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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곽용화

Joyfule 2006. 6. 1. 00:22

뉴에이지 운동의 음악들.- 곽용화 (3)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목적 뉴에이지 음악이 가진 영적인 목적은 인간이 신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이라는 말을 기독교적으로 표현하면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과연 인간이 하나님일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창1 :27)일 뿐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이라고 속삭이는 입술은 누구의 것인가? 창세기 3장에서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실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속삭이던 입술의 주인인 사단이다. 하와는 결국 유혹에 넘어가 순간적인 만족감은 누렸지만 벗은 몸에 대한 수치를 알게 되었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여 해산의 고통까지 받게 되었다. 하와가 나무실과를 따 먹었을 때의 그 순간적이 만족감이 바로 뉴에이지 음악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평안이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고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드는 것 같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 다시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간적인 처방을 통해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것보다 진정한 평안을 얻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요14:27)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안은 뉴에이지의 명상을 통해서 얻을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반석이 예수 그리스도일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진정한 평안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안, 다시 말하면 참평안과 거짓 평안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참평안은 지속적이고 거짓 평안은 순간적이다. 참 평안은 삶을 변화시키지만 거짓 평안은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마약을 먹으면 마약에 빠져들어 계속해서 마약을 필요로 하듯이 거짓 평안은 순간적이기 때문에 만족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복음성가를 기억한다.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 분을 볼 때 나는 만족하였네" 뉴에이지 음악은 순간적인 만족감을 제공한다. 처음에 받는 평안은 마음 속에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횟수가 계속될수록 작은 부분은 보다 큰 부분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뉴에이지 음악에 빠지는 단계도 처음에는 가벼운 음악을 듣다가 점점 명상음악과 같은 깊이 있고 무거운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이다. 뉴에이지 음악의 반기독교적인 영적인 목적은 듣는 사람들에게 거짓 평안을 주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신이라는 사상에 빠져들게 되기까지 순간적인 거짓 평안은 계속된다.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 자기 자신이 바로 신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면서 뉴에이지 음악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로 인식된다. 의식의 변화 또는 의식의 전환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가? 뉴에이저들의 주장을 보면 우선 모든 것이 하나라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티브 고든(Steve Cordon)은 "뉴에이지 음악의 진수는 사람의 심령 중심부를 실제로 흥분시키고 우 리들의 인식을 완전히 변화시키는소리의 힘에 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활기와 모든 것의 단일성을 우리 안에서 깨닫게 하는 그런 것이다"라고 '뉴에이지 음악의 진정한 영' (The True Spirit of New Age Music)이라는 아티클에서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라는 단일성은 뉴 에이지의 핵심사상이다. 궁극적인 신이 하나 있는데 그 신은 비인격적이며 우주만물은 그 신의 일부분이고 다른 측면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과 하나라는 사상, 인간과 우주와 자연은 모두 하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비인격적인 신을 주장하는 뉴에이지 운동에서 사랑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신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애쓰며 거의 모든 글에서 사랑을 언급한다. 과연 비인격적인 신에게서 사랑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랑이 비인격적인 신에게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은 인격적이며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에게만 존재한다. 전세계에 뉴에이지 음악을 판매하고 흥보하는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레코드점인 only New Age Music을 운영하면서 심리학이나 음악치유법을 연구하고 음악활동을 하는 수잔 도셋(Suzanne Doucet)은 뉴에이지 음악의 영적인 목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뉴에이지 음악의 목적은 오염되고 더러워진 이 세상의 영기를 순화시키고 정화시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적인 평화와 하모니, 내적인 이해에 대한 지구촌의 필요를 채우도록 돕는 것이다." 이 말에서 뉴에이지 음악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염되고 더러워진 이 세상의 영기를 맑게 순화시킨다는 것은 인간이 신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인식에서 무한한 존재라는 의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더러워진 영기에는 기독교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기독교 사상과 뉴에이지 사상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신이며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유한한 존재라고 하지만 뉴에이지는 인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세상의 오염되고 더러워진 영기를 정화시키는 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뉴에이저들의 소망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유토피아가 세워질 것을 바라고 있다. 자연보호를 주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뉴에이저들에게 있어 자연은 어머니와 같은 것이다. 자연 속에서 에너지를 받는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생각으로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1992년 6월 1일부터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에서 개최되었던 유엔환경개발회의에 셜리 맥클레인, 올리비아 뉴튼 존, 조지 해리슨 등의 뉴에이저들이 참가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표면상으로는 지구를 살리자고 주장하지만 그 목적이 순수하지 는 않다. 예수 없는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목적이 들어있는 것이다 유토피아가 건설될 지구의 환경보호는 뉴에이지 운동 전략 중의 하나다. 환경음악 가운데 뉴에이저들의 작품이 들어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 환경음악을 만들고 있는 뉴에이저들은 조지 해리슨, 올리비아 뉴튼 존 그리고 오노 요꼬 등을 들 수 있다. 환경음악이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메시지 송이라고 할 수 있고 국내에도 작곡자나 가수들이 있다. 환경음악 자체가 뉴에이지 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환경음악 가운데 뉴에이저들의 작품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환경음악이라고 해도 일반 작곡가들의 순수한 곡과 뉴에이저들의 곡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잘 선택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