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 조화유 (단편소설)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았던 겨울도 한풀 꺾이고 봄기운이 역력한 어느 날 밤.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서울 근교 어느 부촌. 외국풍으로 지은 아담한 단독주택들이 잔디 깔린 정원에 둘러싸여 있어서 TV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곳이다.
이 동네에 최근 붉은 벽돌로 새로 지은 2층 양옥 거실에서는 장승구 교수 부부가 대형 벽걸이 TV로 9시 뉴스를 보고 있다. 50대 초반의 장교수는 한 인기 TV드라마가 ‘천하대학’이라고 이름 지은 대학교에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유명인사다. 그는 사진발 잘 받는 용모에 달변과 해박한 법률지식을 겸비한 이른바 스타 교수다. 이름 ‘장승구’ 그대로 승승장구하는 그는 개각 때 마다 지역 안배 차원에서 법무장관 물망에 자주 오르내렸다. 그의 부인도 잘 나가는 변호사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법률회사 소속이다. 지난 번 총선 때 모당 비례대표 국회의원후보 명단 상위권에 진출하였으나 아슬아슬하게 의원감투를 놓쳤기 때문에 그 당 비례대표 의원들이 죽거나 사퇴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모두 사형제도 반대론자로도 유명하다. 특히 남편 장교수는 자주 TV에 나와 사형제도 폐지를 역설하고 신문에도 기고를 많이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국회에 제출되어있는 사형폐지 법률안 작성에 자문을 해준 바도 있다.
TV에서는 9시 뉴스가 끝나고 ‘시사토론 99분’ 프로가 시작 되었다. 생방송이 아니고 녹화 방송이지만 인기프로다. 한동안 잠잠했던 사형제 존폐문제가 부산 여중생 강간 살해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뜨거운 논쟁거리로 부상했기 때문에 이 프로가 이 문제를 다룬 것이다.
바로 전날 방송국에서 녹화한 장교수 자신의 발언 장면이 화면에 떴다.
“김길태 사건에 흥분한 여론을 등에 업고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유영철, 정성현, 강호순 등의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들을 사형시킨다고 해서 이런 사건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또 사형은 법을 빙자한 또 다른 살인이므로 사형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합니다. 많은 선진국, 특히 유럽에서는 거의 모든 나라가 이미 사형을 폐지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형제도를 폐지하고 선진문명국 대열에 들어서야 합니다.”
장교수의 발언이 끝나자 한 사형제도 찬성론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장승구 교수님의 사형제 반대 신념은 매우 확고하신 것 같군요.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만일,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만일 장교수님 따님이 납치되어 성폭행 당하고 살해되어도 장교수님은 사형제 폐지를 계속 촉구하실 것입니까?”
장교수는 질문이 좀 무례하다고 생각했는지 눈살을 약간 찌프리며 멈칫하더니 이내 “네, 그렇다 해도 나의 신념에는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대꾸했다.
TV 화면에서 이 장면을 보면서 장교수는 “저런 무식하고 예의없는 것들이...”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부인도 “저런 무식하고 야만적인 사람들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인권후진국이란 소리를 듣는 거라구요”하고 맞장구를 친다.
바로 그 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이태리 가죽소파에 남편과 함께 나란히 앉아 있던 부인이 소파 옆 스탠드에서 전화기를 집어 든다. 황금색으로 도금한 골동품 스타일의 고급 전화다.
“응, 그래, 알았다. 11시 전에는 꼭 들어와야 한다, 알았지? 운전 조심하고...”
올해 속칭 천하대학에 들어간 외동딸 애린으로부터 온 전화다. 간단한 통화가 끝나자 부인은 다시 남편 옆에 찰싹 붙어 앉으며,
“애린이가 친구 생일 써프라이즈 파아티에 참석하느라고 좀 늦겠다네요”라고 한다.
“그래?” 남편은 TV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한다.
