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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교회 초기 인물 자료 - 대중연설가로써(As Public Speaker) 켐벨

Joyfule 2008. 9. 24. 03:02

 

대중연설가로써(As Public Speaker)

 

종교운동의 지도자로써 또 대학의 학장으로써 캠벨은 그의 남다른 능력때문에 다른 대학들과 종합대학교들, 그리고 학식있는 단체들로부터 강연요청을 많이 받았다. 그는 다양한 주제들로 연설하였다. 한 가지는 "앵글로색슨 언어, 그것의 기원과 특성 그리고 운명"(The Anglo-Saxon Language: Its Origin, Character, and Destiny)이었다. (이 강연은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1960년까지 오래동안 사용되었다.) 다른 주제들은 "사형제도에 관한 연설," "사회 상태 개선에 관한 연설," 그리고 "천재의 책임들"이었다. 언제나 이들 강연들은 조심스럽게 준비된 사고체계들이었다. 그가 행한 많은 강연들과 연설들이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제목은 {인기있는 강연들과 연설들}<Popular Lectures and Addresses(Philadelphia: James Challen and Son, 1863)>이었다.

조직가로써(As Organizer)

 

1840년대 초기에 알렉산더의 추종자들은 전국대회와 선교사협회와 같은 조직들에 관한 질문들을 많이 쏟아냈다. 그와 같은 조직들이 성경적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1842년 알렉산더는 {밀렌니얼 하빈저}에 전국규모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서 착실하게 준비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1849년 10월 22-27일 신시내티에서 드디어 전국대회가 소집되었을 때, 알렉산더 캠벨은 참석할 가능성을 찾지 못했다. 병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멀리서 보고 싶었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다. 어느 행사에서든 그는 회장으로 선출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정규적으로 회장에 재선출되었다. 전국대회는 물론이고, 1866년 캠벨이 사망할 때까지, 전국대회가 만들어낸 미국 크리스천 선교사협회(American Christian Missionary Society)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국대회들과 선교사협회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심하게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캠벨은 꾸준히 조직들을 옹호하였다. 실제로 그는 주(州)대회와 전국대회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련의 긴 기사들을 {밀렌니얼 하빈저}에 실었다. 그는 전국대회들이 친교와 영감에 필요할 뿐 아니라, 더 큰 교회의 업무취급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