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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발전을 위한 치유목회1. - 정태기

Joyfule 2006. 4. 21. 04:01
교회발전을 위한 치유목회1.

정태기교수 (한신대)

1973년에 미국에 공부하러 갔는데 저보다 2년 먼저 시카고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미국 사람이 몰고 다니다가 버린 10년 이상 된 차를 구입해서 몰고 다니는데 그 선배의 차를 타면 이상현상이 나타납니다. 차를 몰다가 순경을 만나면 이 선배가 차를 멈추고 입술만 움직이는데 “순경,순경,순경…”그럽니다.

그 차 뒤에 수백 대가 멈추고 난리가 나도 그 선배는 “순경”소리만 읊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순경이 지나가면 가고 또 순경이 나타나면 또 서버립니다. 우리들은 그래서 그 선배를 순경귀신이 들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선배는 서른여섯 살 된 목사였는데 왜 순경만 보면 그렇게 되는지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일제시대 때 그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일본이 공출을 강요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 공출을 안했다고 합니다. 일경은 공출을 안 한 사람들은 추운 한겨울에 팬티만 입혀서 물동이를 이고 논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순경이 매서운 겨울날 무릎 꿇고 있는 열 명 이상 되는 그 사람들을 채찍으로 마구 때리는데 그 자리에서 선배의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그냥 죽어버렸다고 합니다. 선배의 나이 일곱 살에 이 광경을 본 것입니다. 그 이후로 순경만 보면 그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해서 미국에 유학까지 나와 나이 서른여섯이 되었는데 순경만 보면 일곱 살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순경만 보면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순경 장로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는 순경 권사에다가 순경 집사까지 있습니다. 그런 사람만 만나버리면 이 목사는 일곱 살로 확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되겠습니까? 이 목사님을 일곱 살로 봐야 합니까? 서른 여섯으로 봐야 합니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도를 하거나 성경을 볼 때는 서른 여섯인데 조금만 나사를 풀면 다시 일곱 살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경귀신이 따라다니는데 목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목회를 할 때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목회자들한테 순경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달려드는데 목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이 선배는 지금 나이가 육십이 다 되었고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데 지금도 여전합니다. 순경귀신을 떨쳐버리지 않고서는 죽는 날까지 평생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제 얘기 좀 해볼까요? 저는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머리가 좀 둔한 편인데 미국에서 11년을 공부했습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공부를 빨리 끝내고 나오려면 교수의 눈에 들어야 하고 그렇게 되려면 교수를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교수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가 너무 무서워서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한 학기에 한 번 만날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교수가 나를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도와 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하고 함께 공부하러 갔던 친구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교무실에 드나들더니 4년 만에 공부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7년을 잡고 있었습니다. 7년 만에 담당교수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부르더군요. “더 이상 당신을 가르칠 수가 없다”라고 하면서 하는 얘기가 “너는 왜 그렇게 나를 싫어하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교수님께 울면서 얘기를 했습니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이 너무 무서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님이 왜 자기를 무서워하냐면서 저를 치유그룹에 넣어주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서 보니까 제가 누구를 무서워한 줄 아십니까? 아버지를 무서워한 것입니다. 밖에 나가면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무서웠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섯 살쯤에 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데 주위에는 할아버지와 동생들이 있었고 섬이라 맛있는 반찬들이 상에 올라왔습니다. 배가 고프던 차에 상을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살몬치라는 생선이 맛있게 요리되어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었든지 밥을 얼른 입에 넣고는 그 살몬치에 젓가락을 댔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이 쌍놈의 새끼!”하면서 쳤는데 얼마나 세게 쳤는지 젓가락과 생선이 천장에 붙었다가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우리 어머니가 집어다가 나를 주는데 얼마나 세게 쳤는지 손이 말을 안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하고 겸상을 하는데 아버지 앞에만 딱 앉으면 가슴이 떨리고 젓가락은 어디로만 갔는지 아십니까? 섬에서는 먹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올라오는 반찬이 있는데 그것은 간장하고 새우젓하고 묵은김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젓가락질은 대각선이었습니다. 밥 먹고 간장 한번, 밥 먹고 새우젓 한번, 밥 먹고 묵은김치 한번 그것만 먹었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이 나와도 절대 그것에는 손이 안 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딱 한 번만이라도 “이것 좀 먹어봐, 저것 좀 먹어 봐”라고 했더라도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치유그룹에서 이것이 다 쏟아져 나오면서 아버지를 만나도록 하고 제 얘기를 하도록 하는데 상상 속에서, 명상 속에서, 기도 속에서 듣는 것을 했습니다. 이것이 두 달 동안 저를 위한 치유였습니다. 상상 속에서 내가 아버지를 붙잡고 왜 그랬냐고 울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를 붙잡고 우셨습니다. 저는 그때 세 시간 이상을 바닥에 엎드려 ‘아버지! 아버지!’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고 나니까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수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80%이상은 없어졌습니다. 나는 서른일곱 살에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보니까 내가 생각한 결혼이 아니었습니다. 몸무게가 64㎏이었는데 결혼하고 52㎏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여 20근이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집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5년 만에 저는 미국에 혼자 나갔습니다.

