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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 제8권]

Joyfule 2021. 6. 5. 00:18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 제8권]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Two become one

   

제 1 과 결혼생활의 시작


4. 창세기 2:18~25절을 읽으십시오. 특별히 18절, 23절, 24절을 깊이 묵상해 보고 다음 질문에 답하십시오.


(1)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결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혼자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결국 불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는 이유는 혼자 사는 것은 부족함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사람하고 결혼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2) 독처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후에 여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함께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되도록 여자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람이 혼자 산다고 해서 활동을 못하고 일을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교제의 대상이 필요하기에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까지 교제 대상이 없으면 고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육체적으로 여자가 없다는 것은 고독한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함께 살을 맞댈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가장 밀접하게 나눌 대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교제 가운데 살기 원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흔히 ‘결혼한 독신이다’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결혼생활 속에 교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시대적 상항으로 맞벌이 부부가 많습니다. 이러한 생활로 인해 남편과 아내는 교제 나눌 시간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나가고 저녁에 들어오면 밥하기 바쁘고 피곤해서 자기 바쁘고 T.V를 보지만 대화는 많지가 않습니다. 또 육체적으로도 교제가 적습니다. 부부는 한 이불 속에서 살을 맞대고 잠자리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육체적인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손이라도 잡고 자야 함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살 맞댐이 없이 그냥 잠자리를 각자 갖는다면 외로움이 찾아오고 유혹이 부부 사이에 틈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공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하는 시간외에는 공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부부가 각방을 쓰고 자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기주의 자기 편할 때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방을 쓰면서 한자리에 살을 맞대고 잠자리를 갖는 것이 아니라 침대를 두개 놓아 잠자리를 가지면서 필요할 때만 곁에 오라고 하는 것은 결혼생활이 성숙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이불속에 부부는 살을 맞대고 자는 것이 부부이며 원만한 결혼 생활입니다.


(3) 당신은 “돕는 배필”이란 말을 어떤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돕는 배필이란 원어는 에제르 네게드)으로 뜻은 “그 사람을 돕는자, 구원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상대방이 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도와주는 것’ ‘상대방이 부족한 것을 내가 채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아내가 가장 좋은 배필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 가지 면에서 영적으로 남편이 하나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며, 감정적으로는 만족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인격적으로 서로 보완과 성숙을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은 배필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배필이 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싸움도 필요합니다. 부부간의 건전한 싸움은 성경적입니다. 성경적인 배필이 되기 위해서 건전한 싸움은 필요합니다. 부부간의 자라왔던 환경이 다르니까 ‘서로 터치하지 말자’ ‘서로 간섭하지 말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경적인 부부의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둘이 하나가 되는 삶에서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싸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지만 문제점을 하나님 앞에서 보완해주기 위해 대화형식의 건전한 싸움은 성경적입니다.


예로서, 밖에 나갔다오면 양발을 아무렇게 두는 것, 휴지를 버리는 것 등을 서로 간섭해 줄 때 바르게 되어 있지 않던 습관들이 하나하나 바로 잡아 질 수 있습니다.
잠언 27:17절에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철과 철은 부딪칠 때 날카로워 집니다. 부딪치지 않으면 날카롭게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부부간에도 부딪쳐 주는 면이 있어야 녹이 슬지 않습니다. 전혀 무관심 하는 것은 좋은 부부관계가 아닙니다. 부부간에 부딪쳐 줄 때는 지혜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하나님께서 하와를 아담에게 데리고 오셨을 때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23절)고 말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실 때 다른 개체를 가지고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의 몸에서 만드신 것입니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를 ‘내 소유물이다’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고 여자의 몸을 사랑해야 합니다. 여자가 아프면 그 아픔이 자신이 아픔인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자는 ‘나는 남자에게 속한 몸이다’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편을 위해 좋은 배필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서로가 이렇게 인식할 때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여자를 데리고 오셨을 때 아담이 제일 처음에 한 말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나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내 몸의 어떤 구조보다 더 소중하고 귀중하다는 것입니다. 뼈 중의 뼈다는 말은 최고의 뼈다는 것이고 가장 소중하고 아까운 뼈와 살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5) 다음 설명은 24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각자가 옳은지 그른지를 표시하십시오.


