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고 산다는 것 - 임병식
소양 부족 탓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살아가면서 무얼 보고 이해를 잘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치는 때가 허다하다. 특히나 기계를 만지는 일은 젬병이어서 고장이라도 날라치면 쩔쩔매기 일쑤다. 또 하나는 추상화 계열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담아놓았는지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을 끓일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그러면서도 체면과 자존심때문에 누구에게 다가가 물어보지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모르고 말지, 공연히 남에게 물어서 남우세를 자초할 것 까지 뭐있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남들은 다 잘 알고 이해하는가 했더니, 어느 날 신문을 보니 그것도 아닌 것을 알고서 비식 웃게 된다.
서양의 어느 유명 미술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주최측에서 피카소 그림을 전시하면서 그만 실수로 작품 하나를 거꾸로 걸어놓은 일이 있었다. 그림을 철거하면서 알게 됐는데, 우스운 일은 전시 중에 오히려 그 그림 앞에 관람객들이 몰려서 관심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 기사를 보면서 느끼는 일은 사람의 감상안은 모두가 엇비슷한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다.
예전에 나는 집에서 조그만 가게를 열면서 수석 한 쌍을 방 귀퉁이에 전시해 둔 적이 있다. 한데 이를 보는 이 마다 그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웬 큰 바위덩이가 방에 있지. 좀 답답해 보이질 않아?"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자마자 피식 웃으며,"그놈 참, 기골한번 장대하다. 멋있는 걸"하면서 호기심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대번에 "어이 징그러워"하고는 낯을 붉히고 외면한 사람도 있었다. 보여주는 형상은 누구에게나 똑 같으련만, 사람마다 느끼고 받아들이는 반응의 차이는 제각각인 것이었다.
지난 해 광주에서 열린 비엔날레에 구경 갔다가 목격한 일이다. 개막한지 한 달쯤 되던 때인데, 마침 내 앞에는 효도 관광 팀으로 보이는 촌로들이 인솔자의 안내로 한 줄로 늘어서서 관람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뒤따르면서 보자니 떠드는 것하며 호기심어린 표정들이 마치 유치원생들의 야외 나들이를 방불케 하였다. 아프리카 관을 들어설 때였다. 앞장서서 관람하던 한 노인이 느닷없이 뱀 꼬리라도 밟은 듯 기겁을 하며 뛰어나왔다. 그러면서 외쳤다. "에잇, 볼 것이 못 되네 그랴. 깜둥이 여자가 애 낳는 걸 뭣 땜에 해놨담 그래. 어서 나가세" 하며 뒷사람을 돌려세웠다. 그러자 다른 일행들도 "그러면 돌아가지 " 하고서 금방 동조하는 것이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전시물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설명이 곁들어 있지 않으니 작가의 의도를 꿰뚫어 볼 수는 없었지만, 느끼기에 피부색이 다른 여인이 아기 낳는 모습을 통하여 지구촌 여인들의 공통된 생과 삶을 조명하는 작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생명탄생의 숭고함, 여성의 보편적인 삶에 시선을 맞춰야 할 텐데, 촌로들은 다만 ‘아이 낳는 모습’ 의 그 자체현상만을 보고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런 노인들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방에 놓아둔 음양석을 보면서도 사람들이 나타내는 반응은 십인십색으로 다양한 것이었다. 어떤 이는 작품으로 평가를 해주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그 비엔나레 설치작품을 보고 나타낸 촌로처럼 엉뚱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걸 보면서 사람마다 감성의 차이, 이해의 차이가 이토록 큰 것인가 새삼 놀라왔다.
이 돌은 우리 집에 드려와 10년 쯤 됐다. 하나는 직접 탐석했던 돌이고, 하나는 구입을 했던 돌인데, 음양이 잘 맞춰진 한 쌍의 돌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조화의 미의식은 느끼지 못하고 그저 남녀성기를 닮았다는 야릇한 눈으로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고 사는 사고력을 생각해 본다. 미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래 산다고 행복할까. 우리나라 평균수명을 보면 남자69세, 여자가 72세라고 하는데, 무작정 오래만 살면 행복할 것인가.아니라고 생각한다.
불전(佛典)에도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는 볼 수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어 잘 보는 자가 적다' 청맹과니 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지를 깨우침이 아닌가.
어려운 것을 보고 이해 못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사람은 사는 동안 타고난 재능을 10퍼센트도 다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더구나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 두루 섭렵은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소양은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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