그런데 11시가 지나도 딸은 귀가하지 않았다. 장교수 부부는 이미 침실로 자리를 옮겼다. 누워서 책을 읽던 장교수가 딸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하자 남편보다 열 살이나 아래이고 눈과 코를 성형한 부인이 침대 머리맡의 전화기를 든다. 딸의 휴대전화 번호를 눌렀으나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음성 멧세지가 들릴 뿐이다. 장교수 부부는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딸과의 통화 시도는 약 30분 단위로 몇 번 더 계속되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들 부부는 잠을 설쳤다.
아침에 잠시 붙였던 눈을 뜨자마자, 장교수 부인은 딸의 친구 두 명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그러나 강남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서 생일 파이티를 마치고 헤어졌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장교수 부부는 그 레스토랑으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주차장에 딸의 차는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운전석 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그러나 차안은 깨끗했다. 그렇다면 혹시 애린이가 차 문을 여는 순간 괴한이 그 아이를 납치해서 자기 차에 태우고 달아난 것은 아닐까? 장교수 부부는 그런 상상을 해보며 더욱 불안해졌다. 일단 차는 그 자리에 두기로 했다. 혹시 정말 딸이 괴한에게 납치되었을 경우, 무슨 단서라도 차 안팎에 있을지 모르므로 현장 보존이 필요하다고 장교수는 생각했다. 그는 레스토랑 지배인에게도 일단 그 차에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딸의 행방은 묘연했다. 딸의 휴대전화는 계속 불통이고, 딸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도 없었다. 딸의 귀가 예정시간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난 뒤 장교수 부부는 관할 경찰에 딸의 실종신고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조금만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만일 납치라면 납치범들로부터 무슨 연락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부부는 초조와 불안으로 침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갔다.
5일째 되던 날 집으로 편지 한통이 배달되었다. 수신자는 장애린으로 되어있었다. 겉봉에 적힌 볼펜글씨가 삐뚤빼뚤한 게 첫눈에도 예사로운 편지가 아닌 것 같았다. 봉투를 뜯어보니 역시 납치범의 편지였다.
“존경하는 장교수님 내외분께,
따님은 저희가 잘 돌보고 있으니 이 일을 경찰에 신고하지 마시고 조용히 해결하기 바랍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장교수님께서 TV에 나가서 사형제는 폐지하지 말고 그대로 두자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천인공노할 흉악범 유영철이나 정성현, 강호순 같은 놈들의 사형집행은 더 미루지 말고 즉시 시행하라고 촉구해주십시오. 그러면 따님을 돌려보내드리겠습니다.”
달랑 이것이 편지 내용의 전부였다. 발신자 성명도 있고 주소도 인천 어디로 적혀있었다. 우체국 소인을 보니 편지를 붙인 곳은 인천에서 가장 큰 우체국이었다. 발신자 성명과 주소는 가짜일수도 있겠지만, 소인은 가짜일수가 없다.
일단 딸이 살아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이므로 장교수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했으나 납치범의 요구조건이 난감했다. 차라리 돈을 달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열렬한 사형반대론자한테 갑자기 사형제 찬성 발언을 하고 사형수 즉각 처형을 촉구하라니 결코 쉬운 주문이 아니었다. 장교수는 고민했다. 현재 국내 교도소에 갇혀있는 사형수들의 형 집행에 반대하는 진정서에 100여명의 형법학자들이 서명하는데 주동적인 역할을 한 그가 법학자로서, 인권운동가로서의 위신과 자존심을 구기는 것이 정녕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위신과 자존심을 외동딸의 안전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부인이 설득했지만 장교수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정말 난감한 일이었다.
