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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존 뉴턴

Joyfule 2009. 5. 19. 10:12

4.존 뉴턴(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정열적이고 감동적인 목회 활동


   존 뉴턴은 목사가 되어서 일평생 동안, 자기와 같은 죄인까지도 버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았다. 아울러 자기처럼 죄에 매여서 종살이하는 불쌍한 영혼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건져내기 위해서, 전심전력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를 위하여 다정하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성격인 그는, 그의 집을 모든 계층과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개방하여,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그의 친구들 특히 젊은 목사들과 목사 지망생들에게 격려와 교훈을 주곤 하였다.

   1780년 55세 때 그는 런던의 성 메리울노스 교회로 옮겨서, 82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27년간을 성도들의 신앙성장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목회사역을 하는 동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였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의 설교는 많은 이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말년


   뉴톤은 82세를 사는 동안, 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살았다. 그는 한 때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였으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뉴톤이 팔십이 넘자, 그의 친구들 중에서는 그가 공중 사역을 너무 오래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만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음성을 높이며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멈출 수 없네! 아니! 어떻게 옛 아프리카의 신성 모독 자가, 말을 할 수 있는데도 입을 다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존 뉴턴에게도 나이는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제 나이가 많아져 자연히 기억력이 감퇴하게 되어, 심지어는 설교를 하면서도, 전도를 하면서도,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조차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었다. 또한 그는 생애 말년 약 2~3년 동안 시력을 상실하기까지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는 내가 과거에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과,

        또 한 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기 때문에,

        나는 내 목숨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다.”


   뉴톤은 1807년 12월 21일 82세로 런던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했다.


  노예선의 키를 잡았던 그가, 구원의 방주에 몸을 싣고 말씀의 키를 잡은 채,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존 뉴턴의 묘비명  


   존 뉴톤은 자기가 죽은 후, 자기묘비에 다음과 같이 적게 하였다. 특별히 그는 여기서 자기를 목사라 부르지 않고, 심부름꾼이라 부르게 하였다.


  Newton's tombstone reads,


    "John Newton, Clerk(심부름꾼), once an infidel and libertine, a servant of slaves in Africa, was, by the rich mercy of our Lord and Saviour Jesus Christ, preserved, restored, pardoned, and appointed to preach the faith he had long labored to destroy."


     “...심부름꾼 존 뉴톤은 우리의 주님 되시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보존되고 회복되고 용서받고 또 자기가 오랫동안 대적하고 파괴하려 했던 믿음을 오히려 전하게 되었습니다.…”


  (명언)


   진리 없는 열심은 어둠 속을 탐험하는 것과 같다.             <존 뉴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