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모르면 귀신의 종이다.
조선시대는 기생충 왕국이었다. 지금도 서울의 서대문밖에서 아파트건설을 하려고 터파기를 하다보면 당시의 서민 공동묘지가 발견되곤 하는데, 썩지 않은 시체인 미라를 해부해 보면 엄청난 숫자의 기생충 알이 발견되곤 한다. 그 이유는 집안에 텃밭을 두고 식구들의 분뇨를 사용해서 야채를 가꾸던 농사환경 때문에, 분뇨에 섞여 있던 기생충 알이 고스란히 사람의 입을 통해 다시 들어가서, 인간이 그들의 최적의 숙주가 되는 사이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기생충 알은 현미경을 통해 발견되기에, 조선시대에는 그들이 즐겨먹던 야채에 기생충 알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네 조상들은 평생 기생충의 숙주가 되어 영양의 공급원으로 살다 죽어갔던 것이다.
필자가 약 4년 전에 성령의 명령으로 영성훈련의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확연히 달라진 것이라면, 귀신들과 피터지게 싸운 덕분에 그들의 존재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20여년의 평신도시절에 귀신에 대해 들었던 것은 성경에 있던 이야기와,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들이 전부였다. 가끔씩 귀신들린 사람을 내쫓는 구경을 한 사람의 입을 통해 듣기는 했지만, 이 역시 현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기도의 강을 건너면서 귀신들이 점점 필자의 삶과 사역에 대거 등장했다. 그러나 마치 안개 속을 걷다가 가까이 오면 갑자기 눈에 띠는 현상처럼, 하나 둘 씩 조우한 이들과 싸우다가 현재에 이르렀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이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고 싶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예수님의 사역은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쳐주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디서나 귀신들린 사람들이 나타나며 수많은 귀신들이 사역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사역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도들과 제자들의 사정도 예수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귀신을 쫒아내고 고질병을 고치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다. 말하자면 그 당시에는 귀신들이 우글우글하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귀신의 존재를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7,80년대만 해도 귀신들린 사람들을 교회에서 쫒아내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사라졌다. 마치 주라기 시대의 공룡들이 멸종한 것처럼, 왜 귀신들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성경의 잣대로 재자면, 귀신들은 하나님과 천사와 마찬가지의 영적 존재로 영혼 불멸한다. 그렇다면 예수님 시대에나 지금의 우리네 시대에나 귀신들이 우글우글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2:14)
성경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바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존재조차 전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희생의 피를 흘린 이유도 악한 영들을 멸하시기 위함이시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혼과 생명을 사냥하는 악한 무리와 싸워서 승리를 해야,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으며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교회에서 귀신의 존재와 그들의 공격, 공격당한 사람의 증세, 그리고 이들과 싸우는 데 필요한 기도의 능력에 대한 가르침을 들어보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목회자들이 귀신을 쫒아내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보이면서, 귀신들린 사람을 교회에 데려가면 문을 닫아걸면서 손사래를 치고 있다. 마치 우리가 귀신 없는 세상에라도 살고 있는 것처럼, 귀신들을 무시하고 터부시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 당시에는 우글우글하던 귀신들이 우리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구약성경에는 귀신이야기가 별로 없다. 욥기에 조금 등장하고 사울에게 들어간 약신 정도로 띄엄띄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귀신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에는 현미경이 없어서 기생충 알을 발견하지 못해서, 그들의 숙주로 살아간 이유와 다르지 않다. 예수님은 귀신들을 분별하고 찾아내어 그들을 쫒아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뒤를 이어 사도들과 제자들도 영안의 눈을 떠서, 귀신들의 존재와 공격을 알아채고 이들을 쫒아 내주고 고질병을 고쳐주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알아채는 분별력이 없어 양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젠가 성령께서 귀신이 지구를 덮고 있을 만큼 많다고 하시면서, 교회에 많은 숫자가 운집해 있다고 하셨다. 그들은 속이는 데 천재이다.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귀신들이 몸 안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살면서 지배하고 있거나, 머리를 타고 앉아 그들의 생각을 넣어주어 마음을 부추기어 공격하고 있다. 귀신을 육안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들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평안과 기쁨과 자유함이 성령이 계시는 증거인데 반해, 귀신이 잠입하여 공격하는 증거는 건조와 냉랭함, 분노와 짜증,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 낙심과 절망의 생각이 들어차 있다.
또한 귀신들은 타락한 옛사람의 본성인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는 것을 이용하고 죄의 덫을 밟게 하여 죄를 짓게 하여 영혼과 생명을 사냥하고 있다. 그래서 분노와 짜증을 달고 살며, 탐욕스러우며 냉정하며, 음란과 불륜, 술 취함, 싸움과 분열, 이혼, 알코올중독을 비롯한 각종 중독, 정신질환, 고질병, 거짓말, 속임, 불의와 불법, 빚에 허덕이며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죄다 마음에 평안과 자유함과 기쁨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 안에 평안과 자유함이 없다면, 죄다 귀신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귀신의 종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교회 마당만 밟는다고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이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귀신의 종이라는 증거만 있다면 귀신에게 속아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서, 분별력과 기도의 능력을 가지고 더 이상 귀신들에게 속아서 살지 말아야 한다. 귀신의 종은 불행에 빠져 고통스럽게 살다가, 영혼과 생명을 사냥당하고 종국에는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이다. 지금 당신에게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와 능력, 열매가 없다면 귀신의 종이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종말이 가까워지고 천국 문이 점점 닫혀 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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