그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공개수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증거라고는 달랑 편지 한 통 뿐이다. 발신자 성명과 주소는 가짜일게 분명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편지지와 봉투 그리고 우표에서 혹시 지문이나 말라붙은 타액을 발견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용의자가 없는 상태에서 지문이나 타액은 별로 소용이 없다. 물론 성범죄 전과자들의 지문이나 DNA와 대조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편지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애린이 납치범은 단순 성범죄 전과자가 아니라 성범죄 피해자 가족일수도 있다. 또 서뿔리 공개수사를 했다가는 범인이 애린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 장교수는 일단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갔다. 범인들로 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장교수 부부는 일단 경찰에 편지를 갖다 주고 실종신고를 하되, 비밀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 경찰로부터 편지를 넘겨받은 국과수는 편지 봉투와 편지지에 지문이 있다고 보고했지만 그 지문이 장교수 부부의 것일 수도 있고 우체국 창구직원이나 집배원 지문일수도 있다는 소견을 보내왔다. 우표에서는 사람의 타액은 발견되지 않았고 지문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범인이 장갑을 끼고 침 대신 풀로 우표를 붙인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편지 글씨는 범인이 오른손 대신 일부러 왼손으로 쓴 것으로 국과수는 판단했다.
그 편지를 받은 지 열흘이 지난 뒤 두 번째 편지가 배달되었다. 이번에는 서울 광화문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 편지 내용은 종전과 같았다. 다만 장교수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하루 속히 요구조건에 응하라고 재촉하는 말이 덧붙여 있었을 뿐이다.
장교수 부인은 이제 눈이 휑하니 쑥 들어간 얼굴로 남편에게 사정을 했다. 제발 범인 말 들어주고 외동딸 살리자고. 그러나 장교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혈색 좋고 부티 나는 그의 잘생긴 얼굴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한편, 부산 여중생 강간살해사건 용의자 김길태가 범행을 자백하고 법무부 장관이 청송 교도소에 사형집행 시설 공사 착수를 지시한 한 것을 계기로 사형제도 찬반논쟁은 더욱 뜨거워졌다. 특히 일부 종교계도 사형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람의 목숨은 신(神)에게만 여탈권(與奪權)이 주어진 것이므로 생명의 존엄성은 국가도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사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또 어떤 ‘인권운동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국민을 법의 이름으로 죽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형제 찬성론자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사형반대론자들이 살인범의 목숨을 살해당한 사람들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했다. 경기도 파주에 산다는 어떤 사람은 자기 딸이 강간살해당한 시체로 발견 된지 몇 년이 지나도록 경찰이 범인을 잡지 못했다며, “내 딸을 그렇게 무참하게 죽인 놈은 아직도 버젓이 살아서 날 보고 비웃는 것 같아, 범인을 잡으면 내가 직접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다”고 외쳤다고 한 신문이 전했다.
한 방송사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어떤 시민은 “우리 같이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도 그런 흉악범들에 대한 증오심이 대단한데, 피해자 가족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을 모릅니다. 인권이니 생명의 존엄성이니 어쩌고 하며 떠드는 자들은 자기들이 직접 당해봐야 그런 헛소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 시민은 “사람을 한명도 아니고 여럿이나 죽인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놈들을 죽이지 않고 평생 국립호텔에서 먹이고 입히는 것은 세금 낭비다. 즉시 처형하라!”고 격분했다.
언론매체들도 사형제에 관한 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어떤 신문 논설위원은 우리나라가 EU(유럽연합)와 FTA(자유뮤역협정) 체결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EU가 요구하는 사형제 폐지를 거부하면 외교통상 마찰을 빚을 것이라고 사형제 폐지론을 폈다. 그러나 다른 한 신문 사설은 “EU가 우리나라에 요구한 것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EU지역으로 도주한 자를 EU국가 경찰이 체포하여 협정에 따라 한국으로 인도할 경우 사형을 시키지 말라는 것이지 사형제를 전면 폐지하라고 요청한 것은 아니다. 설사 그런 요청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국민의 뜻에 따라 사형제 존폐 여부를 결정해야한다. EU와 교역량이 우리 보다 더 많은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도 EU의 권고를 무시하고 사형을 지금도 계속 집행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EU에 굴복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 인터넷 신문 사설은 집권여당과 정부가 여론에 편승해 사형집행 의지를 보이는 것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고 비난했다. 그 사설은“지난 10여년간 정부가 사형집행을 유보한 것은 국내외의 인식변화와 국가 이미지 등을 신중하게 고려한 결과라고 말하고, 한국은 사실상의 사형폐지국가로 인정받아 문명국가 이미지를 높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댓글을 단 한 네티즌은“문명국가 이미지 좋아하시네. 그럼 사형집행을 계속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는 야만국이란 말이냐?”라고 빈정댔다.
