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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근거 없이 보혈 피를 적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Joyfule 2018. 7. 28. 02:29


 성경적 근거 없이 보혈 피를 적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 글은 참으로 귀에 거슬리는 글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수많은 분들이 교회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많은 분들이 그리스도인일까요?

이 많은 분들이 보혈 피가 적용되어 죄 사함을 받았을까요?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교인들은 보혈 피로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미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듭나 구원받을 자가 매우 적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거듭난 자가 매우 적다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천국은 교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입니다. 

바울 사도는 단호하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로마서에 남겼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9절)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이 내 안에 안 계시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당연하듯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면서 구원을 확신합니다. 

이는 가르치는 목사님들이 구원의 확신을 부정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요,

주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것이라 가르치기에 반신반의하며 반강제로 이런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대형교회에 강사로 가서 구원받은 사람 손들라고 하니 거의 다 손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그 안에 있다는 확신입니다.

목사님은 곧이어서 그렇다면 구원받을만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손드는 교인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습니까...

지식과 이론으로 구원을 배워서 머리로는 확신하겠는데 구원받은 자로서 당당한

믿음의 삶이 없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하여 자기 양심은 이를 거부하고 감히 손을 못 든 것입니다. 

심장을 찌르는 사실적인 질문에 순간적으로 자신을 돌아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뒤이어 계속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성령으로 거듭난 사람)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2-14)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육신대로 살면 죽는답니다. 이는 곧 지옥 간다는 의미입니다.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합니다. 

이는 곧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의 죄 된 육신의 행실을 죽여주시기에 내가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바울 사도는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성령으로 거듭남이 없으면

육의 죄 된 행실로 말미암아 지옥 가지만, 거듭나 성령을 받으면 성령님의 나에 대한 지배와 인도로 

육신의 죄 된 행실이 죽고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받는답니다.

알기 쉽게 제가 직설적으로 표현해봤습니다. 

이는 거듭나 그리스도의 영이 내게 계시면 성령님의 통치를 받음으로

거듭난 사람답게 성령의 성품으로 인하여 반드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령의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거듭난 사람은... 지금까지 해오던 악한 육의 속성이 성령님의 통치로 인하여 버린다는 것입니다. 

육의 행실이 없어졌다는 것을 어찌 증명하겠습니까... 

그냥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 증명되는 것일까요... 

거듭난 사람은 성령의 아홉 가지 성품이 반드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를 통해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니 위에서 언급한 어느 목사님이 대형 교회에 가서 원받은 사람 손들라고 했을 때  

거의 모든 교인들이 손을 들었다가 그렇다면 구원받을만한 믿음의 삶을 살고있는 사람(열매 있는 사람) 

손들라고 하니 양심에 찔려 거의 손을 내린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만큼은 구원받을만한 거듭난 믿음의 삶과 열매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거듭남이 없다는 걸 양심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거의 다 내렸습니다.

성경에 이와 아주 유사한 말씀이 있는데 사람이 죽어 영만 남아  

주님 앞에 서면 자기가 죄인인 것을 스스로 고백하게 됩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로마서 14장 11-12절)


육을 입고 있을 때는 누구나 자신을 위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을 벗고 영만 남았을 때는 그 누구도 위장하지 못합니다. 

양심에 기록된 자기 죄를 있는 그대로 모두 저절로 고백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감추인 모든 죄가 있는 그대로 자동적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지금 그 많은 교인들이 진정한 회개도 거듭남도 없고,  

거듭남의 증거인 성령의 열매도 없이, 구원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저 교회만 다니면 다 구원받는 줄 확신합니다.

이는 교회에서 그렇게 교육받았기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 피에 대하여 많은 의미를 부여합니다. 

교회에서도 은혜와 더불어 보혈 피란 단어를 제일 많이 사용합니다.

이구동성으로 보혈 피로 말미암아 내가 죄 사함을 받아 깨끗하게 죄 씻음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고 계속 선포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너무나 간단합니다.

목사님의 말 한마디로 인하여 얼떨결에 보혈 피로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하나님이 아닌 목사님이 임의 로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교인들을 안심시키며 듣기 좋으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무차별 달콤한 초콜릿을 뿌려서는 안 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가르쳐야 교인들도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돌이킬 기회와 마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돌이킬 기회조차 막고서서 깊은 구덩이로 이동시키고 있는 현실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흘림으로 인한 보혈 피는 

살아 숨 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기회만 주셨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진 것과 적용됨의 문제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애통하게 가슴을 치는 뜨거운 눈물의 간절한 회개도 없이, 그리스도의 보혈 피가

나에게 적용되었다고 굳게 확신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합니다. 


