일줄 알았다. 내가 지금껏 보아온 꽃다발 전달자는 이런 생각에서 비껴나 보지 않은 유형이었다. 비행기 스튜어디스 역시 뚱뚱한 사오십대 여인들이 서빙을 해주고 있었다. 늘씬하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여 승무원만 보아 온 나에겐 정말 신기하게 비치기도 했다. 웬지 억울한 생각이 든다.

 

비록 사십 대이긴 하나 아직은 흰 머리칼보다 검은 머리칼이 훨씬 더 많으며, 주름이 지긴 했지만 밉상은 아니다. 희망에 부풀기도 해 봤고, 사랑에 빠지기도 했으며, 가족을 사별한 슬픔과 절망에 지옥의 나락에서 헤매기도 했으며, 가족의 부양책임으로 눈물도 사치라는 생각도 했다. 삶의 희노애락을 다 겪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관조 내지는 포용력도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정도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할수 있는데 왜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왜 그렇게 물어왔는지 정확한 의미는 나도 잘 모른다. 체력이 달리지 않느냐는 뜻인지 나이든 사람들이 대거 퇴출당하는 시대 상황에서 견딜 만 하냐고 묻는 것인지.....

그러나 그녀가 다시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 할 것이다.

"네, 할만해요."

 

 

수필가. 경남진주출생. 한국수필등단. 한국수필작가회 사무국장역임. 수필집'첫느낌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