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하이파에서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37Km지점에
위치해 있는 가이사리아. 지금은 유적만 남아 있다.
관객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야외 원형극장 .
따뜻한 남쪽에서 겨울을 난 철새 떼들이 북상하던 중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듯
원형극장 위를 나르고 있다.
지금도 예술가들의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국제적인 규모의 이스라엘 음악제도 열린다고 함.
전차 경기장
물 속에 잠겨있는 가이사리아 유적지.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 중 여러번 들렸던 곳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기전 2년간(57-59년)을 가이사리아 감옥에 수감 되었다가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한던 것이 마지막으로 로마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배를 타고 떠났을 지중해. 십자군 전쟁 당시에 요새로 보이는 유적.
전시된 기둥 상단 문양.
로마식 수로.
갈멜산 줄기의 샘으로 부터 물을 끌어들인 수로.
갈멜산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는데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대 역사가
아니었을까......?
지중해와 석양, 수로와 나그네
석양 속 가이사리아 뒤로 하고 그 곳을 출발하며 ....
<가이사리아>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리아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헤롯왕에게
이 지역을 하사 했다. 헤로왕은 건축광으로 하사 받은 이지역을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가이사리아라고
불렀다 한다.
가이사리아에는 시장터와 전차 경기장, 야외 원형경기장, 공중 목욕탕등을
두루 갖춘 대 도시로 유대 지방의 행정수도로 하여 정치의 중심지로
삼았다고 한다.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의 관저와 행정본부가 이 도시에 있었으며
십자군 시대에 거대한 요새를 만들었고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하자 십자군의 보루였던 가이사리아는 1265년
마믈묵에 점령되어 완전 파괴 모래에 묻혔다가 600년의 세월이 지난
20세기에 고고학자들의 의해 발굴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이사리아가 특별히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 로마 총독 본시오 빌라도가 주재 했었던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유대 총독 본시오 빌라도"라고 적힌 기념돌비가
발견되었다는 곳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 기념비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고 모조품이 전시 되어 있다고 그곳을 떠나는 버스
속에서 듣게 되어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한 주의 천사가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 고르넬리오에게 나타나
요빠 파장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불러오게 하였다.
고르넬리오는 자기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마중 나가
베드로 일행 앞에 무릎 꿇어 절을 하며 맞아 들였다.
이것이 인종과 국가를 추월하여 범 세계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역사적인 일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하다.
(사도행전 10장 )
* 김흔중 목사의 (성지순례의 실제)를 참고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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