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ful 일흔 일곱번째 묵상 겔러리
나를 찾고 싶다.
남편이 퇴직한 후엔 일년에 한 두차례씩 해외 여행을 하자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막상 퇴직하고 보니 두 딸이 모두 미국에 살고 있어서
평균 일 년에 한 차례는 딸들에게 가게되어
세계 여러나라로 갈 작정이던 계획을 실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른 나라 여행보다 자식들과 손자들이 더 보고싶어서.................
딸들에게 가면 짧아야 한 달, 또는 3개월, 5개월씩 체류하게 된다.
미국에 가면, 언어도, 지리도, 풍습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미국 운전면허도 없으니 가자면 가고, 있으라면 있고, 하자는 대로 한다.
그곳 생활 방식을 따라 그 아이들의 일상에 맞추어 살아야 하기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큰 딸이 있는 스프링 필드에 가면 "대니얼 할머니" "송집사 엄마"로.
LA에 가면 "하이디 할머니" "구기원사모님(사위가 구씨) 엄마"로 불린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지만, 그렇게 몇 개월 지나면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
엄마와 할머니만 있지 나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뭐야? 나는 어디 있어?" 슬그머니 그런 생각이 든다.
보통 할머니들처럼 나도 손자 손녀들이 울고 떼쓰는 것 까지 사랑스럽고 귀엽다.
손녀들에게 노래와 율동을 가르치고 동화책도 읽어주고
함께 딩굴며 장난도 치고 깔깔대는 즐거움도 있지만
때로 손녀들의 먹거리나 씻기는 것 등을 시중 들다보면
오직 나는 이 아이들의 할머니로써 존재할 뿐 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나 엄마, 할머니... 이 모두가 생애동안 내게 부여된 하나의 역할인데
나는 왜 다른 할머니들 처럼 할머니로 사는 것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내게는 자아 실현을 위한 독자적인 의지가 강한 것 같다.
그곳에 있을 때 딸들이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고 배려하지만
몇 개월동안 피동적으로 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의지대로 모든 일상을 계획하고 결정하고 실행 하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의 당연한 욕구가 아니겠는가?
한국에 돌아 올때가 되면 이제 나를 찾아 간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인다.
마치 한국에 벗어 놓았던 옷을(나를) 다시 입는 것처럼.....
우리 딸들이 이 글을 보면
"아이고! 엄마! 맨날 사진 찍으러 다니고
카페와 블로그 관리한다고 컴퓨터만 하고
엄마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서 그래?" 그럴 것이다. *^^*
자의식이 강한 엄마 생각속에는 이런 갈등이 있었다는 걸 알턱이 없다.
동생들은 이런 나에게 "행복한 투정입니다요" 라고 말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꽃이(그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무엇인가 의미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는 평소에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주님이라고 고백했는데
내 속에 있는 이 강한 자의식의 정체는 무엇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