그 치유그룹에 들어가 치유를 받으면서 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 내가 산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 섬에는 논밭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사랑이 없으셨는지 어머니는 한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한을 무엇으로 풀었는가 하면 일로 푸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봄에 어머니는 매일 일찍 들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셨는데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나는 봄만 되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서른 일곱이 되어서야 원인을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 봄만 되면 집 안에 식구는 아무도 없었고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필요한 그때 어머니는 더더욱 만나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서른일곱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다시 봄을 맞는데 세상에 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봄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러면서 제 몸무게가 다시 64㎏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린시절의 경험이 나를 따라다니면서 전도사, 목사가 되었는데도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 목사님을 만나보면 나이가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었는데도 어떤 분은 여섯 살, 어떤 분은 열 살, 어떤 분은 열한 살인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어느 신학교에 가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 학교 학생처장이 “학생들만 상담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교수들도 상담 좀 해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나냐고 했더니 “독일에서 10년이나 넘게 공부해서 박사가 되어 지금 교수를 하고 있는 김 박사 때문에 큰일났습니다”하는 것입니다. 그 마흔 여덟 된 김 박사가 교수회의만 하면 뚱딴지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김 박사의 제의가 한국 실정에 너무 안 맞는 것이어서 나이 육십이 다 된 노교수가 점잖게 “교수님, 그것은 우리 실정에 잘 안 맞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김 박사 얼굴이 벌개지면서 옷을 벗더니 “이 새끼, 너 나하고 한번 붙어볼테야?” 하더랍니다. 겨우 말려서 수습을 했는데 그 다음 회의 때 김 박사는 또 어떤 제의를 했고 이번에는 젊은 교수가 그 제의가 실정에 잘 안 맞는다고 했더니 또 다시 얼굴에 벌개지면서 옷을 벗으며 욕을 하면서 달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목사요, 신학박사요, 독일에서 10년이 넘게 공부를 하고 온 사람입니다.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까 제 아내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자랐는가 하면 중 ?고등학교 때는 신앙 좋고 새벽기도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모범생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나는 세상친구는 절대 안 사귄다, 내 친구는 오직 예수뿐이다”라고 하면서 학교, 교회, 집 이렇게만 왔다갔다 하면서 일류 대학을 마치고 신학교를 마치고 독일에 가서 박사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 교수에게는 친구들의 사랑에 굶주린 청소년 귀신이 붙었던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평생을 열두 살, 열세 살을 못 벗어나 조금만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들고 일어나서 화풀이를 하면서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 분 같은 경우는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평생을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기를 다 나이가 든 사람인데 다 어린아이 같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밖에 모릅니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을 모를뿐더러 사랑할 대상도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사랑의 조건을 다 얘기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도 병든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어린 시절에는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하여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어린아이에서 자각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어린시절의 상처가 우리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고삐를 잡고 못살게 굴면 이런 것이 목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수없이 많은 지장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을 해보십시오. “나는 몇 살짜리 목사인가?”

여기에는 몇 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상처를 입고 치유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열매가 안 열립니다.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인간 심리를 잘 파악해서 하신 말씀인데 마가복은 4장 4~8절까지에 실려 있습니다. 무슨 비유입니까?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병든 사람이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생명의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도 경험을 해보면 어떤 감격스러운 얘기를 들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의기양양하닥 몇 주 지나면 언제내게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고 다시 주저앉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뿌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