차라리... 보혈 피가 나의 죄를 사할 기회의 은혜가 주어졌다고 해야 맞는 표현입니다.

보혈 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찢는 눈물의 회개 없는 보혈 피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회개도 안 했는데 교회만 다니면서 보혈 피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고 

보혈 피가 나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다니는 것과 안 다니는 것을 기준하여 보혈 피의 문제가 적용됩니까? 

교회에 출석하여 설교 말씀을 듣기만 하면 이미 보혈 피가 적용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까?

반드시 회개하고 성령을 받는 거듭남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성령을 안 받았다면 그냥 교회 출석하는 교인일 뿐입니다. 

교회 안 다니는 이방인과 교회 다니는 교인의 차이일 뿐, 

교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리스도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여 거듭남이 없으면 입은 옷만 다를 뿐, 그 속사람은 여전히 이방인인 것은 변함없습니다. 

이런 솔직하고 냉정한 글을 써야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암에 걸린 사람에게 암이라고 해야지 건강하다고 안심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고칠 병도 더 키워서 사망하게 될 뿐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회개했을 때, 내 죄로 인하여 십자가 제물로 달리신 예수님께 나의 죄가 전가되는 것입니다.  

즉, 회개 없는 죄의 전가와 죄 사함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회개의 연쇄반응은 반드시 밖으로 증거됩니다. 

회개로 인해 깨끗하게 죄 씻음을 받으면 성령님이 내게 오셔서 나를 거듭나게 하시며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성품이 나를 통해 나타난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보혈 피로 말미암아 죄 씻김을 받았다고 확신하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면서 나를 통해 죄 된 육의 속성이 종종 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이웃에게는 무관심합니다.

그러나, 거듭나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내 이웃도 역시 내 목숨처럼 당연히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육의 속성이 계속해서 나온다면 거듭난 것이 아님을 증명할 뿐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누가복음 10장 27절)

물론 성화의 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거듭난 사람은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므로 반드시 성령의 성품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선한 사람(거듭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거듭난 열매)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5절) 


거듭남을 위한 진정한 회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혈 피가 적용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도

보혈 피가 적용되어 이미 죄 사함을 받은 것이고,  그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아야 맞는 말이 됩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먼저 간절히 회개하여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보혈 피는 회개하는 자에게만이 해당되는 것입니다. 

또한, 보혈 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거듭남이 있을 것이고, 

거듭남이 있으니 당연히 성령의 열매가 그를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상호 떨어진 독립 개체가 아니라,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기에 어느 것 하나가 없다면 그 모든 것은 가짜임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내 이웃에게는 무관심하다든지, 

회개했다고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다든지, 

거듭났다고 하면서 육의 속성이 계속해서 나온다든지, 믿노라 하면서 믿음의 삶이 없다든지, 

이는 모두 보혈 피가 적용 안 된 가짜 거듭남이란 것입니다. 

회개=보혈 피=성령으로 거듭남=믿음=순종=성령의 열매...

이는 반드시 상호 연관되어 있어서 똑같은 표현입니다.  

이것을 따로따로 떼어서는 성립이 안 되는 말씀입니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야고보서 3장 11절) 


보혈 피로 말미암아 내가 죄 씻음을 받았다면 거듭났기에 그 열매가 삶으로 쏟아져 나와야 당연합니다. 

이론과 지식으로는 안 되는 게 없습니다. 

보혈 피로 인한 죄 사함과 거듭남과 구원은 복음에 대하여

배우는 지식과 이론을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다리(복음)에 대하여 아무리 배우고 연구한다고 그 연구 자체가 우리를 구원시키지 못합니다. 

사다리를 세우고(거듭나) 위로 올라가야만이 사다리(복음)의 역할이 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사다리에 대한 이론과 지식만 가득 할 뿐 

사다리를 세우고 올라가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나에게 오시면 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육의 속성으로 산다면...

내가 보혈 피로 죄 씻음 받고 거듭났다고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엄청난 고백을 끝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뭘 하려고 내 능력과 의도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리 살도록 내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씀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6장 26-27절)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면 당연히 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단물이 들었는데 쓴 물이 나올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쓴 물이 들었기에 쓴 물이 나오고, 단물이 들었기에 단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과 쓴 을 내겠느냐 (야고보서 3장 10-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