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의 조건에서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자기를 내려놓으라는 뜻이다. 사도바울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못 박았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내려놓는다’는 말이 베스트셀러의 제목으로, 현학적이고 종교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울 수 없다. 말하자면 무슨 뜻인지 대충은 알겠는데, 아무도 삶의 현장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말인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의미는 자아를 버린다는 뜻인데,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데, 어떻게 육체의 욕구를 거부하고 금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불가의 중들은 속세를 버리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결혼도 하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철저하게 금욕생활을 병행하며 도를 닦아 해탈의 경지에 오르고자 노력한다. 중세의 수도원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수도원에 들어가면 속세의 인연을 끊고, 오로지 기도와 말씀묵상, 노동으로 일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렇게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일생을 바친 사람들도 자기를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에게, 자기를 부인하면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가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성경에 기록하셨을 리는 만무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관심조차 없으며, 간절히 소원하며 그 방법을 찾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를 부인하는 성경의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내려와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툭하면 제자들에게,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행위는 기도밖에 없다. 기도만이 유한한 인간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통로이다. 이는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 바로 기도하는 행위라는 결론인 셈이다.
그렇다. 기도행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기도를 통해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행위를 통해 자기를 버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칼럼에서는 두 번째 의미인, 기도를 통해 자기를 버리는 훈련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기도를 하려면 적지 않은 기도시간을 내야 한다. 새벽기도회에 나가 1,20분 기도를 하려해도 적어도 새벽 4시가 넘어서면 일어나야한다. 매일처럼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 시간에 일어나본 사람들은 잘 아실 게다.ㅎ 그러나 성경의 기도방식은 새벽예배에 참석해서 1,20분 기도하는 방식이 아니다. 항상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하루에 겨우 1,20분으로 채울 수 없다. 적어도 아침에 1시간, 밤에 1시간을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침에 1시간 기도하려면 적어도 밤 12시 이전에 자야 할 것이고, 밤에 1시간 기도하려면 밤 10시가 넘어서면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직장에서 퇴근하기 무섭게 식사를 하고 쉬다가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습관을 들이려면 대부분의 친구모임도 끊어야 할 것이고, TV나 인터넷 게임, 영화는 물론이고 낚시나 바둑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취미도 접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오직 생활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쉬지 않고 기도하는 성경의 요구를 충족시키게 된다.
이처럼 적어도 하루 2시간의 기도시간을 내려 해도, 생계비를 버는 일과 최소한의 개인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기도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나 공무원이나 교사처럼 칼 퇴근을 보장받는 직업이 아니라, 자영업을 한다면 하루 1시간을 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요구하는 기도습관을 들이려면 돈을 벌어 쌓아두는 그간의 삶을 포기해야 하고, 돈을 사용하면서 쾌락을 즐기는 행위 역시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말하자면, 타락한 옛사람이 추구하는 죄성인 탐욕과 방탕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훈련을 시작하면 중도에 포기한다. 도저히 기도시간을 낼 수 없어서이다. 그 이유는 직장이나 자영업에 충실해야 하고, 퇴근 후에 직장동료나 친구들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하려면 도저히 기도를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쉬지 않는 기도의 습관을 들이려면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재물 둘 다 섬길 수 없다고 하신 이유이다. 새벽기도회에 다니며 형식적인 기도를 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하루 2시간 이상 기도시간을 내는 기도습관을 들이려면 탐욕과 방탕을 내려놓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다른 조건은, 자신이 원하는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추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도를 시작하면, 자신이 요구하는 기도목록을 큰소리로 외치곤 한다. 기도란 영이신 하나님과 내 영혼이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통로이다. 말하자면 성령과 사귀며 교제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간절하고 부르는 습관을 들여, 그분이 항상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계셔야 하는 게 아닌가? 그렇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자녀인 우리가 틈만 나면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가장 기뻐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도가 자신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행위로 잘못 알고 있다. 그래서 요구사항이 관철이 되지 않으면, 새벽기도를 작정하고, 헌금봉투를 가져오며,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협박하고 옥죄고 있다.
이렇게 희생의 강도를 높여서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는 기도방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우리네 조상 때부터 무속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기복신앙이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껏 기도에 응답이 없고 삶에 열매가 없는 이유이다. 이처럼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사귀는 기도습관을 들이려면 자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계획, 목표, 동기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기도만을 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지만 자기를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자기를 내려놓는 기도의 습관이 없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거듭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 이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격이 없음은 물론, 이 땅에서도 평안하고 형통한 하나님의 축복이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자기를 내려놓는 기도의 강을 건너가는 것만이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길이며, 능력 있는 종이 되어 하나님의 도구로 폼 나게 사용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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