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영상시산책

계란 프라이 - 마경덕

Joyfule 2008. 12. 7. 01:42
      계란 프라이 - 마경덕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 남자의 말에 나는 삐약삐약 웃었다. 나는 철딱서니 없는 병아리였다. 그 햇병아리를 녀석이 걷어찼다. 그때 걷어차인 자리가 아파 가끔 잠을 설친다. 자다 깨어 날계란으로 멍든 자리를 문지른다. 분명 녀석의 발길질에 내 껍질이 깨졌다. 그러니까, 나는 프라이가 된 셈이다. 팬에 놓인 것처럼 심장이 뜨거웠고 소금 뿌린 자리가 쓰라렸다. 그와 헤어진 후 또 한 개의 흉터를 얻었다. 자라목에 두꺼운 안경을 낀 말대가리 녀석, 맞선에서 몇 번이나 차였는지 상처투성이였다. 그래 어디를 걷어 차줄까, 잠깐 방심하는 사이, 눈치 빠른 녀석이 먼저 박차고 일어섰다. 얼떨결에 나는 쩍 금이 갔다. 헛발질에도 쉽게 깨지던, 계란으로 바위 치던 시절, 사랑은 내게 넘치거나 못 미쳤다. 번번이 달궈진 팬에 왈칵 쏟아졌다. 나는 한 번도 껍질을 깨지 못했다. <우리詩> 4월호 소시집
    [감상] 마경덕 시인의 시는 대부분이 일단 재미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주제를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아마 시인이 사물을 통해 펼치는 진술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에서, 동화(감정이입)나 투사(의탁 또는 투영)가 매우 자연스럽게 구사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래서 그의 시는 난해하지 않고 무척 쉽게 읽힙니다. 하지만 그런 시를 하나 완성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시 [계란 프라이]는 일단 첫 행에서 주제를 말합니다. 주제를 제목이나 첫 행에 배치하는 것은 詩作에 있어서 대체로 피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유는 시를 읽지 않고도 작가의 의도를 알아버리기 때문에 시 읽는 재미가 감소하기 때문이라지요. 그럼에도 이 시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는, 첫 행이 주제이기는 하지만 호기심을 내포하고 있는 언술이기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첫 행의 [스스로 껍질을 깨뜨리면 병아리고 누군가 껍질을 깨주면 프라이야,]는 자의와 타의에 대한 결과를 말하는 것으로서, 계란을 통해 그것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의문적인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또는 “그래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지 한번 읽어봐?” 대부분은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행이 또 한 번 독자의 구미를 당깁니다. [남자의 말에 나는 삐약삐약 웃었다. 나는 철딱서니 없는 병아리였다.] 합니다. 즉 그것은 화자의 주장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이라는 것이고 그 말에 화자는 삐약삐약 웃기나 하는 철딱서니 없는 병아리라며, 자신의 위치를 한 단계 낮춤으로 독자들의 동정심(?)을 유발시킵니다. 이는 또한 타인을 빌려 말하는 화자의 주장으로 詩作의 <화자우월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따르는 기법으로 보입니다. 2연부터는 인생 또는 성장통을 그려냅니다. 즉, 계란이 프라이 되는 과정과 성장통의 유사성으로 독자의 공감을 얻는 동시에 또한 남자와 화자의 관계로 주객의 위치를 보여주면서 이 시가 말하려는 주제의 설득력을 강화시킵니다. 계란과 화자를 오가는 언술은 결구 [번번이 달궈진 팬에 왈칵 쏟아졌다. 나는 한 번도 껍질을 깨지 못했다.] 에서 멈추지만, 이는 첫 행을 지지하는 진술로 연결됩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울림(감동)을 얻기 위해서가 첫 번째 이유가 될 듯합니다. 물론 비평가나 평론가의 입장은 다르겠지만 시를 쓰는 사람들 역시 다릅니다. 즉 그들은 그 시가 어떻게 맛있게 요리되었는지 그 조리법에 관심을 두는 것도 포함됩니다. 재료는 무엇 무엇이 어떤 배합으로 들어 있으며, 조리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는지 등등에도 관심이 있다고 봐야 되겠지요. - 여 백 (박승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