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화이야기

‘Dear 평양’, 사상과 세대를 초월한 사랑의 힘을 보여줘

Joyfule 2006. 12. 5. 00:49
분단의 경계에서 가족의 안부를 묻다
‘Dear 평양’, 사상과 세대를 초월한 사랑의 힘을 보여줘
이영주 기자 joseph@googood.com

▲ 양영희 감독의 아버지는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들들을 평양으로 ‘귀국’시킬 만큼 투철한 신념을 자랑하는 조총련 간부였다.

 


영화 ‘Dear 평양’은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와 사상을 달리하는 딸이 화해하고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3일, 명동CQN에서 개봉될 이 영화는 한 가족의 역사를 조명하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진심으로 휴전선 너머 사람들의 안부에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평생을 혁명가로 살아온 아버지, 세 오빠들도 평양으로 보내

영화를 촬영ㆍ감독한 양영희 감독은 20대에는 아버지와 함께 대화하는 것은 고사하고 밥 먹는 것조차 싫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춘기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들들을 평양으로 ‘귀국’시킬 만큼 투철한 신념을 자랑하는 조총련 간부였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평양으로 돈과 온갖 생활용품을 바리바리 싸보내면서도, 이웃들에게는 ‘장군님의 사랑으로 아들 부부와 손주 녀석들이 평양에서 잘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 젊은 시절 막시즘에 필이 꽂힌 아버지는 북한을 자신의 조국으로 선택한 후 지금까지 혁명을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양 감독은 오빠들을 만나러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하면서 조국의 현실이 이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그는 볼이 홀쭉해진 오빠들의 사진과 어려운 북한 현실을 목도하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키워갔다.

자유로운 일본 사회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의 사상을, 아버지는 딸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사라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양 감독의 친구들은 아버지 방에서 그의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베를린 장벽’이라고 불렀다.
 

카메라를 통해 부녀의 소통이 시작돼

어느 날 양 감독은 평양에 있는 조카들의 모습을 찍어 부모님께 보여드릴 단순한 목적에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 이후 북한과 일본을 오가며 가족의 모습을 담던 그는 카메라의 프레임을 애증의 대상인 아버지에게 옮긴다.


 
▲ 23일, 명동CQN에서 개봉될 이 영화는 한 가족의 역사를 조명하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진심으로 휴전선 너머 사람들의 안부에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카메라 속에 드러난 아버지는 어느새 나이가 많이 들어 있었고, 손주들에게 밥을 먹이면서 마냥 행복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침내 카메라를 매개로 두 부녀는 대화를 나누게 되고 조금씩 가까워진다.

‘카메라’를 통해 대화를 시도하는 딸이 노력과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 어느 순간 아버지는 카메라를 바로 본채 고백한다. “여하튼. 내 딸이 이렇게 커서. 내 말을 듣던 안 듣던. 내가 생각하는 대로 갔던 안 갔던. 난 정말 기뻐요. 컸으니깐”이라고.

그리고 아버지는 사뭇 진지한 모습으로 카메라 너머 장성한 딸을 마주한다. 덮어두고 싶은 질문에는 “오늘따라 질문이 많아”라며 회피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역정을 내지 않는다.

이에 막내 딸, 양 감독은 용기를 내어 말한다. “아버지, 오빠들 세 명 다 북한에 보낸 거 후회하세요”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뒀던 그러나 항상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이 질문에 카메라를 바로 보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이던 아버지가 “벌써 다 가버린 거 할 수 없지만, 만일 안 보냈다면 더 좋았을지 모르지. (침묵) 당시는 (북조선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고, 그래서 이보다 훨씬 일찍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줄로만 알았지”라는 뜻밖의 고백을 한다.
 


 
 
 
30년 가까이 조총련 부위원장으로 활동했고 항상 ‘아직 충성을 다하지 못했어’라고 말하는 아버지였다. 하지만 오랜 고뇌의 흔적이 묻어난 이 진솔한 대답으로 양 감독은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된다.
 


디어(Dear) 평양, 가족을 생각한다

“가치관이 다르고 사상적으로 달라도, 아버지 어머니 딸로 태어나 행복해요”

모든 소통의 과정을 통해 양 감독은 노환으로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에게 고백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가 갑자기 아기처럼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이 모습에 양 감독은 울음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왜 울어요 아버지. 파이팅! 아버지, 다시 평양에 가야죠”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달랜다.

쇠약해진 아버지가 ‘평양’이라는 말에 “그래 가자. 평양 가자!”라고 답하며 다부지게 주먹을 쥔다. 그러나 이제 그의 말이 더 이상 혁명구호로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 너머에서 눈물을 흘리는 딸뿐 아니라 영화를 지켜본 관객들도 ‘평양’이 가리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양’은 그가 보낸 사랑하는 아들들과 어여쁜 손주들이 살아가는 그리운 땅이다. 그래서, 진정 ‘디어(Dear) 평양’인 것이다.

진정한 가족애를 묻는 영화 ‘Dear 평양’은 베를린국제영화제 최우수아시아영화상, 선댄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싱가포르아시안페스티벌 최우수다큐멘터리감독상, 바르셀로나아시아영화제 최우수디지털시네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