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복음을 전하십니까?
우찌무라 간조
생계를 위한 전도
전도의 정신으로 가장 비열한 것은 전도를 직업으로 여기는 것이다.
바울의 말처럼 “일하는 자는 그 삯을 받음이 마땅하”지만,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전도자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살 길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면, 전도에 기울이는 노력과 정열을 다른 사업에 기울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직업으로서의 전도는 가장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다.
몇 해 동안의 신학 연구를 과학이나 공학 분야로 돌리는 것이 더 나은 보상을 약속받을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전도는 보수가 적으므로 부적당하고, 보상을 염두에 둔 전도는 이미 전도가 아니기 때문에 부적당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도 사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하는 사람은 그의 설교와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이 전도자의 동기와 목적을 알아차리고 그의 설교를 전혀 신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망당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온갖 직업인이 그 나름대로 존경을 받지만, 전도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전도자는 멸시의대상이 될 뿐이다.
신자들은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 목사에게는 목사직을 주기 원하지만, 금전을 추구하는 목사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세상이 목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목사가 자신의 유익을 돌보지 않기 때문인데, 목사가 자신의 앞가림을 먼저 요구하면 세상은 그를 목사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수를 목적으로 하는 전도자는 사람들의 대우에 대하여 실망하게 되고, 사람들 또한 그러한 목회자에 대하여 실망하게 된다.
이러한 목사는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처자식이 내일부터 굶주림에 울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가 양심과 진리의 요구에 따라서 교회를 개혁하고 진리를 세우려고 하면, 그가 반드시 유지해야만 하는 자리가 위태롭게 되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조용히 입을 다문채 불의를 묵인하면, 교회 안의 정의로운 사람들의 공격을 피할 길이 없다. 목사는 결국 어느 한쪽의 손을 붙잡아 주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자신의 생계비를 대줄 수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게 되는데, 이로서 정의로운 사람들은 그 목사에게서 등을 돌린다. 또한 자신에게 매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 주는 사람들 역시 마음 속으로 목사의 비굴함을 멸시하기 때문에 그를 진정한 스승으로 대하지 않게 된다.
목사가 여기에 이르게 되면, 전도도 실패로 돌아가고 생계의 유지도 어렵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면서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실망에 잠기게 된다.
이것이 전도를 직업으로 생각하는 목사들이 예외없이 걸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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