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기독교자료

1. 예언사역 - 릭조이너

Joyfule 2006. 6. 27. 03:55

1. 예언사역 - 릭조이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피하게 하시거나 우리의 은밀한 죄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언과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사용하셔서 그분이 우리와 얼마나 친밀하신가를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게 하신다. 그분은 진정으로 우리 곁에 계신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께서 비밀한 죄를 말씀하지 않으시더라도 그 죄를 회개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예언을 통해 우리의 마음의 은밀한 것을 드러내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소명을 분명하게 하시기 위해서다. 모든 소명에는 어려움과 시련이 따른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이 그 일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면 그러한 문제들을 훨씬 더 쉽게 견딜 수 있다. 주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만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을 보신다. 마음은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로 마음을 향해 말씀을 하신다. 우리의 깊은 내면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때로는 우리 자신에게도 가려져 있다. 이러한 은밀한 부분을 만지는 예언은 우리가 확신을 갖지 못했을 일들을 자유롭게 하도록 만든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예언이 개인의 삶 속에서 그런 일들을 이루어 내어 결국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소명으로 이끌게 되었다는 간증을 수도 없이 들었다. 예언은 확증만을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은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단지 확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견해가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성경에는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잘못된 곳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확증이 아니라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예언이 주어진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께서 확증을 위해 예언을 주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예언을 반복하시기도 하는데, 이것을 하나의 원리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소명이나 사역에 있어서 확증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소명이 같은 정도의 확증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일반적으로 확증이 구체적이고 극적일수록 더 어려운 사명이 주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명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단지 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뛰어난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주 미약한 확증이나 혹은 아무런 확증 없이도 훌륭하게 그들의 사명을 감당했다. 그런 반면 어떤 이들은 그것이 예언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예언적인 확증과 격려의 말씀을 반복해서 받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행하도록 부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우리로 계속해서 그분을 의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이고 구체적인 확증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믿음이 필요한 여지를 남겨 놓으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치 않는 사명이나 소명에 대해서 구체적인 말씀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예언 중독 - 릭조이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언에 중독 되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 예언으로 지시를 받는 것보다 믿음과 지혜에 자라가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우리가 겪게 될 어려움 때문일 경우가 많다.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확증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유익하고 우리를 지도하는 말씀을 계속해서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성숙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성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유아들은 계속해서 가르치고 돌봐야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그런 것들이 점차 필요하지 않게 된다. 성경에서 사도들은 하나님이 손을 잡아서 이끄시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의 성숙한 사자로 보내심을 받았다.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언의 말씀이나 확증의 필요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바울은 첫 번째 전도여행에서 하나님께 구체적이고 예언적인 임무를 받았다. 가장 열매가 많았던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어디로 가라는
구체적인 말씀이 없었다. 그는 단지 그가 세운 교회를 점검하기 위해서 돌아가야겠다고 느꼈을 뿐이다. 우리가 어릴 때에는 손을 잡고 길을 인도해야 한다. 성숙한 사도는 모든 일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시를 필요로 하거나 구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신실한 대사로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분명 예언적인 지시를 받는 것에 열려 있었지만, 그것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아가보로부터 그가 예루살렘에 가면 겪게 될 어려움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언의 말씀을 받았다. 이 계시는 그 예언을 전했던 이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를 돌이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닥칠 것에 대해서 그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예언은 바울에게 어떤 지시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겪게 될 고난에 대비하기 위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동역 자들은 이 말씀을 바울이 가지 않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바울은 예수님과 같이 다르게 생각했으며 예루살렘에서의 그의 시련을 맞아들이기로 굳게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