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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마당만 밟는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Joyfule 2015. 3. 14. 12:54
 교회 마당만 밟는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목적은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다. 예배라는 말을 정확하게 바꾸어 말하면 예배의식을 드리러 가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것과 예배의식에 참가하는 것은 다르다. 결혼식에 가는 것을 예를 들어보자. 결혼을 하는 사람은 신랑과 신부 두 사람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결혼식에 축하하러 가는 것이다. 결혼식을 구경하고, 축의금도 내고 축하도 해주는 목적이다. 그래서 축하객들은 결혼하러 간다고 하지 않고 결혼식에 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일날 양복을 차려입고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교회에 가는 사람은 예배의식에 참석하러 가지만, 모두 다 예배드리러 간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이 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부 맞는 것도 아니다.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전부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교회에서는 예배의식을 드린다는 말을 결코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예배의식에 참석하서 졸거나 딴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때워도, 예외 없이 예배드리러 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돌아왔어도, 자신들은 예배를 드리러 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말하는 것은 자유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왔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계시다.

 

또 하나, 더욱 심각한 얘기를 꺼내보자. 교회가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곳으로 지어진 종교건물이냐는 것이다. 이건 뭐 뜬금없는 얘기냐고? 교회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지 무슨 딴 소리를 하냐면서, 혹시 이단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던질 것이다. 필자의 말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예배의식을 드리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데 아니라, 교회가 예배의식을 드리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이의 잣대는 성경에 있다. 예배라는 말은 헬라어로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로서 경배하다, 찬양하다라는 본래의 뜻이 있고, 다른 하나는 라트레이아라는 단어로서 제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의 말씀에서 언급하는 영적예배에서 예배라는 말이, 바로 제사라는 뜻인 라트레이아예배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원어대로 번역하자면 영적 제사가 되는 셈이다. 제사를 지내려면 제물이 필요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에 소나 양을 끌고 와서 제사장에게 주면, 제물을 죽여 불에 태워 번제로 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스스로 제물이 되어서 십자가에 희생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으므로, 다시는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법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삶의 현장에서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한다. 그게 바로 영적 제사(예배)라고 성경이 밝히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고 계신가?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것이 영적 제사(예배)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교회에 와서 예배의식에 참여하면 예배의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예배에 성공하는 것이라는, 희한한 말을 만들어 통용하고 있다. 물론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여 기뻐하며 찬양하고 진심으로 기도드리고, 말씀을 깨달음으로 가슴에 담는다면 이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것이다. 그러나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였다고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예배의식에 빠짐없이 참석하기만 한다면, 예배를 잘 드리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교회라는 말은 헬라어인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단어로서 공동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은혜를 사모하는 무리들이 모여서 하는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서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기도행위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행위가 바로 자신을 찾아오는 행위이다. 엊그제 성령께서 필자에게, 절의 중들도 예불을 드리면서 부처를 부르면서 나무아비타불을 외치지 않느냐고 하셨다. ‘나무아비타불이라는 뜻은 부처를 깊게 믿고 의지한다는 의미이다. 이렇듯 우상을 섬기는 중들도 예불을 드릴 때마다, 혹은 무시로 나무아비타불을 외치는데,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모셔 들이고 의지하는 기도를 잊고 지낸다는 게 말이 되는가?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기도를 잊은 채, 종교의식에만 골몰하면서 먹고 마시고 낄낄대는 친교행위에 빠져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작금의 우리네 교회를 떠나신 것이다. 하나님을 찾지도 부르지도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에 더 이상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교회가 급속도로 침체일로로 기울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없는 교회에는 귀신들만 우글거린다. 기도의 능력이 없으므로 세상적이고 인본적인 치료수단이 가미된 내적치유 교육이 등장하고, 감정을 터치하고 귀를 간질이는 설교를 잘하는 목사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처럼 예배의식에 참석하고 교회마당만 밟는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안일한 신앙의 태도와 세속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천국에서 당신을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끝으로, 이사야가 이 시대의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실어드리며 칼럼을 마무리 하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11~13)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