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을 지펴 밥을 짓는다 - 이기철
꽃씨 떨어지는 세상으로 내려가
꽃씨보다 더 작게 살고 싶었다
나뭇잎이 지면서 남긴 이야기를 모아 동화를 쓰고
병에서 깨어나는 사람의 엷은 미소를 보며 시를 쓰고 싶었다
저 혼자 나들이 간 마음이 날개가 찢겨 돌아올 때마다
가제 손수건으로 피 묻은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어린 근심아, 강을 못 건너고 돌아오는 네 얼굴의 슬픔
더 멀리 가려던 네 꿈이 새의 죽지처럼 꺽였구나
들판이 강물을 보듬고 남은 햇살이 하루를 껴안을 때
너의 몸이 종이쪽처럼 가벼워졌구나
악의를 씻어 국 끓이고 가시로 돋는 증오를 빗질하면
어느덧 마음 한 켠에 파랗게 돋는 새 잎
모래의 마음이 금이 되는 날을 기다려
내 손수 지은 색동옷 갈아 입히면
칭얼대던 근심들이 하얀 쌀밥이 되어 밥상에 오른다
그때 나는 너에게 상처를 보석이라고,
슬픔은 실밥 따뜻한 내복이라고
이 세상 가장 긴 편지를 쓰리라
근심이 눈발처럼 흩날려도
날개 찢긴 근심이 돌아와 갈아입을 옷 한벌 다림질하리라
슬픔이 아닌, 눈물이 아닌
환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모닥불처럼 나누리라
..그림 : 박항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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