朔風에 떠는 나목일지라도 - 김옥련
朔風이 휘몰아치더니 마지막 잎사귀 하나 落照에 黃金빛을 발하며 바르르 떨어진 후 裸木은 앙상한 가지로 춥다. 이젠 떨어뜨릴 잎사귀하나 없이 벌거벗은 채 마른 가지끼리 부딪고 휘저으며 까실거리는 몸 부대낌으로 이따금 팔락팔락 悲痛의 물림으로 외치고 있는 듯 보인다.
꽃을 안았던 나무들은 世俗에 젖어 남의 마음이나 이목을 잡아끌기도 했고, 광분케도 했었으며 香氣로도 사로잡았었다. 봄의 先驅者처럼 고고하게 희다 못해 옥색으로 피어난 白木蓮도 그랬었고, 한평생을 추워도 香氣만은 팔지 않는다는 梅花도 사랑을 받았으며, 혹은 노래로, 혹은 詩로도 높이 노래되었다.
열매를 달고 점점 여물어 가며 기대도 주고 豊饒도 안겨 주는 과실수도 아낌없이 주는 것으로 사랑을 받았었다. 산골짜기의 이름 모를 열매들도 산짐승에게 영양과 갈증을 풀어 주었고, 우리에게도 달콤하고 살찐 과일로 풍요를 주었었다. 이 나무들의 잎사귀 또한 때로는 너울너울 춤추며 그늘을 드리워 주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사람의 눈을 즐겁게도 해주었었다.
이렇게 歲月의 물여울이 묻어난 수목은 歷史와 흔적을 품고 있어 가냘픈 裸木에서 大木의 採木에 이르기까지 세월의 나이테를 짙고 옅게, 또는 즐겁고 아프게도 자국내어 간직하고 있다. 특히 大木은 實로 時代의 파란만장한 아픔이나 快樂을 超越하여 千年의 風雪을, 또 人生의 興廢를 내려다보고 泰然하게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
비껴가지도 않고 피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으며, 뿌리는 九泉에 달하고 가지(枝)는 星辰을 잠재우기를 그 얼마이랴. 수백 성상을 지낸 듯한 아름드리 큰 나무의 裸木을 올려다보며 보잘것없는 나 自身을 字宙의 한 점(点)에도 못 미친다고 내 몸을 낮추고 보니 번민도 순식간에 스러져 빠져 나감을 느꼈다. 번민에 사로잡혀 속세를 벗어난 듯한 이곳까지 오지 않았던가. 지금 막 공중에서 편편히 지상에 흩뿌려지는 雪片의 경쾌한 輪舞는 裸木 가지에 仙女처럼 사뿐히 내려앉아 현란한 白衣로 갈아입어 눈을 부시게 한다. 그리고 잠시 裸木의 對話가 들려온다.
‘찬란한 봄이 머지않다'고 하며 生命의 박동이 들려온다.
아름드리 큰 巨木, 대못 치듯 줄기찬 장대비나 천둥·번개에도 두렵지 않았던 거대한 나무 ! 이제 속이 팅 빈 껍질, 앙상히 죽음의 빛을 띤 검은 색의 枯木. 몇 년째 잎을 피워내지 못한 한스러움을 안고 긴긴 역사를 말하듯 서 있다. 천년은 넘은 듯한 이 枯木은 속삭임마저 없다. 그 옆에 허리 굽은 노파가 지팡이에 의지하고 흩날리는 눈을 바라본다.
人生의 마지막 길을 되돌아보는 눈빛이 정갈한 노파 ‥. 그 옆을 말쑥한 老翁이 힘없이 지나친다. 저 노파와 노옹도 한때는 무성했던 나무의 일생처럼 여러 가지 빛깔로 살았으리라. 때로는 유익하게 때로는 폐스럽게도 ‥. 사랑을 독차지한 어린 시절도 있었고 남이 부러워한 건강한 삶도 있었으며 幸福과 사랑도 남달랐으리라. 뜨거운 熱情으로 자녀를 키우고 사랑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지금 枯木의 운명과 많았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삶으로 인생에서 새 잎을 피우는 일도 없으며 생명의 영원성이 없는 일회성의 아픔이었으리라.
裸木은 아직 멀지만 봄에의 희망이 있다. 도도록하게 부풀어 오른 싹틀 눈을 감싸고 가파른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枯木은 裸木을 닮았어도 숨을 쉬지 않고, 寒月을 걸친 채 쓸쓸한 그림자만 드리우고 있지 않은가. 저 노파의 골 깊은 주름 같은 나이테만 간직하고 다시피어나지 못할 아픔을 서러워할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고귀한 생명을 잃은 것이다. 裸木들은 고목과는 다르다. 봄에의 향수가 애달도록 절실한 채 그 자리에 의연(戮然)하게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어서 이다.
쌩떽쥐배리의 어린 왕자는 정신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唯一性을 주장했듯이 너무 외로워서 여우와 동무하자고 했는데 사람이 아니라 동무할 수 없다는 여우에게 하루 한 발짝씩 다가서면서 고독에서 벗어나려 했으며, 인간과 여우가 서로 이해를 도모하려 애썼지만 나목들은 저만치 의연하게 자리 잡고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봄을 서둘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으며 마른 가지일지라도 빈틈없이 조화를 이루고 서로 부딪고, 비비고, 휘청 이며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비록 바람에 지는 낙엽일지라도 정확히 字宙법칙의 하나로 충만한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한 릴케의 말의 의미를 간직한 채 그저 서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출세에, 금욕에, 과욕에 급히 서둘고 있는 고목을 닮은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서두르는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삶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지만 비록 朔風에 떠는 裸木일지라도 그들은 잎 피울 찬란한 봄이 있지 않은가.
수필가. 전북이리출생. 한국수필로등단. 공무원문예대전 대상수상. 작고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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