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리더십
그런 도쿠가와의 리더십은 저자가 책 1장에서 분석하는 '도쿠가와의 인간학과 경영철학' 속에서 현대적 표현을 얻는다. 도쿠가와 경영철학의 첫 번째 덕목은 '신뢰'였으며 도쿠가와에게는 '신뢰'가 자기 이미지 통합 전략과 같았다.
도쿠가와는 처음 노부나가의 군대와 싸워 패한 뒤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다. 당대의 실력자 노부나가와 아직 세가 미약했던 도쿠가와 사이에는 실은 실력에 의한 주종간 갈등이 있었다.
도쿠가와의 충성도를 시험하고자 했던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도쿠가와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죽이기까지 해야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여년 동안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노부나가와 도쿠가와의 동맹은 일본 전국시대의 미담이 됐다.
이처럼 '신뢰'를 중심 개념으로 삼는 도쿠가와의 CI전략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유지하며 어떤 위기에 빠지더라도 신뢰를 잃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정리된다.
이를테면 '도쿠가와 주식회사'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경영전략이었던 도쿠가와의 '신뢰경영'은 네 가지 원칙 위에 작동한다.
첫째는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분단 정책이다.
도쿠가와는 장군(쇼궁)이 된 지 2년만에 은퇴해 셋째 아들 히데타다에게 자기 직위를 넘겼다. 하지만 모든 권한을 넘기지 않고 '슨푸'라는 은거지에서 다양한 인재들로 참모진을 구성, 정책을 만들도록 해 아들에게 이를 실행토록 했다. 정책을 만드는 머리 부분은 슨푸에 두고, 실행을 하는 몸과 손, 발은 에도에 두는 식이었다. 이 이원체제는 2대 장군 히데타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노부나가가 '공포'를 이용한 관리를 했다면, 히데요시는 현자의 윤리나 도덕에 중점을 두고 부하들을 격려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유지와 관리가 필요한 시기에 일본 천하를 이끄는 장군이 된 도쿠가와가 택한 전략은 분단정책이었다.
둘째는 '꽃과 열매를 동시에 주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도쿠가와는 남에게서 신뢰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중시해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다이묘(大名: 일본 중세말 - 근세초 지방에 할거하던 봉건영주, 쇼궁의 휘하에서 지방 세력으로 존재했다)에게는 급여를 적게 주고 돈을 많이 받는 자에게는 요직 곧 권력을 주지 않았다.
뒤에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과정에서도 전권을 물려주지 않았다. 다양한 인재들로 구성된 집단을 만들어 아들을 견제토록 했다. 어느 한 사람이나 조직에 절대 권한을 주지 않고 늘 이원체제를 유지했다.
셋째는 늘 민심 동향을 파악하고 여론을 듣는 쪽으로 정책을 편다는 원칙이다.
도쿠가와의 후계자 선정은 이 원칙을 따른 예다. 도쿠가와의 둘째 아들 히데야쓰는 무예와 지략이 뛰어나 일찍부터 후계자로 지목되었지만 정작 도쿠가와가 지목한 후계자는 셋째 아들 히데타다였다.
장기적이고도 안정적인 조직관리를 위해 어떻게 후계구도를 짜야 하는지 고민한 도쿠가와로서는 히데타다가 참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점을 평가해 후계자로 선정한 것이었다. 이 부분은 책 4장 '후계자 선택이 경영자의 능력을 결정한다'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넷째는 '상인의 검소한 생활과 계산능력, 재능을 본받자'는 원칙이다.
무인이자 정치가였던 그는 경제감각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종이 한 장도 아꼈고 매사에 생산성과 효율을 강조했다.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경영
도쿠가와 경영철학의 두 번째 덕목은 '인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심에 대한 묘사로는 1장에 흥미로운 예화가 소개되어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각각 하이쿠라는 일본 특유의 단시를 읊었다.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라고 했고,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도쿠가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노부나가는 다혈질에 성미가 급한 인물이었다.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으니 죽여 마땅하다고 보는 냉철한 인간형이다. 히데요시는 천한 출신이지만 사람을 끄는 힘과 뛰어난 지혜로 노부나가의 신임을 받게 되고 노부나가가 죽자 전국통일을 이룬 인물이다. 자신감에 넘치며 울지 않는 새를 울게 만든다고 불릴 만큼 지혜롭다.