인터넷에 인기 블로그를 가지고 있는 한 작가는,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까지 사형집행이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소위 좌파정권 10년 동안은 물론 현 우파정권도 사형을 한번도 집행하지 않아 사형수가 현재 57명이나 된다. 지난 1998에서 2009년까지 12년간 한국의 살인범죄는 계속 늘어왔는데 2008년에 1,111건이던 살인사건이 2009년에는 25% 증가하여 1,374건이나 발생했다. 또 강간사건은 2009년 한 해 동안에 신고된 것만도 1만 건이 넘었다. 즉각 사형집행을 재개해서 법의 엄중함을 보여줘야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글을 올려 수많은 네티즌들이 찬성하는 댓글을 올렸다.
또 다른 블로거는 “사형제도를 폐지해도 살인사건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럴까? 영국은 1965년에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그해 영국에서는 78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 후 살인은 계속 증가하여 2008년에는 연간 1200명선을 돌파했다. 사형 폐지 이후 살인사건이 무려 15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서도 이제 사형제를 다시 시행하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데도 인간의 존엄성 운운하며 사형제도를 폐지하라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 때문에 한국이 범죄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법무장관이 최근 흉악범 사형집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암시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조속히 사형집행을 단행하여‘사람을 21명이나 죽여도 평생 국립호텔에서 공짜로 먹고 살 수 있으니 안심하고 살인하고 강간하자’는 인식을 잠재적 범죄자들이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썼다.
그건 그렇고, 다시 장승구 교수 딸 납치사건으로 돌아가자.
장교수의 태도 변화가 없어도 납치범으로부터는 더 이상의 연락이 없었다. 지금까지 납치범은 금방 추적이 가능한 전화는 쓰지 않고 편지만 두 번 보내왔을 뿐이다. 그나마 두 번째 편지 이후 열흘 이상 잠잠했다. 경찰도 편지만 가지고는 범인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짐작조차 못하는 것 같았다. 납치현장을 목격한 시민이라도 있어서 제보를 해주면 좋겠지만 아직 한 건도 없다.
장교수 부부는 더욱 초조해지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딸의 납치가 발생한지 3주가 되었지만 다행히 아직 언론에 보도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를 빠지는 애린의 소식을 묻는 딸의 친구들이 가끔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마다 장교수 부인은 딸이 몸이 좀 아파 집에서 쉬고 있다고 둘러댔으나 딸 친구들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소문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 나갔고 마침내 그 소문은 장교수 부부의 귀에도 들어갔다.
“여보, 빨리 범인의 요구를 들어줍시다. 지금까지 강력하게 사형제도를 반대하다가 갑자기 사형제도를 지지하고 흉악범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기가 어렵겠지만, 일단 그렇게 해서 우리 애린일 되찾고 나중에 그것은 진심이 아니라 딸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고 밝히고 다시 사형제 폐지 소신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겠어요?” 장교수 부인은 남편에게 울멱이며 설득했고, 장교수는 드디어 그 설득에 굴복했다.
