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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관연구

Joyfule 2016. 10. 4. 10:29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관연구

 

 

 V. 신의 개념 차이 비교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신의 개념 중 가장 차이나는 부분이 바로 예수를 하나님으로 여기느냐 아니냐하는 가에 있다. 여기에서는 꾸란과 성경에서 말하는 전체적인 부분을 다 살피기 보다는 상이(相異)한 부분에 대해서만 살피고자 한다.
먼저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대해 양 종교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기독교에서 보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것은 이슬람교의 관점과 상이하다. 이슬람교는 원선설(原善說)을 주장하기 때문에 구세주라는 개념이 필요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에 관한 주장 차이를 살피기 전에 먼저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관한 양 종교의 관점을 살피고 다음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가에 대한 양 종교의 관점을 살피면서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슬람의 반박과 이에 따른 논란을 살피고자 한다. 그리고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입장과 여러 해석들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기독교에서 삼위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성령에 대한 이슬람교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1. 아담과 하와의 범죄

먼저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이슬람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살피고자 한다.
“오래전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성약을 했으나 그는 그것을 잊었더라 그러나 그에게서 고의성을 발견하지 못했노라”(Qu 20:115)
꾸란의 보편적인 교리는 아담과 하와가 따 먹은 나무는 선악과가 아니고 악의
씨가 없는 나무이며 또한 그것을 먹은 것은 망각에 의한 실수이지 고의적 행위가 아니기에 죄로 볼 수 없고 이 땅에 내려온 것은 추방당해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신의 예정에 의해 내려온 것이다. 인간의 죄는 환경에 의한 후천적인 것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자범죄뿐이기에 인간 본성의 원선설을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담당해야 할 구원자 개념이 필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아담의 원죄는 그가 속죄한 후에 용서받았고, 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 자기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며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할 수 없다. 이것은 또한 희생과 대속의 교리를 용납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이와는 반면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세기 3장 8절)
이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셨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기 보다는 자기들의 비참한 상태만을 고백하였고 원인을 상대에게 돌렸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저주를 내리셨고 인간에게는 그들의 범죄로 그들에게 생의 고난을 주었지만 그들에게 그들의 후손 곧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겠다는 구원의 약속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그렇지만 하나님과의 본래적이고 완전한 관계는 사라지게 되었고 이후에 인간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2.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둘째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에 대한 이슬람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꾸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유대인이 이르길, ‘에즈라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 이것이 그들의 입으로 주장하는 말이라. 이는 이전에 불신한 자들의 말과 유사하니 하나님이 그들을 욕되게 하사 그들은 진실에서 멀리 현혹되어 있더라.”(Qu 9:30)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로써 선지자일뿐 이는 이전에 지나간 선지자들과 같음이라 ……”(Qu 5:75)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인간의 위대한 스승이며 선지자로 여기고 있으며 그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로서 임명받고 온 분이다라고 말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여기거나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구세주로는 단호하게 부정하고 있다.
예수에 관한 탄생에 있어서 남자를 통하지 않고 처녀 몸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이슬람에서는 인정하고 있으나 이것은 여자의 몸을 접촉하지 않고 태어난 총각의 딸 하와를 신성으로 보지 않는 것처럼 예수의 탄생도 신성이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가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슬람에서는 부인되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이것과 관련해서 꾸란에서는 삼위일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성서의 백성들이여! 너희 종교의 한계를 넘지 말며 하나님에 대한 진실 외에는 말하지 말라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선지자로써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이었노라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믿되 삼위일체설을 말하지 말라 너희에게 복이 되리라 실로 하나님은 단 한분 이시니 그분에게는 아들이 있을 수 없노라 천지의 삼라만상이 그분의 것이니 보호자는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니라.”(Qu 4:171)
이슬람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단호하게 부인하기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의 하나님과는 상이하게 대치된다. 이슬람에서는 오직 유일신 알라를 최고의 신, 단일신으로 주장한다.
한편 마울라나 무함마드 알리의 「이슬람의 종교(The Religion of Islam」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꾸란의 개념이 예수와 마리아를 신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이것과 관련된 전재옥 교수의 논문「무슬림은 예수를 누구라 하는가」을 보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꾸란에서 예수를 삼위의 하나로 보는 경우, 첫째, 꾸란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마리아와 함께 이루는 관계로 오해한 것이다. 정통파에서는 여기서 반박하는 점이 하나님, 예수 그리고 마리아와 함께 3을 이루는 개념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부정된다는 것이다. 부친 없는 출산에서 신의 능력과 모친 있는 출산에서 인성을 생각했고 따라서 마라아가 삼위의 하나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들을 가진다는 오해보다는 발전한 해석이라고 하겠다.” 또한 선지자 무함마드가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무함마드가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갖지 못한 채 이단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음을 볼 때 무함마드가 삼위일체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접했다고 한다. 노먼 다니엘은 그의 저서 「Islam and the West」에서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 신(three gods)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무함마드는 그리스도인들을 ‘이탈자들’이라고 불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인간의 혈육관계의 출생의 아들 개념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나온 독특한 아들개념을 나타내고 있으며 하나님으로써 성부 하나님 아버지와 동질성을 나타내고 아들의 선재성으로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며 메시야적 사역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한다.

