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과 리더십
교회 성장과 비전
교회성장은 비전의 결과이다. 성장에 대한 비전이 교회를 성장시킨다. 특히 전도비전, 선교비전은 교회성장의 원동력이다. 현상유지에 만족하고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는 교회는 성장하기 어렵다. 초대교회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사도행전 10장 1절에서 마지막절 48절까지 읽어보자. 유대인의 율법에 갇혀 있던 초대교회가 베드로의 환상(비전)을 통해, 그리고 고넬료의 환상을 통해 유대의 영역에서 이방 세계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예수님도 로마의 백부장을 구원하셨다 (마 8:10-11). 이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이라는 주님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넬료가 살던 가이사랴와 베드로가 머물던 욥바 사이는 40마일의 거리이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차이는 땅과 하늘만큼이나 격차가 있었다. 유대인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엄격히 구별되어 있었다 (레 11장 참조). 베드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보자기 환상" (sheet vision)을 세 번이나 보았다 (행 10:11-16). 세 번이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임을 확증해 준다.
이 비전으로 복음을 새롭게 이해한 베드로의 설교는 가장 역사적인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 10:34-35). 하나님은 문화의 장벽을 초월하여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원하신다는 비전이 초대교회를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가이사랴의 고넬료는 초대교회 최초의 이방인 신자가 될 수 있었다. 자기문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진정한 복음이 명명백백하게 선포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교학 혹은 교회성장학에서는 전도의 개념을 네 가지로 이해한다. 첫째가 E0 전도이다. 이것은 교회 안의 불신자, 즉 명목상의 교인들을 확실하게 회심시키는 전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서구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대다수는 중생의 체험이 없는 형식적인 신자이다. 그들을 전도해야 교회가 성장한다. 둘째가 E1 전도이다. 이것은 같은 문화권 안에 있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이다. 즉 교회 주변에 널려있는 불신자들을 전도해야 교회가 성장한다. 셋째는 E2 전도이다. 이것은 유사한 문화권 안에 있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이다. 우리의 경우 아시아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넷째는 E3 전도이다. 이것은 전혀 다른 문화권 안에 있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이다. 미주나 유럽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이나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가기 전까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E0 전도와 E1 전도에만 전념했었다. 이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은 E2 전도라고 할 수 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사도 바울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은 E3 전도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베드로도 바울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환상 때문에 복음전파와 교회성장의 지경을 넓힐 수 있었다. 오늘날도 이러한 비전과 환상은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의 베드로를 세우사 오늘의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새로운 비전에 사로잡혀야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비록 가치있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잠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 필요에 처한 사람들이 문을 두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큰 소리 때문에 그들의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끼리 받고 누리는 은혜 때문에 죽어가는 영혼의 신음소리에 무관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이 더럽고 불편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전도와 선교비전에 무관심하다면 교회성장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불가능해진다. 비전에 눈을 떠야 한다.
예수님도 로마의 백부장을 구원하셨다 (마 8:10-11). 이제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이라는 주님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고넬료가 살던 가이사랴와 베드로가 머물던 욥바 사이는 40마일의 거리이다. 그러나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차이는 땅과 하늘만큼이나 격차가 있었다. 유대인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엄격히 구별되어 있었다 (레 11장 참조). 베드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먹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보자기 환상" (sheet vision)을 세 번이나 보았다 (행 10:11-16). 세 번이란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임을 확증해 준다.
이 비전으로 복음을 새롭게 이해한 베드로의 설교는 가장 역사적인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행 10:34-35). 하나님은 문화의 장벽을 초월하여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기 원하신다는 비전이 초대교회를 사로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가이사랴의 고넬료는 초대교회 최초의 이방인 신자가 될 수 있었다. 자기문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진정한 복음이 명명백백하게 선포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교학 혹은 교회성장학에서는 전도의 개념을 네 가지로 이해한다. 첫째가 E0 전도이다. 이것은 교회 안의 불신자, 즉 명목상의 교인들을 확실하게 회심시키는 전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서구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대다수는 중생의 체험이 없는 형식적인 신자이다. 그들을 전도해야 교회가 성장한다. 둘째가 E1 전도이다. 이것은 같은 문화권 안에 있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이다. 즉 교회 주변에 널려있는 불신자들을 전도해야 교회가 성장한다. 셋째는 E2 전도이다. 이것은 유사한 문화권 안에 있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이다. 우리의 경우 아시아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넷째는 E3 전도이다. 이것은 전혀 다른 문화권 안에 있는 불신자에 대한 전도이다. 미주나 유럽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우리 나라에 와서 일하는 외국인이나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가기 전까지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E0 전도와 E1 전도에만 전념했었다. 이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은 E2 전도라고 할 수 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사도 바울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은 E3 전도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베드로도 바울도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환상 때문에 복음전파와 교회성장의 지경을 넓힐 수 있었다. 오늘날도 이러한 비전과 환상은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의 베드로를 세우사 오늘의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새로운 비전에 사로잡혀야 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비록 가치있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잠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 필요에 처한 사람들이 문을 두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큰 소리 때문에 그들의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끼리 받고 누리는 은혜 때문에 죽어가는 영혼의 신음소리에 무관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이 더럽고 불편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전도와 선교비전에 무관심하다면 교회성장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불가능해진다. 비전에 눈을 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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