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훼손의 기억 - 임병식
산행을 하면서 주위에 피어있는 들국화를 보노라면 전에 어떤 광고문구가 떠오른다. '산불이 나서 다시 토끼 고라니가 돌아오는 걸 보려면 오십 년을 기다려야한다'. 이 표어는 '불조심'을 일깨우게 하기 위해 내건 것인데 한데, 나는 이 말을 떠올리노라면 돌아올 50년이 아니라 지난 50년이 많이 생각나는 것이다.당시의 상황이 너무나 심각했던 것이다.
훼손은 들꽃이나 나무를 가리지 않았다. 들꼭으로는 주로 들국화가 무자비한 훼손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진달래가 뿌리째 뽑혀졌다. 들국화는 약용으로 진달래나무는 주로 땔감으로 씨가 말라졌다. 6.25 전쟁을 치르고 난 뒤끝이라 생활의 여유가 없어진 건 물론이고 사람들이 아름답게 핀 꽃조차도 보고 즐길 겨늘이 없던 때였지만, 자연보호 의식이 없기도 했던 것이다.
그때가 오래된 일도 아닌 불과 50여년 전이다. 그러했던 것이 5.16혁명이 일어난 후, 강력한 산림정책이 펼쳐지자 민둥산은 서서히 복원되기 시작했다. 자유당 시절 무참하게 남벌된 산에 집중 녹화사업을 펼친 때문이었다. 초기 산림정책은 속성수를 주로 심었다. 산사태 방지가 시급했던 것이다. 이때 대표 수종으로는 아카시아와 오리나무가 선택되었다. 그렇지만 정작 신경써서 보호한 나무는 소나무였다.
그래서 소나무를 베려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하고, 무단으로 가지 하나라도 벌채를 했다간 군 산림계에 고발되어 무거운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상황이 그러하니 사람들은 소나무는 손을 대지 못하고 죽은 나무둥치를 파내거나 손쉬운 진달래를 캤다. 이것을 우리 고장에서는 ‘꽃장글’이라 불렀다. 이 나무를 많이 채취한 것은 흔하기도 헤서지만 덜 말라도 불이 잘 붙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이 진달래의 땔감을 지게에 지고 나르는 걸 보면 넌풀대던 꽃송이가 핀 채로 보여서 여간 거슬러 보이지 않았다.
이는 어찌 보면 땔감이 그만큼 귀하기도 한 반증이지만 사람들의 감성자체도 꽃을 감상의 대상으로 바로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황폐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직 땔감 확보만이 목적이지 다른 건 생각할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수난을 당하기는 들국화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로부터 그것을 달려먹으면 부인병에 좋다는 말이 퍼져서 너도 나도 다투어 뽑아갔던 것이다. 그 바람에 지천이던 들국화는 어느 해 부턴가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 화면에서 아프리카지역에 메뚜기 떼가 출현하여 나무 이파리를 모조리 먹어치운 장면을 본적이 있는데, 마치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은 뿌리가 남아있으니 다음해에는 다시 새싹이 돋겠지만 국화채취는 뿌리까지 몽땅 뽑아가 버려서 종래는 죄 사리지고 말았다.
그런 중에서나마 토끼와 고라니, 여우 늑대가 서식한 것은 다행이었다. 그런대로 숲은 가꿔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짐승들 마저 없었더라면 산들은 참으로 황량한 몰풍경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한데, 웃음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훼손의 주역들이 세월이 흘러 지금은 모두 지긋한 나이가 되어 건강을 돌본답시고 열심히 산을 오르는 모습이다. 그렇게 산을 오르면서 주위에 피어난 꽃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매말랐던 감성이 다시 생겨나 그런 것을 아껴야 한다고 뒤늦은 자각이 생겼다면 반겨할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들국화는 깨어서 약으로나 쓰고, 진달래는 뽑아서 땔감이나 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런 건강은 지켜서 무엇에 쓸까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 헐벗은 산이 많이 울창해 졌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몰라보게 복원이 되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제는 진달래 들국화도 다시 피는데, 그리운 늑대며 여우는 돌아올 기미가 없는 것이다. 그걸 걸 생각하면 예전같은 회복은 아직도 당당 멀었다는 생각이다.
그 날이 오려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이 깃들고 바라보는 눈이 그것을 즐기는 시선으로 바뀔 때 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산을 오르면서 옛날을 떠올리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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