한편 인내심이 강한 도쿠가와는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2장
'운과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는 도쿠가와가 자신을 평생 짓누른 노부나가라는 크나큰 짐을 짊어지고 나아가 천하를 제패하는 도정을 묘사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섯 살 박이 어린 시절부터 19세가 될 때까지 사무라이들의 싸움판 와중에서 인질 생활을 하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에야스는 처음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수하에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마가와를 거꾸러뜨리고 판도를 바꾸자 오다 노부나가 수하에 들어가 속국의 장졸로 있으면서 자기 자식까지 할복시키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 뒤 노부나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자 이번에는 당시의 최고 실력자 히데요시의 수하에 들어갔다. 히데요시는 변소치기를 하며 살다가 일약 장군(쇼궁)이 된 인물이다. 이에야스는 그런 히데요시에게도 머리를 숙이고 때를 기다렸고 히데요시의 시대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결정적인 때가 오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도쿠가와의 경영 스타일은 그를 '너구리 영감'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할 만큼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생존양식을 겸비한 것이었다.
3장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부릴 수 있다'에서는 도쿠가와가 다른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사람을 자기 뜻대로 부리는 데 능란했던 사실과 함께 그가 어떻게 사람의 심리를 능란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됐던가 설명되어 있다.
장군(쇼궁)이 통치하던 16세기 일본에서 정치가의 필수조건으로는 무력과 재력 외에 당시 장군의 통치 아래 지방에서 할거하던 세력인 다이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 입안 및 실행능력이 요구됐다.
다이묘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당시 패권자들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는 제각기 다이묘들을 엮어 파벌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주로 다이묘들에게 패권자 자신의 姓(성)이나 이름을 쓰게 하거나 양자를 들이고 혼인을 하며 혹은 돈을 뿌리는 방법이 주로 쓰였다.
이런 식의 세력 만들기에 가장 골몰했던 패권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히데요시에 비해 이에야스는 賜姓(사성)이나 혼인, 돈 뿌리기보다는 사람의 심리를 활용해 세력을 얻었다.
저자의 설명으로는, 인간관계에서는 욕심을 부리는 쪽이 약해진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이에게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를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더 신경을 쓰는 심리가 있는데 도쿠가와는 이런 인간심리를 잘 활용했다 한다.
이를테면 가까운 자보다는 먼 자를 선택해 가까운 자의 질투심을 불러 일으켜서 자신에 대한 충성 경쟁을 부추기는 식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쿠가와 막부의 기틀을 다지는 데 채택한 인간경영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인간경영에 관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또 다른 특징은 그가 매우 비정한 지도자였다는 사실이다. 이에야스에게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었다.
도쿠가와는 자주 "물은 배를 띄워주지만 다른 편으로는 배를 뒤집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는 친구를 믿지 않았고 단지 충성스러운 부하만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소년 시절을 인질로 생활하며 시련을 겪었던 도쿠가와의 성장배경이 자리한다. 인질로 살고, 내키지 않는 패권자에 복속하며 생존을 위한 적응을 첫째 명제로 삼는 경험을 거듭하면서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든가, 겉과 속을 달리 보이게 할 필요성 따위를 몸으로 체득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시대를 산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살아남기 위해 익힌 요령은 비정하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그들이 교재로 삼은 전략서 [손자], [한비자] 등속은 모두 '사람을 배신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전국시대 일본의 리더들에게는 고독을 견뎌내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던 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법과 경영·정치 전략은 시공을 초월해 모든 경영의 기본인 인간관리 측면에서 현대의 기업 경영자를 비롯해 조직을 이끌고 사람을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참고할 만한 내용이 풍부한 한 전형이다.
저자는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을 여러 가지 일화와 함께 제시하며 그의 인간성, 여성관, 종교관, 건강법, 우정관 등까지 곁들여 다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의 인간경영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울러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질생활을 하기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을 통일해 쇼궁이 되고 자기 아들에게 쇼궁의 지위를 물려주어 도쿠가와 막부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때까지를 설명해, 격동의 시기였던 일본 전국시대 역사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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