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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은 빛이요 소금이요 값비싼 향유이다

Joyfule 2019. 10. 18. 23:50


 

      거룩은 빛이요 소금이요 값비싼 향유이다

            존 라일 

 

 2. 실천적 거룩이 매우 중요한 몇 가지 이유
거룩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탁월한 성도라 해도 전혀 “무익한 종”일 뿐이다. 우리가 가장 순전한 일을 해도 하나님의 거룩한 법의 빛 아래 놓이면 누더기와 같이 드러날 뿐이다. 예수께서 입혀 주신 세마포와 믿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의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유일한 자랑이다. 우리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 때문에 우리는 천국에 간다.

우리가 거룩하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죄인일 수밖에 없다. 율법의 행위로는 그 어떤 아담의 후손도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

1)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분명히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5-16). 알렉산더 레이턴은 “이점에서 복음과 율법이 일치한다”고 했다.

2)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위대한 한 가지 이유와 목적이 거룩이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그는 에베소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는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택함받은 자가 된다(벧전1:2).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심을 받았다(롬8:29). 신자가 택함을 받은 것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이다.(엡1:4). 신자의 부르심 또한 “거룩한 부르심”이다(딤후1:9).

신자가 고난을 받는 이유도 “거룩하게 참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히12:10). 예수님은 완전한 구주이시다. 그분은 단순히 신자의 죄책만을 제하시는 것이 아니다. 죄의 권세를 피하는 일도 하셨다.

3)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의 믿음을 가졌다는 유일하게 바른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성공회 종교강령 제12조는 말한다. “선행이 우리 죄를 없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맹렬함을 견디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 만한 일이고, 참되고 생명력 있는 믿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다. 열매로 나무를 알듯이, 선행을 통해 믿음이 살아 있다는 것이 분명히 증거된다.” 야고보 사도는 죽은 믿음- 입술의 고백만 있고, 성품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을 경고한다(약2:17).

참된 믿음은 항상 그 열매를 통해 드러난다. 참된 믿음은 거룩하게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고, 세상을 이긴다. 마음을 청결하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유일하고도 안전한 증거는 거룩한 삶이다. 일반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죽을 때도 주님 안에서 숨을 거둔다. “자신의 마음과 삶을 정결하게 할 만한 영광스러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의 상태는 허망하고, 그의 믿음은 건전하지 못하다”(로버트 트레일).

4)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사랑하는 유일한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14:21). 예수님의 머리를 찌른 가시면류관은 우리 죄로 만든 것이다. 우리 주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를 찌른 것도 죄이다. 그분을 겟세마네와 갈보리 십자가로 데려가 무덤으로 이끌어 내린 것도 우리의 죄이다. 오른손을 잘라 버리고 오른 눈을 빼내어 버리기까지 죄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또 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은 싸늘하게 식은 무정한 마음임에 틀림없다.

5)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참된 자녀된 유일하고 건전한 증거가 거룩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 부모를 닮는다. 하늘 아버지를 닮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 말해 봐야 헛된 것이다. 삶으로 자신이 어느 가문 사람인지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거룩한 삶으로 당신의 혈통을 증거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이며 당신에게 왕족의 피가 흐른다고 말하지 말라”(윌리엄 거널).

6)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에게 해를 주거나 유익이 되거나 둘 중 하나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의 설교이다. 신자의 거룩한 삶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그리스도의 나라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로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실재가 거룩한 삶에 있다. 거룩한 삶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무게와 영향력이 있다. 거룩한 삶은 신앙을 아름답게 한다. 심판 날에는 “말로 말미암지 않고” 거룩한 행실로 인해 구원을 얻은 사람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벧전3:1). 칭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사랑은 이해할 수 있다.

거룩하지도 못하고 신실하지도 못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해악을 끼친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의 가장 좋은 동역자이다. 이들은 목사가 입술로 쌓아 올린 건물을 삶으로 무너뜨린다.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이름이 너무 자주 욕을 먹는다. 규모 없고 나태한 생활로 영혼들을 죽이지 않도록 우리를 구원하소서! 거룩해야 할 다른 명분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거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7)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누리는 위로가 거룩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와 슬픔, 거룩과 행복, 성화와 위로 사이가 얼마나 긴밀한지 자주 잊어버린다. 선한 일에 무관심하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힘쓰지 않으면서, 자신의 칭의를 아주 생생하게 느끼고 부르심에 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질없는 소리이다.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8)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이 땅에서 거룩하지 않으면 천국을 준비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룩해지지 않고 죽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천국에서 편하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죽음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각자가 숨을 거둘 때의 그 성품으로 다시 일어나게 된다. 지금 여기서 거룩에 대해 외인이라면, 우리가 머물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 지금 여러분은 경망스럽고, 부주의하고, 세상에만 집착하고, 탐욕스럽고, 방탕하고, 쾌락만 추구하고, 불경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천국에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그리스도를 죽게 한 죄와 짝하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친구들을 멸시한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만나 뵐 수 있을까? 거룩하지 못한 사람에게 천국은 가장 불행한 장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영광의 거룩한 날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은혜의 학교에서 받는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 우리의 삶을 통해서 천국에 합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천국의 미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오는 삶을 천국에서 누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