그는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조간신문에 특별기고를 써 보냈고, 그 글은 그 신문 ‘오피니언’란에 대서특필되었다. 사형제폐지 운동에 앞장섰던 장승구 교수가 글자 그대로 하루 아침에 소신을 바꾸자 사형제 논란은 더욱 가열되었다. 모든 아날로그와 디지탈 언론 매체들은 장교수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의 이유가 무엇이냐며 추측기사들을 쏟아냈다. 그러자 한 주간신문이 제일 먼저 장교수의 외동딸 장애린 양이 ‘실종’되었다고 보도했고 뒤이어 한 TV 방송사는 장교수 딸이 괴한에게 ‘납치’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납치범이 장교수에게 사형제 찬성 발언을 하라고 요구한 사실은 아직 어느 언론 매체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언론 매체들은 딸의 피납이 장교수의 갑작스런 소신 돌변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장교수는 자신의 특별기고가 신문에 나간 직 후 딸 애린이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오거나 최소한 납치범으로부터 무슨 연락이라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10여일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교수 부부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납치범에게 속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무렵 장교수는 세 번째 편지를 받았다. 이번 편지는 장교수가 수신자로 적혀있고 편지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연구실로 배달되어왔다. 이번엔 수원의 어느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 장교수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어보았다.
“우리 요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납치범은 “우리”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면 단독범이 아니라는 뜻인가? 아니면 단독범이면서 단독범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기 위함인가? 어쨌든 납치범은 어느 날 몇 시에 어느 장소로 가면 폐가가 하나 있을 것인데 그 안에서 애린 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 일을 절대로 비밀에 붙이라고 명령하고, 공연히 경찰에 알려 자기를 잡으려 하면 딸의 생명을 보장할수 없다는 협박도 덧붙였다.
장교수 부부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들은 자가용 외제차를 몰고 지정 일자 지정 시각에 지정 장소에 가보았다. 그것은 강원도 어느 산골의 작은 폐가였다. 20여호 되는 마을로부터는 좀 멀리 외진 곳에 지어진 이 초가집은 살던 사람들이 떠난 지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초가지붕은 거의 다 삭아 있었고, 벽도 헐어서 곧 무너질 것 같았다. 흙먼지 투성인 마루에는 쥐똥 같은 것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장교수 부부가 “애린아!” 하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때 묻은 창호지가 너덜너덜한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 딸은 보이지 않고 이삿짐용 큰 박스 하나만 덩그러니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부부는 그것을 만지려다 말고 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부엌을 드려다 보았다. 들쥐 한 마리가 놀라서 달아날 뿐 딸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은 없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온 장교수 부부는 박스를 흔들어 보았다. 무엇인가 무거운 물체가 안에서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아 그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애린의 사체가 들어있었다. 딸의 옷을 보고 장교수 부인은 금방 알아보았다. 상자 맨 밑바닥에는 비닐봉지로 싼 편지도 한 장 들어있었다. 거기엔 낯익은 왼손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그렇게 쉽게 소신을 바꾸는 장승구 교수 당신에게 딸을 살려 돌려보내면 당신은 또 금방 사형제반대 소신으로 돌아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의 딸을, 흉악범들에게 억울하게 죽은 모든 이 나라 여성들의 혼백을 위로하는 제물로 삼기로 했으니 넓은 양해 있기를 바랍니다.”
장애린 양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범인이 장교수에게 시간과 장소를 알려준 편지를 붙이기 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범인은 그녀의 시신을 폐가에 갖다 놓은 후 그 편지를 부침으로써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경찰의 기습을 피하려했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리고 장애린 양은 성폭행 당한 후 목졸려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승구 교수가 열렬한 사형제 폐지론자임을 이용하는 것이 자신의 범죄 은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범인이 일부러 장교수 딸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또 장교수의 소신 돌변 선언을 강요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납치․강간․살해당한 어떤 여성의 가족이 사형제 폐지운동을 주도해온 장교수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는지 베테랑 경찰 프롭화일러(profiler:범인 추정 전문가)도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끝>
CopyrightⒸW.Y. Jo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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