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곽용화
(2) 뉴에이지 음악의 개념
뉴에이지 음악에 대한 개념은 아직까지 대중음악에서 정리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장르로 각광받는 음악이나 기계문명 속에서 나타난 자연주의 음악으로
평가받고 있을 뿐 뉴에이지 음악의 본질에 대한 개념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개념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수박의 겉을 핥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뉴에이지 음악을 평가하는 소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성의 회복과 자연으로의 복귀를 소리 없이 부르짖으며
나타나기 시작한 뉴에이지 음악."
"명상음악에서 파생되어 생긴 음악장르."
"재즈, 프로그레시브, 클래식, 포크음악의 요소들이 혼합되고
아티스트의 개성이 혼합된 음악."
"자연으로 돌아온 듯한 서정적이고 정적인 멜로디와 느린 템포,
명상적인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는 음악."
자연이나 명상 또는 음악적인 요소들의 복합체로 뉴에이지 음악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뉴에이지 음악의 본질에 가깜게 접근한 평가는
"듣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가정적이거나 현실도피적 또는 진보적인 음악"이라는 것이다.
'듣는 이의 관점'이라는 평가는 비교적 정확하게 본 것이다.
지금 대중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는 뉴에이지 음악에 대해
일반적으로 정리된 개념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뉴에이지 음악이 연주형태나 스타일 등 외적인 요소보다는
의식의 전환을 표현하거나 심리적인 상태를 음악을 통해서 나타내려고 하는
음악가의 내적인 요소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을 잘못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외적인 요소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연주 스타일이나 형태들, 어떤 음악장르의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는가를 보기 때문이다
사실 외적인 요소는 음악장르를 구분짓는데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록음악이나 고고, 댄스음악 등이 외적인 요소로 인해 하나의 장르로
구분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뉴에이지 음악은 외적인 요소로는
그 개념을 파악할 수가 없다.
둘째는, 듣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치유효과나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 주는
목적론을 가지고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뉴에이지 음악을 음악치료를 위한 도구로 보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지금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음악치료가 성행하고 있고 클래식 음악과 함께
뉴에이지 음악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음악치료에서 뉴에이지 음악은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환자의 내적인 상태를 중요시한다.
이러한 점은 반드시 음악치료에서 뿐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타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기분전환을 위해서 음악을 듣기도 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 따끈한 커피 한잔이 놓여있고 촛불을 켜고 안락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내부에 쌓인 좋지 못한 요소들을 폭발시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러한 방법은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조용한 음악을 선택해서 듣는다.
요즘 뉴에이지 음악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실 음악치료는 국내에서 그리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내적 치유용으로 선택해서 듣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을 들을 때 마치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처럼 느끼고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많이 듣고 있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부작용'에서 다를 것이지만 이러한 효과는 마치
그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지 실제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뉴에이지 음악이 진정한 평안을 주지는 못한다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며 그 분을 통해서만 진정한 치유가 있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관점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 바로 명상음악 이라는 점이다.
명상음악이라는 것은 작곡자가 명상을 통해서 곡을쓰고 연주자가 명상을 통해서
그 곡을 표현하며 듣는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명상을 할 수 있다는 음악을 말한다.
요즘 명상음악이라고 써있는 뉴에이지 음악테잎이나
클래식 음악테잎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발라드나 경음악을 모아서 명상음악이라고 이름붙인 엉터리 테잎들도 많이 나와있다.
엉터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조건 조용한 곡이면 모두 명상음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뉴에이지 음악이 나타나면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대중음악에서의 명상음악이란
내적 문제의 치유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명상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단순히 사랑타령으로 이루어진 대중음악들은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뉴에이지 음악에 거의 가사가 들어있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명상음악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 가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기분전환을 시도한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음악이 바로 명상음악인 것이다.
자신의 내면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명상
힌두교의 방법들을 이용한 명상.
이 명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신(god)의 본질을 발견해서 무한한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이러한 명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명상이란 무엇인가? 명상은 모험이다.
인간의 의식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모험이다
명상은 어떠한 행동이나 사념 혹은 감정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를 말한다."
(자유를 즐기고 있는 부처들 음악앨범에서)
우리는 흔히 마음을 비운다는 말을 많이 한다. 명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욕심을 갖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그 자체인 자신의 내면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욕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바바 하리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다.
욕심을 갖지 않아야 부처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욕심을 갖지 않으려는 것도 바로 욕심이다.
인간은 욕심에 둘러싸여 있고 그 욕심을 벗어버리려고 할 수록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더 감기듯이
욕심의 거미줄에 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