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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사라진 교회는 희망이 없다.

Joyfule 2018. 5. 12. 09:52
 
 기도가 사라진 교회는 희망이 없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가 기도가 사라진 교회라고 주장하는 필자의 주장에 불편한 속내를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목회자라면 필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역력히 읽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름대로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아침마다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에 갈 것이며, 주어진 수업시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도 밤10시까지 학교에 붙들어놓는 곳이 적지 않다. 그래서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파김치가 된 채 집에 돌아오곤 한다. 말하자면 그런 학교의 학생들은 죄다 하루 종일 공부를 하고 온 셈이다. 그러나 시험을 치르면 성적이 형편없다. 하루 종일 공부하고 있다가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네 주변에는 이런 학생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면 수긍이 간다. 공부하기 싫은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와 학원 그리고 집을 오가는 자신들의 삶이 정신을 돌아버리게 한다고 여기는 학생이 적지 않다.

 

그런 일이 교회에도 있다. 교회에 오기 싫은 데도 어쩔 수 없이 주일 오전이면 교회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어야 하며, 아까운 헌금을 내기 싫은 데도 드려야하며, 심지어는 하기 싫은 데도 이런 저런 예배의식과 종교행사에 얼굴을 내비쳐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이런 교인들을 교회에 붙여놓으려고 천국의 자격을 무척이나 낮추어서 권유하고 있다. 1분짜리 영접기도를 마치고 일요일 오전에 열리는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기만 된다고 말이다.

 

이렇게 천국의 문턱을 낮춘 교회의 특징은 기도하는 모습이 사라진 모습이다. 예배의식이나 종교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눈도장을 찍으면 되는 것이므로, 속내가 어떻든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은 은밀한 공간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므로 맹렬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기도조차도 눈도장을 찍는 종교행사로 치르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교회에서 열리는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10여 분간 자신이 원하는 기도목록을 큰소리로 외치고는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그들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목회자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종교행사일 뿐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의 영혼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종교행사에 불과할 뿐이다.

 

아시다시피,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는 목회자조차도 기도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새벽기도회에 나와야하기 때문에, 간단한 설교를 마치고 강대상 앞에 앉아 형식적인 기도를 하면서 적당한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이들도 설교시간마다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후렴구(?)를 넣는 것을 잊지 않지만 말이다. 자신의 기도모습이 그러니까 교인들에게도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이상의 기도모습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런 능력이나 응답이 없는 기도를 지속하는 것은 자신이나 교인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그런 기도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은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그렇게 유별나게 기도해야 하냐면서 광신자 취급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세인 교회에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동물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결국 그래서 우리네 교회는 기도소리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한 모습은 이상하지 않다. 100년 전만해도 유럽의 교회에서는 기도의 열정이 놀라웠고 탁월한 영적 지도자가 배출되었으며,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며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유럽교회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교인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명한 교회들조차 이슬람교회에 팔리거나 나이트클럽이나 대형매장으로 바뀌고 있다. 불과 100년 만에 이렇게 복음의 열정이 사그라질 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 이유는 교회지도자들이 기도를 가르치지 않고 교인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교회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미국의 교회가 유럽교회를 판박이로 빼닮고 있다. 미국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 돌아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곳에서조차 이제는 기도소리가 사라졌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들은 기도해 보겠다는 말은 하지만, 정작 삶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볼 수 없다고 한다.

 

아쉽게도, 작금의 우리네 교회가 유럽과 미국의 교회의 전철을 빠른 속도로 밟아가고 있다. 목회자들이 기도를 가르치지도 않고 기도하지 않으니까 교인들에게 형식적인 기도만을 권면하고 있다. 그런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올 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형식적인 기도회마저 교회에서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기도소리가 열정적으로 타올랐던 시절에 전국 방방곡곡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기도원을 보라. 지금 그 기도원이 어떤 모습인가? 대부분 유명무실한 채로 방치되어가고 있다. 아직도 사람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기도원조차, 기복신앙의 세속적인 복을 바겐세일하는 곳으로 변질이 되어 집회시간마다 헌금봉투를 흔들어 대고 있다. 이런 기도원에 하나님이 관심조차 갖겠는가?

 

기도하지 않는 교회에 홀로 남아 있는 당신의 미래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당신이 울고불고 기도해서 교회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버리시는 게 그분의 통치방식이다. 유럽의 교회와 미국의 교회를 보라. 한국의 교회라고 다르지 않을 게 불 보듯 환하다. 당신네 교회의 교인들이 기도를 하지 않아 죄다 지옥의 불길에 던져진다고 하더라도, 당신만은 살아남아 가족을 이끌고 천국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 날마다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과 가족들이 천국에 들어갈 희망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에서 당신의 얼굴을 꼭 보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