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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지막잎새(The Last Leaf:1905)

Joyfule 2009. 6. 18. 08:33

    2. 마지막잎새(The Last Leaf:1905)

    전문 워싱턴 광장 서쪽 한 구역은 큰 길들이 제멋대로 뻗어서 플레이시스라 부르는 조그만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플레이시스는 이상한 각도와 커브로 되어 있다. 하나의 골목길이 그 길 자체와 두세 번이나 교차된다. 어떤 화가가 일찍이 이 거리의 귀중한 가치를 발견하였다. 가령 어떤 수금원이 그림 물감과 종이와 캔버스 값을 받으려고 청구서를 가지고 이 거리를 돌다가는 대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안 되어 낡은 그리니치 마을에는 화가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북쪽을 행한 창과 18세기식 박공 지붕과 네덜란드 식 다락방과 값싼 집세를 찾아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백납제 손잡이가 달린 잔과 한두 개의 식탁용 화로를 사들였다. 그리하여 하나의 '화가촌'이 형성된 것이다. 이 마을의 납작한 3층 벽돌집 꼭대기에 수우와 존시는 그들의 공동 화실을 차렸다. 존시란 조안나의 애칭이었다. 수우는 메인에서 왔고, 존시는 캘리포니아 출신이었다. 두 여자는 8번가에 있는 델 모니코 식당에서 만나 예술과 꽃상치 샐러드와 작업복의 긴 소매에 대한 두 사람의 취향이 같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침내 공동 화실을 차리게 되었다. 그것이 5월의 일이었다. 11월이 되자 의사들이 폐렴이라고 부르는 차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모르는 신사가 이 화가촌을 배회하면서 얼음 같이 찬 손으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졌다. 이 파괴자는 우선 동부 일대를 대담하게 활보하면서 수십 명씩 희생자를 내더니 끝내 그의 발길은 이 좁고 이끼 낀 플레이시스의 미로에까지 들어왔다. 폐렴 씨는 이른바 기사도 정신을 가진 노신사는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의 온화한 미풍에 핏기를 잃은 한 조그만 여자는 원래 저 붉은 주먹을 가진 신경질적인 말썽꾸러기의 적수가 아니었지만 그는 존시를 기어코 때리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처녀는 꼼짝도 못한 채 페인트 칠을 한 쇠침대 위에 누워 조그마한 네덜란드식 유리창을 통하여 건너편 벽돌집의 흰 벽을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숱 많은 회색 눈썹을 가진 한 의사가 수우를 복도로 불러냈다. "저 아가씨가 회복될 가능성은...열에 하나밖에 안 됩니다" 그는 체온계의 수은을 털어 내면서 말하였다. "사람들이 이렇게 장의사만 기다리고 있으면 어떤 처방도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친구는 자기 병이 낫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분이 특별히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그 애는 그 애는 언제나 나폴리 만을 한 번 그려 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림이요?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시는군 마음에 무슨 깊이 생각할 만한 것이 있느냐 말입니다. 이를테면 남자라든가..." "남자요?" 수우는 유태인의 하프 소리 같은 울음이 담긴 소리로 말하였다. "남자를 무슨 생각할 만한... 하지만 없어요. 선생님 도무지 없어요" "그렇습니까? 그것이 오히려 약점입니다" 의사는 말하였다. "좌우간 의학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지요. 그러나 환자가 자기 장례식에 따라올 만치 수를 세기 시작하면 내 의술로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은 반으로 줄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그녀에게 이번 겨울에 입을 외투 소매의 스타일에 대해 의욕을 갖게 한다면 살아날 가능성은 5분의 1로 높아질 수 있다고 보장합니다" 의사가 돌아간 뒤 수우는 화실로 들어가 일본제 냅킨이 흠뻑 젖도록 울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화판을 들고 휘파람을 불면서 존시의 방으로 들어갔다. 존시는 침대 시트에 작은 주름 하나도 만들지 않고 가만히 누운 채 창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수우는 그녀가 자는 줄 알고 휘파람을 그쳤다. 수우는 화판을 세워 놓고 어느 잡지에 실릴 소설의 삽화를 그리기 위해 펜화를 시작하였다. 신인 화가의 길은 무명 작가들이 등단하는 문학지에 삽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수우가 주인공의 모습에 얌전한 승마복 바지와 외알 안경, 그리고 아이다호 지방의 목동을 스케치하고 있을 때 나직한 소리가 몇 번이나 되풀이 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창을 내다보며 무엇인가를 세고 있었다. '열 둘' 하더니 조금 있다가 '열 하나' 그리고 나서 '열', '아홉' 그리고 '여덟'과 '일곱'을 거의 한꺼번에 세었다. 수우는 걱정스럽게 창문을 건너다 보았다. 대체 거기에서 무엇을 세고 있는가? 거기에 보이는 것은 다만 텅 빈 마당과 20피트쯤 떨어져 있는 벽돌집의 흰담벽 뿐이고, 한 줄기의 늙고 늙은 뿌리마저 썩어 버린 담쟁이덩굴이 그 벽돌담으로 뻗어 있을 뿐이었다. 차디찬 가을 바람이 담쟁이 잎새를 때려 덩굴의 앙상한 가지만이 무너져 가는 담벽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