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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과 밖의 태도가 다르면 심각한 영적 위기입니다.

Joyfule 2018. 8. 1. 07:03


 교회 안과 밖의 태도가 다르면 심각한 영적 위기입니다.


기독교인은 주일에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에 가서 주님께 예배드립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에 배정된 각종 봉사를 하기도 하고 또 공동체별로 따로 모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아름다운 얼굴빛을 하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항상 웃는 얼굴에 근심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복도에서 만나면 서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인사합니다.

준비된 천국의 백성다운 모습들입니다.


그런데... 과연...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항상 이런 모습을 유지하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심각한 신앙적 위기에 봉착한 것입니다.

이는 있는 그대로 밝히자면... 교회에서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천국 백성 같은 얼굴을 했지만,

밖에서는 교회 사람이 안 보이니 교회에서와 다른 모습이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시선보다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두려워하며  

그저 구원받기 위해 교회만 기계적으로 다니는 것입니다.

이는 보통 심각한 영적 상태가 아닙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6절)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가복음 7장 6절)


정말 자신이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믿는 분들이라면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거룩한 예배자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장소와 사람만 바뀌었다고 다른 모습이 나오면 안 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야고보서 3장 10-11절)


하나님은 24시간 동안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눈으로 세밀히 지켜보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눈동자이지만,

우리의 모든 중심과 행동을 날카롭게 감찰하시는 눈이기도 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눈은 내 이미지 때문에 두려워하겠지만, 

하나님의 눈은 영원한 천국과 지옥의 향방을 결정짓는 눈입니다. 

과연 어떤 눈이 더욱 두렵고 떨리십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내가 믿는 사람이라면 사실, 주변의 뭔가를 의식해서 행동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올바른 믿음에서 나오는 대로 살다 보면

교회든 세상 밖에서든 그의 삶은 늘 동일한 거룩함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의식하는 모습보다, 믿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거룩함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자매와 서로 도우며 잘 지내는 것을

부모를 의식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이는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척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기뻐할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특별히 주님을 의식해서 뭔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믿음 안에서 자연스럽게 풍기는 모습을 더욱 바라시고 기뻐하십니다. 

믿음은 뭔가를 의식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안에서 믿음 그 자체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이어야 합니다. 


수영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뭔가를 의식해서 수영하지 않습니다. 

수영을 할 줄 알기에 그냥 물속에서 수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일부러 의식하며 하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숨을 쉬며 육체의 생명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다면 누구를 의식하는 복음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듣고 배운 대로 자연스럽게 복음의 삶이 나와야 합니다.

뭔가를 의식하는 삶은 반드시 가식적 행동이 따라옵니다. 

가식은 가짜 믿음입니다.

믿음은 가식을 생산해서는 안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에 자연스러워야 하고, 

거듭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분들은 

간절한 마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가식이 아닌 진실이기에 주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믿음 안에서 나오는 거룩한 삶이 평소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삶이 없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영적인 자유함... 영적인 자유함은 의식함이 없습니다.

의식한다면 그것은 이미 믿음 안에서의 자유함이 아닌 멍에입니다. 

내 멍에를 둘렀을 때는 내 짐이 매우 무겁지만,

내 멍에를 내려놓고 주님의 멍에를 둘렀을 때는 같은 무게의 짐이라도 훨씬 가볍고 자유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사모하는 온전한 믿음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데 내 멍에를 지우시겠습니까... 

거듭난 온전한 믿음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세상이 나를 보고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전혀 의식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장소의 구분이 없고,  가식이 없고, 의식함이 없는 자유롭고 온전한 믿음의 삶...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그리스도인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내가 풍기고자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