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gar Allan Poe - 검은 고양이(The Black Cat:1843) 4.
나는 고양이를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집에 갈 준비를 하니 고양이도 나를 따라올 눈치를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걸으면서도 이따금씩 허리를 굽혀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그 놈은 곧장 길들여져 아내에게도 당장 귀여움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얼마 안 되어 그 고양이에 대해 싫증이 났다.
그것은 내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도대체 웬일인지 그 놈이 확실히 나를 따른다는 그 사실이 못견디게 불쾌하고 귀찮아졌다.
이러한 염증에 대한 불쾌감은 극도의 증오로 변해 갔다.
어떤 수치심과 이전의 내 잔인한 행위 기억이 나로 하여금
그 놈을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것을 삼가게 했다.
여러 주일 동안 그 놈을 때리지도 않았거니와 횡포하게 다루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로-나도 모르는 사이에-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증오감으로
그놈을 바라보게 되었고 악취를 피하듯 고양이를 슬슬 피하게 되었다.
이 고양이에 대한 내 증오심을 부채질한 것은 그 놈을 집에 데리고 온 다음 날 아침
플루토와 같이 그 놈도 눈 하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인정이 많은 아내는 이러한 사실로 더욱 고양이를 측은히 여길 따름이었다.
인정이 많다는 것이 전에는 나의 유별난 특징이었으며
나의 소박하고 순수하기 이를데 없는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내가 고양이를 미워하면 할수록 그놈은 더욱 성가시게 내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내가 앉아 있으려면 으레 의자 밑에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에 뛰어 올라와 지겹게 핥거나 제 몸을 내 몸에 비벼대는 것이었다.
일어나서 걸어가려고 하면 가랑이 새로 기어들어 나를 넘어뜨릴 뻔하거나
뾰족하고 긴 발톱으로 옷을 할퀴면서 가슴까지 기어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그저 한 방에 때려 죽이고 싶었지만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전에 저지른 죄가 생각나서이지만
그 주된 이유를 솔직히 고백하면 그 짐승이 끔찍하게 두렵기 때문이었다.
이 공포감은 육체적 위해의 공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을 무어라고 정의를 내리기는 곤란했다.
좀 부끄러울 정도지만
-그렇다. 이중죄수의 감방에서까지도 고백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이 고양이가 내게 불어넣은 공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어떤 망상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다.
이 고양이와 내가 죽인 고양이 사이의 유일한 차이가 흰 털 반점이라는 것은
전에도 말한 바 있거니와 아내는 가끔 그 흰 점에 나의 주의를 끌게 했다.
이 반점이 크기는 했지만 원래는 그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다는 것을 독자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오랫동안 내 이성은 그것을 공상이라고 부정하려고 싸워 왔던-
그것은 마침내 아주 뚜렷한 윤곽을 드러냈다.
그것이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도 나는 그놈을 미워하고 두려워해서 할 수만 있다면
이 괴물을 없애 버렸을 것이다-
그것은 저 소름끼치는 무시무시한 교수대의 형상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보통 인간으로서의 불행한 범위를 넘어선 불행에 빠져 버렸다.
한 마리의 짐승이 제 친구를 내가 하찮게 죽여 버렸지만
-나를 위하여- 지고하신 하느님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 놓은
하나의 인간인 나를 위하여 이렇듯 견딜 수 없는 고민을 안겨 주다니!
낮이나 밤이나 내게는 안식의 기쁨이라고는 조금도 없구나!
낮이면 고양이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밤이면 밤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악몽에서 소스라쳐 깨어나면
얼굴을 뒤덮고 있는 고양이의 뜨거운 입김이며
영원히 내 가슴을 억누르는 그 육중한 무게가 도무지 뿌리칠 수 없는 몽마의 화신을 느끼게 했다.
이같은 고통의 압박을 받아 마음 속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착한 성질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흉악한 생각이 -흉측하고 악독하기 그지없는 생각이- 내 유일한 벗이 되었다.
평소의 내 침울한 기질은 점점 변해서 모든 인간에 대한 증오가 되었다.
별안간 주체할 수 없는 광란의 발작이 가끔씩 일어나 지각 없이 날뛰는 동안
아내는 언제나 불평 한 마디 없이 화를 도맡아 받는 희생자였다.
우리는 가난해서 할 수 없이 지은 지 오래 된 낡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집안일로 아내는 나를 따라 지하실로 들어갔다.
고양이도 험한 계단을 따라 내려와 하마터면 내가 곤두박질할 뻔했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미칠 것 같았다.
나는 격분하여 어린애 같은 공포심도 잊어버리고
나는 도끼를 번쩍 들어 고양이를 내리찍으려고 겨냥을 하였다.
마음먹은 대로 내려쳤다면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가 손으로 막는 바람에 내리치지는 못했다.
방해가 자극이 되어 악마도 못 당할 정도의 심한 격노에 싸여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아내의 머리에 도끼를 내리쳤다.
아내는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이 끔찍한 살인을 치르고 나자 나는 아주 신중하게 시체를 감추는 일에 착수했다.
낮이나 밤이나 이웃 사람들에게 들킬 염려가 없이
집에서 시체를 내갈 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계획이 머리에 떠올랐다.
한 번은 시체를 토막으로 각을 떠서 불에 태워 버리려고도 생각하였다.
다음에는 지하실 바닥에 구멍을 파고 그 밑에 묻어 버릴까도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뜰 안에 있는 우물 속에 던져 버릴까
-상품처럼 상자에 챙겨 넣은 다음 포장을 하고서 짐꾼을 불러 집에서 내갈까-
하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끝내는 이제까지의 그 어느 것보다도 훨씬 더 낫다고 여겨지는 계획 하나를 짜냈다.
중세기 승려들이 그들이 죽인 사람을 벽 속에 넣고는 발라 버렸다는 기록처럼
나도 시체를 지하실 벽 속에 넣고 발라 버리기로 작정하였다.
이같은 목적에 지하실은 적당했다.
벽은 부실하게 쌓은 데다가 전면에 굵은 벽돌로 바른 것이
공기가 습해서 아직 굳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한쪽 벽에는 툭 두드러진 데가 있어 가짜 굴뚝으로 벽난로를 가리게 된 것 같으나
이미 메워져서 다른 벽과 비슷하게 되어 있었다.
이 부분의 벽돌을 떼고 시체를 넣은 다음 이전처럼 벽을 발라 버리면
누가 보더라도 의심나는 데를 찾아 볼 수 없게 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