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성목회칼럼 133 우물안 개구리
한국말에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좁은 시야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물안에 사는 개구리는 자신이 거하는 곳이 세상 전부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물밖에는 더크고 더 경이로운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작은 생각, 편협한 사고, 비전이 결여된 인생을 빗대어 ‘우물안 개구리’ 라고 말합니다.
가끔 제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서점에 촘촘히 꽂혀있는 수많은 도서들을 만나는 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과학기술, 인문과학, 종교등등…
출판의 홍수속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도서들 가운데 몇권을 펼쳐보는 순간
그속에 깃든 정보와 지식, 그리고 통찰력으로 인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시에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의 양은
이에 비하면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수준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우물안 개구리’의 모습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목회자라는 위치 때문에 각 분야의 정상에 선 전문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각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서 생각해 보지 못했던 특별한 정보나 지식을 접합니다.
바로 그 순간도 ‘우물안 개구리’가 된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를 접할 때도
세상이 얼마나 넓고, 방대한 곳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집착하고 고민하는 참 작은 세상에 머물고 있는
‘우물안 개구리’가 된 저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선교여행을 하면서 세계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LA지역과 한인문화권을 벗어나자
급변하고 있는 세상의 흐름을 피부 깊숙히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종교분쟁, 꿈틀거리는 제3세계권의 경제력과 문화, 지식수준의 급등…
그속에서 ‘우물안 개구리’로서의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한국에서 모범적으로 훌륭하게 사역을 전개하는 몇몇 교회들을 방문하고
말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실과 열성을 가지고 사역을 만들어가는 그 교회들을 통해서
‘우물안 개구리’가 된 저의 모습에 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외쳤던 어떤 기업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전부라고 여겼던 것에서 눈을 조금만 돌리면
우리가 고집스럽게 주장했던 내용들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이로운 세상, 드넓은 세계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드넓은 세계가 보이면 해야 할 일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우물안 개구리들’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을 책임지고, 선도해야 할 세계와 역사의 중심지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들은 큰눈을 가진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너머 존재하는 더 넓고 큰 세계를 볼 줄아는 큰눈의 소유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물안 개구리들을 싫어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더 넓은 세계로 그의 백성들을 노출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늘 당대 최고의 선진국가들
(애굽, 바벨론, 앗수르, 메대와 바사, 마게도니아, 로마제국)과
밀접한 연관을 만드셨음을 기억하십시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된 모습에 징벌하시기 위하여 그리 하신 연유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뜻을 품으셨기에 그리 하셨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계의 주역이 되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물안 개구리의 신세가 되지 않게 하시려,
그들의 눈을 넓게 열어주시고자 당대 최고의 선진문명권에 있었던
열강들과 깊은 연관을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그러므로, 눈을 열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 고집을 접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전부라는 마인드는 자신보다 탁월한 존재를 만남으로 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보다 탁월한 존재들이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깥 세상을 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더 크고 의미있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지식이 얼마나 짧은지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겸손해 집니다.
그리고 나를 바꾸고, 변화를 향한 큰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보관 자료 ━━ > 김지성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지성목회칼럼 135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0) | 2008.01.05 |
---|---|
김지성목회칼럼 134 차세대를 사랑하는 장년세대 (0) | 2008.01.04 |
김지성목회칼럼 132 도전받는 기독교 (0) | 2008.01.02 |
김지성목회칼럼 131 적은 시간이라도 충분합니다 (0) | 2008.01.01 |
김지성목회칼럼 130 담임목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글로발의 가족들 (0) | 2007.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