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를 서두른 만큼 지옥에서 멀어진다.
그(성령)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거듭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요한 1서 3장 6-10절)
이렇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길 성령이 내 안에 거하면 즉,성령으로 거듭나면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거듭난 자가 죄를 전혀 안 짓는다는 말씀이 아니고,
거듭난 자는 불가항력으로 죄를 지어도 바로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기에 죄가 없는 것입니다.
회개 안 하는 것이 큰 죄이기에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마음의 중심에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간절함이 가득하기에
주님께서는 그 마음의 동기를 보시고 회개하도록 하십니다.
주님은 왜 다윗에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규정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주야로 묵상하는 왕이었지만 결국 그도 인간의 육을 입고 있는 이상 죄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 장군을 간접살인 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다윗을 주님께 합한 자라고 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인간은 성령으로 거듭나든 그렇지 않든 부득불 이 땅에 있는 마귀의 권세 아래 놓여있습니다.
천국이 아닌 이상 죄의 미혹은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다윗과 같은 사람도 죄의 올무를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던 이유는 진심으로 가슴을 치며 애통하여
눈물로 회개할 줄 아는 자였기에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영에 중독되면 서슴없이 죄를 지으면서도 나는 거듭난 자라고 하고,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에 은혜가 필요하고,
십자가 보혈의 피가 회개도 없이 내 죄를 가리는 데 쓰이고,다 용서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심중에는 죄를 짓고도 마음을 찢는 회개도 없이 은근슬쩍 은혜와 보혈 피로
죄를 가리고 덮는 도구로 이용하자는 불편한 진실이 들어있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죄를 은혜로 덮고 넘어가자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회개하여 죄를 씻으라고 합니다.
즉, 은혜와 보혈 피는 죄를 덮고 넘어가는데 필요한 게 아니라,
회개의 은혜가 임하여 자신이 저지른 죄를 씻을 수 있도록 회개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은혜는 바로 이럴 때 필요한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만이 회개를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거듭나도 다윗처럼 계속 해야 합니다.
사람은 사탄 마귀가 권세 잡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아무리 거듭나도 죄와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매일 세마포 옷을 씻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죄를 저지르고 나중에 회개해서
다윗처럼 죄 씻음을 받아야지 하는 기회주의적 사람이 꼭 있습니다.
다윗은 나중에 회개해야지 하며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인간의 본능에 이끌려 방심한 사이 죄를 범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임한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지난 죄를 책망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큰 죄를 지었음을 알 정도로 기억에 없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즉각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로 침대를 다 적실 정도로
마음을 찢어 회개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윗처럼 입술이 아닌 마음을 찟는 회개는 내 의로 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 하므로 은혜가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며 인생을 즐길 대로 즐기다가 수명이 다할 때가 되어서 나중에 회개하고
구원받아야지 하는 계산적인 분들은 절대 자신의 의도대로 회개할 수 없습니다.
이는 너무나 악한 마음이기에 아무리 눈을 감고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의 은혜가 부어지지도 않고
애통함도 간절함도 없기에 입술로만 중언부언하다가 끝날 뿐입니다.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7절)
회개도 내 양심이 올바로 섯을 때 주님께서 회개의 은혜를 베풀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바로 선 자는 주님께서 언제라도 회개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왜 그렇습니까...악한 마음을 품고 의도적으로 죄 짓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은혜를 베풀어 죄 없이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사영리식 주님 영접 후 단 한 번의 입술만의 형식적 회개로
모든 죄가 그리스도의 보혈 피로 이미 다 소멸하였으니 더이상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지옥으로 보내려는 마귀의 강력한 속삭임입니다.
이렇게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주님께 통회 하셔야 합니다.
죄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누구나 다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안 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회개해야만 죄가 없어지기에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간절한 회개를 해야만이 죄인이 아니게 됩니다.
이렇게 종교의 영에 감염되면 애통한 회개함도 없이 그리스도의 보혈 피와 은혜를 내 입맛대로 이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일 뿐, 주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마음을 찢는 간절한 회개는 믿음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회개가 있어야 거듭남도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내 더러운 죄를 씻는 과정입니다.
더러운 죄를 씻지 않고 거룩한 천국에 절대 못 들어갑니다.
회개는 입술로만 그치면 회개가 아닙니다.
반드시 평소의 삶에서 회개에 대한 열매가 증거되어야 합니다.
입술로 열심히 회개하면서 세상의 죄 가운데 빠져있다면 그 입술의 회개는 중언부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상태로 아무리 은혜를 외치고 보혈 피를 앞세워도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입니다.
보혈 피와 은혜는 마음을 찢는 회개를 한 후 회개에 대한 열매를 맺으려는 거룩한 양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회개는 세상에 대한 욕구 때문에 마음에 아버지 두기를 싫어해서
가출했다가 크게 뉘우치고 아버지께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 없이는 주님과의 관계회복은 요원할 뿐입니다.
집 나간 탕자인 둘째 아들도 이런 과정을 거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인 주님은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
얼마나 돌아오길 원하셨으면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셨겠습니까...
지금도 주님은 우리가 언제 회개하고 돌아오나 학수고대하시며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께로 빨리 돌아가십시오.
빠를수록 좋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개인적 종말을 맞이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때가 지나면 이미 후회해도 늦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대비합니다.
일이 벌어진 후에 후회하며 통곡하는 것은 이미 떠난 버스를 보며 손을 흔드는 것과 같습니다.
지옥의 통곡이라는 소리입니다.
회개가 안 되면 회개의 영을 부어달라고 매달리십시오.
주님께 알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시겠습니까...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기 위해 달라고 구하는 것은 주님은 기뻐하시며 아낌없이 들어주십니다.
주님은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죄를 회개하겠다는데 안 들어줄 리 없습니다.
회개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회개의 과정이 없이는 그 누구도 거듭날 수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정말 중요하고 중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빨리할 수록 좋습니다.
자꾸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로 미룰수록 하루하루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지옥에서 돌이키고 싶으시면 지금 이 시간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보관 자료 ━━ > 초돌사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인들의 대인관계에 대하여... (0) | 2018.07.31 |
---|---|
생명의 복음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의 반응에 따라 (0) | 2018.07.29 |
성경적 근거 없이 보혈 피를 적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0) | 2018.07.28 |
주님께서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하여... (0) | 2018.07.26 |
고난과 핍박을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0) | 2018.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