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거처 - 도종환
나뭇가지를 흔들던 바람이 사르르 미끄러져 내려와 머리칼을 만집니다. 나도 그 봄바람을 올려다보며 빙긋이 웃습니다. 요즘은 산에서 부는 바람보다 길 위에서 부는 바람을 만나는 날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날려 보내는 시간입니다. 도시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부분 흔적 없이 흩어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산방으로 돌아와 보내는 시간은 고이는 시간입니다. 시간의 흔적이 마음 안에 차곡차곡 쌓이는 게 보입니다. 크게 하는 일 없이 보내도 그 시간이 내겐 큰 힘이 됩니다.
소걀 린포체라는 티베트의 선사는 명상을 가르칠 때 “당신 마음을 집으로 데려오시오, 그리고 풀어놓으시오. 그리고 쉬시오” 이런 말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마음을 집으로 데려오라는 말은 고요한 거처로 마음을 불러들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고통과 두려움과 번뇌가, 움켜잡는 마음의 욕망에서 일어난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풀어놓으라는 말은, 마음을 그런 집착의 감옥에서 풀어놓으라는 뜻입니다. 쉬라는 말은 마음의 긴장을 풀고 쉬라는 뜻입니다.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의 참 본성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쉬라는 뜻입니다. 마치 모래 한 줌을 평평한 바닥에 놓을 때 한 알 한 알이 스스로 제자리를 잡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이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한 뒤 그 안에서 쉬라는 뜻입니다.
도시의 여기저기를 떠돌다 산방으로 오면 나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몸만 산방에 온 게 아니라 내 마음도 마음의 거처로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편안하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나는 내가 집착하던 것들을 놓아줍니다. 그리고 내 마음과 몸을 쉬게 해 줍니다. 그러면 마음이 천천히 고요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마음이 고요한 풍경 속에 녹아들어가는 걸 느낍니다. 나는 서서히 고요 속으로 스미는 그런 시간이 좋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을 집으로 데려오세요. 고요한 거처로 마음을 불러들이세요. 밖으로 떠돌며 정처 없이 헤매는 마음을 마음의 거처로 불러들이세요.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지치도록 끌려 다니는 마음을 풀어주세요. 그리고 쉬게 해주세요. 가장 편하게 쉬면서 가장 깊어지게 만드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을 찾으세요.
'━━ 감성을 위한 ━━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 날 - 고희숙 (0) | 2012.09.11 |
---|---|
밤 별 - 도창회 (0) | 2012.09.10 |
남한산성 풀벌레 - 김영웅 (0) | 2012.09.07 |
효도 병풍의 노래 - 鄭木日 (0) | 2012.09.04 |
부채 - 김학 (0) | 2012.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