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연가 - 차혜숙
좁은 골목길엔 은행나무가 서로 맞닿았다. 기와집이 즐비하고 상점들은 골동품에 고서화가 그득했다.
목각을 깎는 집하며 액자를 만들고 표구하는 집하며 한지에 붓, 벼루, 먹을 파는 집하며 화랑에는 예술인들의 그림이 넘쳐 나고 고가구하며 장신구하며 모든 것이 고풍스러웠다.
우리네 조상의 얼이 배여 나는 곳,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곳, 인사동 골목이 아니던가. 잡상인보다는 화가나 문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시대의 변모 속에 도시 조경을 아름답게 한다는 명목에서인지 몇 해 전부터 포크레인이 길을 다듬더니 옛 모습이 사라진 듯하다.
나지막한 기와집은 어느새 빌딩들이 들어서고 골동품가게하며 화랑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찻집에 먹거리집이 구석구석 판을 친다.
옛 정취보다는 국적도 알 수 없는 잡화상이 자리잡고 화가나 문인들보다는 젊은층들로 북적댄다.
고즈넉한 거리를 거닐면서 꿈과 야망을 불태우고 갈등하며 고뇌하는 사람들의 모습 대신에 휴일이면 장터를 방불케 한다. 그래도 그곳에서 떡메를 치는 총각의 모습이 보이고 엿장수 가위소리도 들을 수 있음에 어릴 적 향수를 달래면서 조금이나마 위안을 가져본다고나 해야 할지.
하지만 열망하던 사람들의 기운은 사라져 가는 골목이 된 듯하다. 어쩌다 비 오는 날에 그곳을 거닐면 상점 안에 있는 와불의 눈에 기가 서려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오래된 물건일수록 선조들이 아끼고 정성껏 가꾸어 손때가 묻어나 정겨운 것인지. 역시 뿌리를 찾게 되는 마음일랑 변함이 없을 것이리라.
그런 옛 물건을 바라보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서다. 화병 하나에도 장인정신이 삽입되어 정교하기가 이를 데 없음에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옛것을 접하고 탄성을 자아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귀중하게 보관하고 전수하고 또 배우고 깨닫고 하면서 선조들의 정신을 대물림해야 할 텐데, 현대화만 선호하는 경향 때문일까. 보존하기보다는 헐고 뜯어 새로이 고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리라. 그래서 사라져 가는 골목길이나 인사동 거리가 안타까운 것이리라. 이런저런 상념에 젖으면서도 자꾸만 찾게 되는 인사동은 아직도 명맥을 이어가는 상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꽃물 배어나는 닥종이 가게하며 모시 청청한 우리옷 가게하며 투박한 질그릇에서부터 상감청자에 이르기까지 도자기 가게가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공허함을 메워주는 까닭에서다.
홍백화랑에서 화구를 사 들고 토아트에서 차 한잔을 마시면서 현대 도자기도 감상하고 학고재에 들러 마음을 녹이기도 한다. 질경이 옷집을 들러서 우리네 한복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가 하면 동산방에서 연습지를 사기도 한다. 연습지에 사군자를 치는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가끔 좁은 골목 새새이 접어들어 ‘귀천’에서 천상병 시인의 넋을 기리기도 하고 대청마루 풍악소리 울려 퍼지는 먹거리집에서 된장에 보리밥 비벼 먹는 즐거움도 있다.
‘내 살던 고향집’이나 ‘오! 자네 왔는가’, ‘나무꾼과 선녀’, ‘옛 찻집’ 등을 두루 돌면서 그곳에서나마 향수를 달랜다.
벗과 함께, 문우들과 함께, 회포를 풀기도 하는 인사동은 서울 한복판에 살아 있는 명소다.
변모해 가고 잊혀져 가고 사라져 가도 옛 것에 대한 그리움에 미련을 가지면서도 찾게 되나 보다.
내 시대에서는 어릴 적 아쉬움을 달래고 선조들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위로를 삼지만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향수를 지니게 될 것이리라. 자꾸만 밀려 가듯이 변해 가는 과정 속에 그 자리에 있음으로 기억되는 잔재들에 대한 그리움만 좀먹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아직은 인사동 거리가 어머니의 품속 같고 고향집 같아 흔적을 찾아 더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수필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작가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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