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의 마음의 지혜
용서하는 사람이 큰 인물이다
나의 둘째 형님(정약전 丁若銓 1758∼1816)은 나의 선생이셨다.
일찍이 말씀하시길, "내 동생은 병통이 없으나 오직 궁량
(사람을 포용하는 도량과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좁은 게 흠이 된다"라고 하셨다.
나는 너의 어머니의 벗인데 내가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아내는 부족함이 없으나 오직 아량이 좁은 게 흠이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으로 어찌 산이나 숲처럼
크고 활달한 도량을 지니기를 바라겠느냐만 너는 너무나 국량이 좁아 보인다.
이 애비보다 훨씬 더하니 이치상 당연한 노릇이겠다.
나도 일찍이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았는데
어찌 네가 출렁거리는 넓은 강물처럼 남의 잘못을 포용할 수야 있겠느냐?
궁량의 근본은 용서해 주는 데 있으니 용서할 수만 있다면 결국 큰그릇이 될 수있느니라.
* 주(註): 정약전 (丁若銓; 1758∼1816)
자는 천전(天全), 호는 손암(巽庵)·. 정약용(若鏞)의 중형(仲兄)이다.
1783년(정조 7) 진사가 되고, 90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전적·병조좌랑 및 초계문신 등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이벽(李檗)과 매형인 이승훈(李承薰) 등과 교유하여
서양의 학문과 사상을 접하고, 가톨릭에 입교, 벼슬을 버리고 전교에 힘썼다.
1801년(순조 1)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아우 약용과 함께 화를 입었을때 그는 흑산도(黑山島)에 유배되어다.
여기에서 복성재(復性齋)를 지어 섬의 청소년들을 가르치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한국 최초의 수산학 관련 서적인 《자산어보(玆山魚譜)》가 있다.
마음 속에 우주가 있다
한번 배부르면 살찐 듯하고 배고프면 곧 죽겠다는 듯 참을성이 없다면
천한 짐승과 우리 인간의 차이가 어디 있을까?
생각이 좁은 사람은 오늘 당장 마음같이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의욕을 잃고
눈물을 짜다가도 다음날 뜻대로 일이 된다면 금방 빙글거리며 낯색을 펴곤 한다.
근심하고 유쾌해 하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느끼고
성내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감정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이다.
달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녕 비웃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소동파(소식)가,
'속된 눈으로 보면 너무 낮고 하늘을 통하는 눈으로 보면 너무 높기만 하다' 하였으되,
일찍 죽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을 똑같이 보고,
죽고 사는 것을 한가지로 보는 것은 너무 높은 생각이다.
요컨대 아침에 햇볕을 빤하게 받는 위치는 저녁때 그늘이 빨리 오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들음도 빨리 오는 것이어서,
바람이 거세게 불면 한 시각도 멈추어 있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대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
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를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자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주(註) 소식 蘇軾 1036∼1101)
중국 북송 때 정치가·문학자. 호는 동파.
아버지 순, 동생 철과 함께 3부자가 문장으로 이름을 남긴 당송팔대가 중의 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