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풍금이 있던 자리 - 신경숙
어머니께서 그네 밑에 깔아 놓으셨던
떨어진 아버지 내복을 그 여자는 맨 먼저 걷어 냈어요.
그러고는 어디서 났는지,
잔 꽃이 아른아른한 병아리색 작은 요를 깔았어요.
그네 하면 어린애의 울음소리와 그 낡은 내복이 생각났었는데,
그 여자는 뽀송한 기저귀가 옆에 있는
환한 병아리색 이미지로 바꿔 놓은 거예요.
그 여자는 아이를 울리지 않았어요.
처음에 어머니 젖이 아니라, 느닷없이 우유병이 들어오자,
칭얼칭얼 대는 것도 잘 해결했죠.
그 여자는 서슴없이 자신의 젖을 꺼내 아이에게 물렸다가
아이가 빈 젖임을 막 알려는 참에 살며시 젖병 꼭지를 밀어 넣었어요.
그러면 어린애는 손가락을 그 여자의 젖 위에 얹어 놓고
꼼지락거리면서 순하게 그 젖병 꼭지를 빨았습니다.
아이는 그 여자 등뒤에서 해사하게 웃었고,
그 여자는 아이를 업고 음식들을 만들었습니다.
도마질만은 무척 서툴렀습니다만,
그 여자는 도마질을 잘하는 어머니 맛하고는 다른 맛의 음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밥을 한 가지 해내도 그 여자가 한 밥은 표가 났습니다.
어머니의 밥은 한 가지였지요. 보리와 쌀이 섞인 쌀보리밥이 그것입니다.
어머니께선 미리 보리를 삶아 놓았습니다.
그러면 밥뜸을 안 들여도 되었거든요.
그것도 한꺼번에 며칠 것을 삶아 두셨어요.
논일 밭일에 언제나 어린애가 있던 집이어서
보리 삶는 시간도 아끼셔야 했던 분입니다.
삶아 놓은 보리를 밑에 깔고 한 켠에 쌀을 얹어서 지은 다음에
나중에 밥그릇에 풀 때 서로 섞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 밥그릇과 큰오빠 밥그릇은 따로 챙겨 두셨다가,
그 두 밥그릇엔 쌀밥이 더 들어가게 섞으셨지요.
그 여자는 보리를 미리 삶아 놓지 않았습니다.
밥을 지을 때마다 그때그때 보리를 먼저 물에 불려 놓았다가 돌확에 갈아 지었습니다.
그리고 알맞을 때에, 밥뜸 불을 밀어 넣어 줘서 밥은 늘 고슬고슬했어요.
그 열흘 중의 어느 날은 보리를 다 빼고 쌀에 수수를 넣은 밥을 지었으며,
또 어느 날은 입에 쏙쏙 들어가기 좋을 만큼의 크기로 만두를 빚어서
밥 대신 만두국을 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환하게 생각납니다.
그 여자는 마치 우리 집에 음식을 만들러 온 여자 같았어요.
멥쌀보다 색이 뽀얀 찹쌀로 둥근 경단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으며,
곤로를 마당에 내놓고 진달래 화전을 부쳐 주기도 했어요.
찹쌀로는 그저 시루에 찰떡만 쪄 주셨던 어머니.
그 여자는 어느 날 대추 밤을 썰어 넣어 찹쌀 약식을 해주었죠.
찹쌀의 그 끈기가 그렇게 맛있는 것인 줄 그 여자를 통해 알았습니다.
다듬잇돌에 밀가루를 밀어 칼국수를 만들어 내왔을 때,
그 국물 위에 화려하게 얹힌 고사리와 계란 고명들이 지금도 눈에 환합니다.
어머니가 쑤어 준 풀떼죽하고는 확실히 달랐지요.
맛이야 어떻든 그 폼이 말이에요.
그 여자가 묵었던 그 열흘 동안 도시락을 싸 가는 오빠들이 부러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싸 주시는 도시락 반찬 그릇은 들여다볼 것도 없었지요.
과묵하던 큰오빠까지도 또 염소 똥이야, 할만큼 검정콩 자반이 주를 이루었고,
집에서 담근 단무지, 된장 속에 묻어 놓았던 오이장아찌,
어쩌다 밥물 위에 얹어 쪄 낸 계란찜이었으니까요.
그 여자의 음식 만드는 멋은 특히나 오빠들 도시락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맨밥에 반찬 싸 가는 것이 도시락인 줄만 알았는데,
그 여자는 당근과 오이와 양파를 종종종 썰어서 밥과 함께 볶아서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 주었습니다.
푸른 콩, 붉은 강낭콩, 검정콩 등을 섞어 설기떡을 만들어서
밥 반쪽 콩설기떡 반쪽을 싸 주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께 쇠고기를 사 오라 하여 양념해서 볶고,
시금치도 데쳐서 기름에 볶고, 달걀도 풀어 몽올몽올하게 볶아서,
이 세 가지를 밥 위에 덮어 주기도 했습니다.
꽃밭, 꽃밭을 연상시키더군요.
어느 날은 큰오빠에게 무슨 밥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서 주먹밥을 좋아한다 했더니,
다음날 그 여자는 콩을 넣은 주먹밥을 자그만자그만하게 만들었어요.
먹을 때 밥이 손에 달라붙지 않도록 깻잎으로 하나씩 싸서 도시락을 채웠습니다.
온 식구들이 함께 하는 끼니때는 아버지께 혼이 날까 봐
숟가락을 드는 시늉은 했지만,
도시락은 들고 갔다 가도 고스란히 되가지고 오던 큰오빠는
그 날 등교하다 말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는 마루 끝에 그 도시락을 팽개치고 달아났어요.
아무래도 그걸 가지고 학교까지 갔다가는
먹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겠죠.
그 여자는 아버지가 술드시고 온 다음날은 밤새 읍에 나갔다가 온 것인지,
싱싱한 소피를 삶아 뚝뚝 잘라 넣은 선 지국을 끓여 내놓았습니다.
그 국물 위에는 어슷어슷 썰어 넣은 생파가 듬뿍 얹혀 있었지요.
그 여자가 부쳐 주던 두릅 적이며,
그 여자가 무쳐 주던 미나리나 물쑥나물 한 접시......
아, 그 칡수제비까지 생각나는 걸 보면,
아버지로 하여금 그 여자를 사랑하게 한 게
그 음식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국수에 고명을 넣는 그 여자와,
넣지 않는 나의 어머니. 글을 더 쓸 수가 없군요.
바깥에서 아버지께서 우사에 가 보자고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