가.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남자는 자기 아내에 대해서 독자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 부모에게 자기 아내에 대해서 책임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친구나 형제에게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24절에 “부모를 떠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서는 부모보다는 아내를 더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나. 부부는 일평생 하나가 되어 결혼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원한 연합을 위해서 결혼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혼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혼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버리는 것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이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무를 피하는 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서로 상대방이 죄를 범하고 불의를 범했다 해도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내를 잘못 거느리고 내가 남편에게 배필 노릇을 못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다. 결혼에 있어서 부부 각자는 서로 동등하고 완전한 인격체이다.

부부 각자는 다릅니다. 완전하지 못합니다. 완전하다면 결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부족을 보면 피하려고 책망하려고 하는 것보다 그것을 내가 도와주고 채워주려고 해야 합니다. 피차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정답 : 가 ○,  나 ○,  다 ×


5. 잠언은 생활 전반에 관한 지혜로운 말씀들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1) 잠언 18:22절은 아내를 얻는 자에 대해 무엇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것이 은혜이고 축복인 것처럼 아내를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어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배필이라도, 선물이라도 누구로부터 받았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존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받았다면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입니다. 재물(財物) 같은 것은 부모에게 받을 수 있지만 아내는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귀한 선물인 아내는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2) 잠언 19:14절에서는 또 어떤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조상이나 부모가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말씀에 “슬기로운 아내”라고 했는데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내 아내가 지혜가 없고 슬기가 없다, 라고 생각해 내 아내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슬기라는 것은 결혼 전에 슬기롭게 되어 올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슬기롭게 될 가능성을 가지고 내게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아내가 슬기롭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슬기를 남편이 묻어둘 수 있고 사장 시킬 수가 있습니다. 슬기로운 아내를 원한다면 남편은 슬기를 계발 시켜주어야 합니다.


예로서,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면 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잘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자꾸 핀잔만 주게 되면 겁을 먹어 음식을 잘 만들 수 없게 됩니다. 아내가 음식을 잘 만들 수 있는 소질이 있는데 남편이 음식을 잘 만들지 못하게 사장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자기 아내가 슬기롭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이 아내에게, 남편에게 하고 있는 자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6.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생식에 대하여 사람이 받은 명령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27~28)


결혼은 하나님께서 생식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서 생식의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결혼은 가장 신성한 선교 사업이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낳아 잘 키우면 이것이 바로 선교 사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의 제자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자녀를 통해서 이 땅을, 이 우주를 지배하고 다스리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자녀가 앞으로 전도하는 삶을 살도록,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도와주는 삶을 살도록 키워야 합니다.
키우는 책임만 가능하다면 아이를 많이 낳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복음으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땅을 정복하는 영적인 제생사업(濟生事業, Life saving business)에 대해 책임을 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7.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 5:21~33절에서는 부부 관계가 그리스도와 그가 구속하신 신부인 교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21절은 당신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결혼은 서로 복종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에 “피차가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때문에 서로 복종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참으로 복종한다면 서로 서로에게 복종하는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서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 생활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2) 어떻게 하면 아내가 자기 남편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까? (22, 24절)
아내의 책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순종만 아니라 복종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원하지 않는 것이라도 복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복종은 좋은 배필의 역할이 됩니다. 남편의 지도력을 돕는 것이 됩니다. 내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데 남편이 사회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수 있으며 리더십을 행할 수 있겠는가? 특별히 교회 사모님들은 목사님께 순종하고 복종을 해야 합니다. 목사님께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나를 지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억지로 하는 독재자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순종할 때 내 머리가 되고 내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순종하는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값을 인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아내는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값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할 것입니다.


(3) 남편들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도록 어떤 훈계를 주고 있습니까? (25~28절)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내를 어떠한 수준으로 사랑해야 되겠습니까?
첫째는,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수준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은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사랑입니다.
둘째는, 자기 몸을 사랑하듯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가 배고프면 내가 배고픈 것처럼 아내가 아프면 내가 아픈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4) 남편은 아내의 머리로서의 위치를 어떤 식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까
사랑으로 머리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해서 폭군처럼 명령하며 공사판의 감독처럼 명령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는 몸을 보호하려고 지시하는 것이지 해(害)하려고 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머리역할처럼 남편은 아내를 보호해야 합니다. 아내에게 명령을 하고 다스리되 사랑으로 머리 역할을 해야 합니다. 책임을 느끼고 보호해주고 필요한 것을 도와주면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남편의 지도력은 사랑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