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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의 대인관계에 대하여...

Joyfule 2018. 7. 31. 05:48

 


기독교인들의 대인관계에 대하여...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영역이란 자신만의 공간이 있습니다.

계산 없이 본능이 솔직하게 나타나는 동물의 세계를 보면 영역 다툼이 매우 치열함을 봅니다.

이 영역 다툼에서 힘센 동물이 늘 승리하게 되고 힘이 없는 동물은 늘 변방으로 도망 다니게 됩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은 영역 다툼이 없을까요? 

얼핏 보면 전혀 아닐 것 같아도 제일 심한 게 사람입니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후 마귀가 심어준 탐욕이나

자존심 같은 자아에 휘둘리며 끝도 없이 반목하며 다투고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물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지만, 전쟁도 결국 사람의 탐욕이 만들어낸 영역 다툼입니다.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잘 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서... 심지어 부부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치열한 영역다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마다 이것저것 같다 붙여 자기합리화를 하며 정당화시키지만, 

그 속내를 뜯어보면 결국 인간의 탐욕과 자아가 만들어낸 영역 다툼일 뿐입니다.


그런데 진짜 두려워하고 하지 말아야 할 영역 다툼이 있습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 같은 것이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소프트웨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정신적인 문제의 일입니다.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에서의 밀고 당기기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영역이란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저 부모님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꼭 영역 다툼에 휘말립니다. 

이는 없던 자아가 급성장하여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는 성격적인 면에서 가장 많이 나타납니다.

개인의 생각에 집착합니다. 

내 생각이 고착화되면 남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겉으로는 별문제 없어 보이나 그 내면에서는 치열하면서도 계산적인 주도권 싸움과 

자존심 대결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굳게 지키고자 하는 자아의 영역입니다. 

사람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누구나 다 자아의 영역이 있습니다. 

보통 여기서 세 부류로 갈라집니다. 


1. 내 영역만 지키려 하면서 남의 영역은 관심이 없는 사람 

이 부류는 남이 뭘 하든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들끼리 모이면 다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들이 뭘 하든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내 상태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은 굉장히 냉정한 부류로서 자기 영역만큼은 대단히 확고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내가 남의 영역을 침범할 의사가 없지만, 남들이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평소 잘 지내다가도 상대가 내 영역을 침범하면 분노합니다. 

간섭하는 것도 싫어하고, 간섭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2. 내 영역은 지키려 하면서 남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사람 

이런 부류는 늘 상호 간에 다툼을 몰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부류와 알게 되면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게 아닙니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참견하길 좋아하고, 남들에게 소문내기를 좋아합니다.

남의 일이라도 내 의지대로 안 되면 꼭 따지고 간섭하려고 합니다. 

세상 말로 오지랖이 상당한 부류입니다.

크고 작은 일에 대하여 내가 주도하려는 습성을 참지 못합니다.

남들이 내 영역에 침범하는 것은 용납 못 하면서 주변이 내 생각대로 장악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유형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어떤 무리에 있으면 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분위기 때문에 사회 공동체를 형성함에 있어 여간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닙니다. 


3. 남의 영역에 관심도 없고 내 영역을 침범당해도 무덤덤한 사람 

이런 부류의 사람은 좀 순진스럽지만 다툼 자체가 없습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큰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인본적으로 보면 참으로 인격이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 경우의 상황을 기독교인들에게 대입했을 때 어떻겠습니까... 

물론, 육적이고 인본적인 차원이라면 3번 째 경우가 가장 무난하겠지만

영적인 거룩한 차원으로 보면 위 첫번 째, 세 번 째의 경우는 모두 주님의 뜻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두 번 째 경우가 가장 성경적이고 주님의 뜻에 합당합니다. 

물론, 자아가 개입이 안 된 귀한 영적인 차원에 한해서입니다.

정말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영적 영역(믿음)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합니다만, 이웃의 아픈 영역에 대해서도 

사랑과 긍휼로 최대한 관심을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야말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귀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적이고 인본적인 사고 자체를 다 버려야 합니다. 

신앙의 공동체에서 늘 문제가 되는 원인이 육적 자아에서 나오는 내 영역의 고수와 남의 영역 침범입니다.

남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내 생각만 옳다 하며

내 육적인 영역을 고수하며 신앙 생할을 한다면 마귀에게 이용만 당할 뿐입니다. 

늘 판단 정죄가 생활화되고, 내 영역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분노하여 마귀가 기뻐하는 상황만 만듭니다. 

그러므로 모두 버려야(자기를 부인) 합니다. 

육적인 것에 대하여는 모두 포기하고 나를 내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육적인 본능은 모두 소멸되고 영적인 거룩한 본능만 살아야 합니다.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주님만이 나를 인정해 주시면 그것만으로도 크게 기뻐해야 합니다. 

육적인 내 영역은 모두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이것을 인정받으려 하고 남들에게 강요하고 주장한다면 신앙 공동체는 서서히 쪼개져 갑니다. 

나를 내려놓고 주님을 높이고 내세워야 신앙 공동체는 굳건해집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적인 차원에서

내 힘든 이웃의 영적 영역에 대하여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의 일이라 무관심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본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사람이 어찌 내 이웃에 대하여는 냉정할 수 있겠습니까... 

내 이웃에 대하여 냉정하다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가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영의 구조는 그렇게 되어있기에 이것은 필연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요한1서 4장 20-21절) 

오직 온전한 믿음만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킵니다.


내 영적인 온전한 믿음의 영역을 굳건히 지키면서,  육적 자아가 아닌...

영적인 긍휼함과 사랑으로 내 이웃 형제의 영역을 거룩하게 침범하십시오. 

이는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나의 영적 희생만이 가능하게 합니다.  

이런 삶이 이 땅에서 미리 천국의 삶을 예행연습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 있다면 반드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내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할 수 있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육적인 자아의 충동으로 인하여 내 이웃 형제의 영역을 침범하면 

믿음이 아닌 세상적인 테두리에 갇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거룩함의 충동으로 내 이웃 형제의 영역을 침범하면 

영적인 거룩한 믿음의 테두리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노라 한다면 영의 영역에서만 머물러있어야 합니다. 

또한, 내 형제가 육적인 자아로 내 영역을 침범해 들어와도 이를 거부하며 힘들어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품어 이들을 감싸고 어루만져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한 영적인 사람의 거룩한 모습입니다.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육적 영역 다툼으로 인한 논란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자기희생과 사랑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들 간에 육적 자아의 다툼이 일어난다면 이는 너무나 슬픈 일입니다.

교회에서의 믿음의 지체들끼리 내 입장만 고수하며 분쟁하지 마십시오. 

부모님이 바라는 것은 자식들끼리 서로 이해하며 잘 지내는 걸 기뻐하듯 주님께서도 

우리 믿음의 이웃 형제들끼리 서로 이해하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을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천국은 이런 분들의 것입니다. 

완벽하고 내 입장에 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도 남들이 보기에 불완전한 요소가 많은 존재일 뿐입니다.

상대의 육적 도발에 참고 인내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하오니 서로 부족한 것을 채우며 사랑으로 서로 이해하십시오. 

서로 부족하지만 믿음의 테두리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시오.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육으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그 길 만이 교회 내에서도 믿음의 공동체를 굳건히 하며

믿는 자다운 모습이고 아버지인 주님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내 입장만 지키려는 다툼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삶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믿음의 지체들끼리 내 입장만 내세우며 다툴 리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