3.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셋째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이슬람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먼저 참고한다면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기독교에서의 가장 핵심적인 구원의 중점이다. 인간의 원죄를 씻기위해 대속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이다. 왜냐하면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써는 전혀 불가능한 것임을 나타내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준다. 꾸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다 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Qu 4:157)


이슬람 관점에서는 예수는 하나님의 예언자로써 수 많은 기적들을 행했다.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능력들을 행했지만 그의 백성들이 그를 죽이려고 하는 위험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 없이 들어올리셨다고 밝힌다. 최영길 교수는 그의 저서 「이슬람 문화의 이해」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 문제는 꾸란 4:153-162 사이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단락에서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위반하고 안식일을 어겼으며 선지자들을 살해한 사건, 마리아를 모독하고 험담한 사건들을 비롯한 신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이 언급되고 있다. 또 메시아 예수를 죽였다고 주장한 유대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하나님은 꾸란(4:157-전 page 참조)을 통하여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정하면서 음모자 가롯 유다에게 예수의 형상을 입혀 예수 대신 십자가형을 지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주장하나 그들이 그를 살해하지 못했으며 십자가에 못박지 못했느니라 단지 그와 같은 형상이 만들어졌을 뿐이라…’ 이와 같이 이슬람은 예수의 죽음에 대해 ‘대체된 수난설’을 제시하면서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부인하고 있다”


반면 전재옥 교수는 이슬람교 전통은 외경 자료를 근거로 하여서 이슬람은 기독교 안에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하여 통일된 고백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고 한다. 바나바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가룟 유다가 대신 처형당하였다고 한다. 정통파 학자들은 예수 체포, 수난 및 처형이 진행 되었을 때 하나님이 예수와 닮은 자를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고 예수는 구출되었다고 한다. 이슬람 전통에서는 예수가 십자가 처형으로부터 구출되었다는 것이 논쟁의 여지가 없고 십자가에서 구출된 예수는 하늘로 들리워졌다고 밝히고 있다.
외경을 근거로 한 이슬람교의 주장은 기독교의 복음서에서 빌린 것이 아니고 그 밖의 기독교 관련 문서의 영향이라는 것이 지적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대해 성경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4. 성령

넷째로 성령에 대한 이슬람의 관점을 살피고자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대체로 성령을 가브리엘 천사로 해석하기도 한다. “믿음의 성령이 그것을 가지고 오시어”(Qu 26:193) 또 어떤 무슬림들은 신약에 있는 성령(Paraclete)에 대한 약속이 무함마드 출현에 대한 계시라고 믿기도 한다. 몽고메리 와트(M.Watt)는 이와같은 무슬림들의 생각이 그리스어의 유사한 두 낱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칭송할 만한’이란 뜻의 Periklutos와 성령을 의미하는 Parakletos 즉 Paraclete 간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예수가 언급한 성령(paraclete)이 ‘칭송받는’(praised)의 뜻을 지닌 무함마드를 의미한다고 무슬림들이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한 측면에서 꾸란 61장 6절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구절에 Ahmad는 ‘더 칭찬 할 만한’의 형용사적 의미로서 무함마드를 칭하는 것으로 간주된 것이다. A.D. 740년까지는 어떠한 사람도 Ahmad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으나, 그 이후 무함마드의 또 다른 이름으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꾸란 구절들의 용어들을 보면 무함마드의 당시에 이미 Periklutos와 Parakletos 사이에 혼돈이 있었던 듯한데, 이 두 단어는 단지 자음 prklts로 동일하게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슬람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꾸란에서는 영혼(Ruh)존재를 부정하거나 모독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것과 같은 큰 죄라는 것을 설명하면서도 숭배나 경배 또는 구원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믿음의 대상으로서만 계시를 하고 있다.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이 이슬람의 신앙이라고 설명하지만 영혼에 자력(自力)을 부여하여 그것에 구원하는 행위는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는 성경에 따라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본질의 통일을 이루며 나눌 수 없는 동등성을 이룬다고 한다.아타나시우스는 성령은 성삼위안에 있는 신성에 속하며 그 신성과 하나이며 불변적이고 무소부재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다라고 하며 본질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에 속함으로써 성부의 창조사역에 성자와 더불어 참여하였다고 하였다.신약에서는 성령을 두 가지 형태의 말로 나타내고 있는데 하나는 ‘프뉴마’ 곧 ‘영’(靈)으로 나타내고 있고 또 하나는 ‘파라클레토스’ 개역성경에서는 ‘보혜사’또는 ‘대언자’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